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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때 이성태 총재와 갈등 있었지만 내가 교체 반대

강만수 전 장관은 민감한 질문이 나오면 수첩과 노트를 꺼내 당시의 상황과 발언·통계 수치를 설명했다. 그의 컴퓨터 안에는 각종 자료들이 체계적으로 분류돼 있었다.
일정이 빼곡히 적힌 강 전 장관의 수첩. 김춘식 기자
[감세와 고환율 정책]

『현장에서 본 경제위기 대응 실록』 낸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

1997년 외환위기 때 재정경제부 차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일했던 강만수(70) 전 KDB금융그룹 회장이 최근 『현장에서 본 경제위기 대응 실록』(삼성경제연구소)을 냈다. 두 번의 위기에서 한국 정부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내부의 시각에서 기록한 책이다. 그는 “자전적인 회고보다 사실적인 실록”이라고 했다. 8일 서울 송파구 오금동 르네상스빌딩 2층 디지털 경제연구소 사무실에서 강 전 장관을 만났다. 이 사무실은 그가 98년 재경부 차관에서 물러난 뒤 2008년 기재부 장관으로 복귀하기 전까지 야인 시절 10년간 사용하던 곳이다. 강 전 장관은 지난 1년간 이 사무실에서 남의 도움 없이 혼자서 책을 썼다. 연구소 안은 처음에는 썰렁했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강 전 장관의 열정적인 답변으로 곧 뜨거워졌다.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언론은 ‘나쁜 뉴스가 좋은 뉴스(Bad news is good news)’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안 좋고 비판적인 내용 위주로 보도하는 것 같다. (※강 전 장관은 자신이 추진했던 정책의 의미가 일부 잘못 알려졌다는 말을 이렇게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2008년 당시 언론 보도는 ‘한국에 위기 온다’ ‘검은 9월이 다가온다’ 같은 부류의 비판적인 게 많았다. 후배 공무원들과 경제학자, 기자 등에게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 6개월 정도 구상하고, 1년간 집필에 매달렸다.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내가 직접 원고와 그래프 등을 다 작성했다.”

-당시 감세정책에 대해 부자와 재벌에게만 도움이 된다는 비난이 상당했다.
“내가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보면 부자나 재벌을 도와줄 이유가 없다. 난 그 반대의 인생을 살아왔다. 어느 나라의 재무장관이 세수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펴느냐. 재무장관은 세금을 어떻게 많이 걷느냐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내가 편 감세정책은 결국은 세수를 늘리기 위한 것이다. 감세를 통해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면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 세수가 단기적으로는 줄어도, 장기적으로는 늘어난다. 내 경험에 바탕 해서 정책을 마련하고 집행한 것인데 그것을 부자 감세라고 비난해 힘들었다. 이른바 석학이라는 사람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나를 욕했다.”
(※강 전 장관은 이런 비판을 견디기 위해 매일 새벽기도를 나갔다고 했다.)

-고환율정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비판이 많았다.
“한국처럼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수출이 꺼지면 내수가 잘되겠는가. 수출이 잘되면 내수도 함께 잘되고. 안 되면 같이 안 되는 것이다. 수출을 해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경상수지 적자는 만병의 근원이다. 내가 취임한 2008년 한국은 세계 12위 수출국이었지만 2010년에 세계 7위의 수출대국으로 도약했다. 국가 신용평가에서는 일본을 앞지르기도 했다. 장관직에서 물러나고 경상수지가 흑자가 됐을 때 나를 욕했던 사람들은 아무 말을 안 했다. 반면에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서울의 관료에게 경의를 표한다’(Hats off to the officials in Seoul)고 보도했고,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위기돌파 정책을 ‘교과서적인 사례’(text book example)라고 했다. 내 주장에 반론이 많은 건 안다. 하지만 난 경제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결과가 안 좋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빨리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감세, 원화가치 절하, 재정 확대’ 이 세 가지 때문이다.”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돼야 하는 게 아닌가.
“시장 환율은 잘못된 개념이다. 환율을 시장에 맡기는 건 정부의 직무유기다. 환율은 주권이다. 예전에는 담뱃세 올리려면 미국과 협의해야 했다. 말이 되느냐. 세금은 주권 중의 주권이다. 환율도 그렇다. 85년 미국에서 근무할 때 플라자 호텔이 가까웠다. 미국의 압력으로 플라자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엔화 가치가 배 이상 뛰었다. 이게 시장 환율이냐. 미국도 자기 살기 위해기 그렇게 한 것이다. 플라자 합의를 보고 나는 국제금융국장 시절 환율을 ‘조정’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조작’은 안 한다고 했다.”

-책에서 한국은행과의 마찰에 대해 상세히 적었다. (※그는 책에서 2008년 경제위기 때 ‘한은은 97년과 같이 빗나간 얘기와 엇갈린 행동을 했다’ ‘이성태 총재의 돌출발언 때문에 환율이 970원대로 다시 떨어졌다’고 적었다.)
“중앙은행이 정부에 정면으로 반박하면 결국은 총재를 바꿔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당시 내가 오히려 이성태 총재의 교체를 반대했다. 교체하면 중앙은행 독립투쟁 같은 말들이 나와서 일하기 더 힘들다고 했다. 내가 잘 협력해서 나가겠다고 했다. 책에서 특정인을 거명한 것은 그들을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전 총재가 내 책에 대해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는 기사를 봤는데, 아마도 내 책을 다 읽지 않고 그랬을 것이다. 이 책은 당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은 인플레이션 걱정 때문에 나온 것인데 지금은 디플레이션 위기가 더 우려된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이 경쟁적으로 돈을 찍어내고 있다. 경제 환경이 바뀐 만큼 중앙은행의 역할도 바뀌고 있다. 오죽했으면 중앙은행의 역할이 ‘최종 대부자(the lender of last resort)’에서 필요한 만큼 돈을 쏟아붓는 ‘최초 유일 대부자(the lender of first and only resort)’로 바뀐다고 하겠는가. 한은도 그렇게 가야 한다. 중앙은행은 정부와 협력해야 한다. 미국도 그랬다. 정부가 (금융통화위원회) 재의 요구권을 갖는 의미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경제가 잘못되면 대통령의 책임, 정부의 책임이라고 하지 한은의 책임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강 전 장관의 주장에 대해 이성태 전 한은 총재는 “환율에 대한 최종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주장하는 강 전 장관이 왜 남 탓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당시 강 전 장관은 한은의 동참을 얻어내기 위한 설득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본인 주장만 강하게 밀어붙였다”고 언론에 말했다.)

-당시 추진한 정책 가운데 지금 후회하거나 아쉬운 것은 없나.
“감세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펼쳤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가 추진했던 감세정책은) 사실상 2010년 폐기됐다. 금융위기 때 난 계속 수비만 했다. 수비는 아무리 잘해야 무승부 아니냐. 경제를 살리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서지 못한 게 아쉽다.”



강만수 1945년 경남 합천 출생. 서울대(법학)·뉴욕대 (경제학 석사)에서 공부했다. 70년 행정고시를 거쳐 공직에 들어가 재무부 이재국장, 국제금융국장, 세제실장, 관세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재정경제부 차관,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했고 KDB금융그룹 회장, 산업은행장을 지냈다.


김종윤·염태정 기자 yo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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