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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금융은 실물경제 마중물 아닌 경제의 핵심 관개수로

최정동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는 애초에 금융부터 손을 대면서 시작해야 했다.”

김기환 서울파이낸셜포럼 회장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상공부 차관 등을 역임한 김기환(83) 서울파이낸셜포럼 회장이 ‘창조경제’의 정책 우선순위 재조정을 촉구했다. 금융은 경제의 혈액순환을 담당하는 핵심 산업인데도 경제의 마중물 정도의 취급을 받는 통에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또 “한국 금융산업 발전의 최대 걸림돌은 관치금융”이라며 “외환위기 이후 관치를 없애려고 그렇게 노력했지만 지금의 금융산업 수준은 오히려 1990년대로 돌아갔다”고 비판했다. 그에 대한 대책으론 “금융감독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금산분리 정책을 폐지해 주인 있는 경영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원화 국제화를 통해 신성장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한국 금융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뭔가.
“금융산업이 관치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는 점이다. 관치를 없애려고 외환위기 이후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 결국 옛날로 돌아가 버리지 않았나. 최근 한 금융계 원로와 얘기했더니 90년대 수준으로 돌아갔다고 하더라.”

-금융의 중요성이 크지만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엔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은 듯하다.
“창조경제 같은 큰 구상이라면 애초에 금융부터 손을 대면서 시작해야 했다. 박 대통령이 평소 금융에 대해선 별 언급을 하지 않다가 최근 ‘다른 건 다 한류(韓流)가 되는데 왜 금융은 못하냐’고 하자, 금융위원장이 이를 받아 해외로 나가라고 하더라. 금융이라는 게 국내건 해외건 돈장사인데, 국제화되지 않은 원화를 가지고 나간들 장사가 되겠나.”

-무엇부터 해야 하나.
“경제를 살리려면 금융개혁부터 해야 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으로 이원화돼 있는 감독체계도 개편해야 한다. 일본은 지난 20년간 금융개혁 노래를 부르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했다. 일본은 국제수지 흑자를 엄청나게 낸 나라다. 90년대엔 일본 금융이 세계를 휘두를 거란 얘기도 나왔다. 그런데 지금 완전히 망가지지 않았나. 박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금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금융은 실물경제의 펌프질을 위한 마중물 정도가 결코 아니다. 경제 전체를 이끌어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핵심 관개수로(灌漑水路)다. 그런데도 정부 관리들은 금융을 수도·전기 같은 공공설비쯤으로 생각한다. 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금융을 방치하면 한국도 일본처럼 될 것이다. 아무리 혁신을 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도 돈을 대주는 금융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현재의 금융감독 체계도 외환위기 이후에 개선한 것 아닌가.
“감독 업무엔 상당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한데 기존 정부 급여 체계로는 감당할 수가 없어 금융위와 금감원을 따로 운영하게 됐다. 금감원이 피감자인 금융사들에서 운영경비를 받는 건 심각한 모순이다. 금융위와 금감원을 통합한 뒤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정부 재정으로 해결해야 한다. 전 세계에 이런 기형적인 조직은 없을 것이다.”

-관치는 물론이고, 정치권력이 개입하는 것도 큰 문제다.
“서양엔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영웅 중에 금융인이 적잖다. 존 D 록펠러가 엔지니어라서 유명한 게 아니다. J P 모건도 그렇다. 미국에 철도가 생길 때 철도금융을 해준 사람들이다. 우린 그런 금융인들이 탄생할 수 없는 구조다. 정·관계 눈치 보고 피동적으로 경영하는 게 생활화돼 있다. 금융을 옛날처럼 관 주도로 이끌 수는 없다. 완전히 민간 주도의 시장경제 원리로 가야 한다.”

-시장 논리라면 지배구조 규제도 풀자는 뜻인가.
“그렇다. 금산분리 규제를 풀어 은행에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 주인 없는 경영을 하다 보니 경쟁력이 커지질 않는다.”

-금산분리, 정확히 말해선 은산분리(은행과 기업의 상호 소유를 막는 규제)는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은행의 사금고화를 막자는 취지인데, 부작용이 없겠나.
“그런 걱정을 할 시대는 이제 지났다고 본다. 금산분리 정책이 아니었어도 이미 우리 경제는 대기업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또 옛날엔 국가 단위 경제체제였지만 이젠 국경을 초월한 세계화된 경제다. 주인 없는 경영체제하에서는 관치를 막을 수 없고 장기적인 안목의 경영을 할 수도 없다. 또 사금고, 사금고 하는데 대기업들이 은행 없어서 돈 못 쓰는가. 기업의 은행 의존도는 갈수록 낮아져 왔다.”

-한미·씨티·SC제일 등 주인 있는 은행들이 있었지만 국내 금융계를 석권할 만큼 성과가 좋진 않았다.
“주인을 찾아주는 게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진 않다. 여러 규제가 앞을 막고 있고, 관치도 심하다. 그러니 한국에 들어온 외국 금융회사들이 이런 환경에선 장사 못 하겠다고 하는 것 아닌가.”

-원화 국제화의 경우 우리 경제 규모로는 쉽지 않은 일일 텐데.
“미국 달러 같은 국제화는 안 되겠지만, 호주 달러 정도의 국제화는 가능하다. 원화를 국제화하면 현재 기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역외원화시장을 정상화시킬 뿐 아니라, 이를 국내 외환시장에 흡수해 시장의 협소성을 해결할 수 있다. 원화가 국제화되면 지금보다 환율이 안정돼 모든 대외거래 비용이 절감될 뿐 아니라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과 국민의 해외 재테크 기회도 확대된다.”

-우리도 과거에 시도하지 않았나.
“그냥 놔두면 될 걸 2008년 10월 이명박 대통령 시절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유로 자본거래를 무기 연기했다. 이게 사실상 원화 국제화 정책의 폐기인 셈이다. 2009년부터 자본거래를 자유롭게 하기로 노무현 정권 때 계획을 만들었는데, 그걸 다 없애버린 거다. 원화가 외국 사람들 손에 있으면 불안하다는 게 이유였다. 지금도 국내 비거주자(외국인)가 원화에 투자하는 걸 막아놓은 게 큰 문제다. 원화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외국에서 어떻게 우리 금융회사가 장사를 하겠나.”

-당시엔 이른바 ‘환율주권론’의 연장선 아니었나.
“그렇다. 금융산업 발전과 관련해 제일 실망시킨 게 이 전 대통령이다. 서울시장 시절엔 금융개혁에 앞장서자며 여의도 금융센터를 개발했다. 금융 국제회의도 열어 내가 연사를 주선해 주기도 했다. 난 그때 ‘이분이 대통령이 되면 한국 금융의 발전과 국제화는 떼어놓은 당상이구나’고 기대했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되고 완전히 달라졌다. ‘우리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하더라. 이 전 대통령은 금융인들 앞에서 얘기할 때 예전 기업인 시절의 나쁜 기억을 꺼내곤 했다. 해외 건설현장에서 일할 때 어느 은행장이 왔는데 공사하다가도 그분을 대접해야 했다는 등 말이다. 본질적인 금융개혁보다는 ‘그런 버릇 고치시오’ 같은 설교적인 얘기를 많이 하더라.”

-올해도 은행권의 수익 전망이 좋지 않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아직도 예대마진으로 먹고살고 있다. 예대마진이 줄면 다들 죽는다고 한다. 사실 예대마진은 금융상품 중에서도 제일 옛날 것 아닌가. 다른 것을 찾으려고 자꾸 개발해야 하는데 규제가 너무 많다. 또 경영진이 ‘이 자리에 오래 있을 거다’고 생각하면 보다 장기적인 전략을 세울 텐데, 지금 구조로는 ‘내 임기 동안만 무사히 지내자’로 하다 보니 혁신이 안 나온다.”



김기환 1932년 생. 미국 그리넬대와 예일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뒤 UC버클리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 귀국해 KDI 원장, 상공부 차관, 세종연구소 이사장, 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PECC) 의장, 골드먼삭스 고문 등을 지냈다. 현재 국내외 금융인의 모임인 서울파이낸셜포럼의 회장을 맡고 있다.


진행=남윤호 중앙SUNDAY 편집국장 정리=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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