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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점은 짜도 제자에겐 다정한 'F 폭격기'

정년퇴임을 앞둔 이준구 서울대 교수. 제자들은 기념 문집 ‘꽃보다 제자’를 냈다. [사진 이준구]
1980~90년대 별명은 ‘F 폭격기’였다. 2000년대에는 ‘CD 플레이어’로 불렸다. A, B학점을 잘 주지 않아 학생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그게 최근에는 ‘아바(ABBA)’로 바뀌었다. 예전과 달리 A, B 학점을 많이 준다는 뜻이다.

 국내 대표적인 경제학자이면서 사회적 이슈와 관련해 소신발언을 해온 이준구(65)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얘기다. 이 교수는 “교수 재직기간이 늘어날수록 학점을 잘 주게 됐는데 그만큼 세상과 타협한 결과”라며 웃었다. 이 교수는 뉴욕 주립대 조교수로 있다가 1984년 서울대 교수로 임용됐다. 31년간 재직했던 서울대 교수직에서 다음달 정년 퇴임한다.

 이 교수는 미시경제학자다. 그가 쓴 『미시경제학』은 경제학도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이명박 정부 시절 부자 감세와 4대 강 사업 등에 날선 비판을 날려 ‘쓴소리 경제학자’로도 불린다. 학문적 성과도 뛰어나지만 제자들의 사랑도 한 몸에 받았다. 회원 5명이 참여하는 개인 팬클럽도 있다. 이창용 전 교수는 “스승의 날에 초콜릿을 가장 많이 받은 교수였다”고 기억했다.

 퇴임을 앞두고 이 교수의 제자들이 기념 문집을 헌정한다. 문집 제목은 ‘꽃보다 제자’. 옥동석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부터 20대 경제학부 학생의 글까지 두루 실렸다.

 제자들이 기억하는 이 교수는 학점은 짜지만 다정한 스승이다. 성명재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 교수를 ‘공포의 저격수’로 기억했다. “부임 첫 학기 수업에서 F학점을 쏟아냈다”는 이유였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교수님의 수업조교를 하며 F학점을 40명에게 준 기억이 난다”고 했다. 김영철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 류두진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에겐 인생의 항로를 바꿔준 은사였다. 공대 출신인 두 사람은 “강의를 듣고 매료돼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꿨다”고 했다. 이 교수의 방은 늘 열려 있 다. 그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는 제자 등의 글이 1만 개 넘게 올라왔고 이 교수도 틈틈이 댓글을 달아주고 있다.

 이 교수는 “학교에 처음 부임했을 때는 민주화운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연행되는 학생들 때문에 가슴 아팠다”며 “최근에는 취업, 진로문제로 고민하는 학생들을 보는 게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런 학생들에게 이 교수는 “깡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각자의 길을 용기를 갖고 개척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이 보인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이 교수는 “특별한 게 없다”고 답했다. 외부 활동에 눈 돌리지 않고 강의와 연구만 반복했다는 의미로 들렸다.

 이 교수는 정년 퇴임 후에도 명예교수로서 5년간 서울대에서 강의를 계속할 계획이다. “1시간을 열심히 강의하면 수업 듣는 100명의 학생들은 100시간을 잘 배우는 거다. 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다.”

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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