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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 → 조종 욕구 꿈틀 … 루머 퍼뜨려 자기 존재감 과시

잘못된 ‘임세령 패션’ 관련 정보가 대중에게 진짜로 각인된 데는 언론매체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네티즌 글을 무분별하게 받아썼기 때문이다. [사진 각 언론사 방송 화면과 인터넷 홈페이지 캡처]
새해 첫날 대기업 오너의 딸과 유명 연예인의 열애 소식이 온라인을 달궜다. 그리고 열애 사실보다 더 관심을 끈 건 두 사람이 만날 때 이 재벌가 여성이 입고 있던 패션이다. 누군가 사진마다 친절하게 브랜드와 가격을 달았다. 힐피거X브라운토닉 롱 퍼 코트 3200만원, 에르메스 퍼플레인 버킨 백 2400만원, 에크니시 울프릭 앵클 부츠 670 만원, 볼라뇨 마르셸 피트인 바디 블루진 360만원…. ‘역시 셀레브리티 패션은 다르군, 부츠 가격이 670만원이라니.’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뇌는 힐피거X브라운토닉이나 에크니시를 최고급 브랜드로 저장한다.

인터넷 허위 정보의 사회심리학

에르메스 백 등 일부 진짜 브랜드가 섞여 있어 다른 정보도 다 진짜라고 믿지만 실은 이 브랜드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거짓 정보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되고 이를 일부 언론이 확인 없이 받아 쓰면서 진짜 정보로 둔갑해버렸다.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이다.

진짜 정보 섞어 진실·거짓 구분 어려워
차이니스 위스퍼(Chinese Whisper)라는 서양 놀이가 있다. 한 아이가 만든 문장을 다른 아이에게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여 전달한다. 이를 몇 번 반복한 후 마지막 사람이 자기가 들은 문장을 외칠 때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문장이 돌고 도는 동안 조금씩 바뀌어 결국 전혀 모르는 중국어 같은 문장이 남는 거다. 이렇게 몇 사람만 거쳐도 처음 문장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다. 한 루머 연구에 따르면 5~6회만 입에서 입으로 전달돼도 원래 메시지의 70%가 훼손된다고 한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5~6회 정도가 아니라 순식간에 수천 번 이상 전달되니 훼손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차이니스 위스퍼는 단지 정보가 여러 단계를 거치며 왜곡되는 것이지만 고의적으로 거짓 정보(허위 정보)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허위 정보(disinformation)는 고의성이 있다는 점에서 오보(misinformation)와는 다르다.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가장 흔한 전술은 진짜 정보 몇 개에 가짜 정보를 섞어 자신이 원하는 결론으로 조작하는 것이다. 현재의 중요한 정보를 숨기기 위해 과거에 숨겨뒀던 정보 일부를 공개하기도 한다. 이 같은 허위 정보 전술은 국가나 특정 조직 간 이해관계 다툼에서 정보전의 하나로 활용된다.

에크니시 울프릭 부츠에 그런 거대한 음모가 숨어 있는 걸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리고 왜 이런 허위 정보를 만든 것일까. 그리고 이게 어떻게 진실로 둔갑한 걸까.

우선 허위 정보란 상대를 조종하기 위해 만든다. 국가·조직 간 허위 정보 전술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뚜렷한 동기가 있다. 그렇다면 아무런 동기가 없는 개인의 허위 정보 유포는 어떻게 봐야 할까. 이 역시 상대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봐야 한다. 어떤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통제력 자체가 목적이다. 프로이트·융과 더불어 대표적인 정신분석학자로 꼽히는 알프레트 아들러(1870~1937)는 “자존감이 떨어져 열등감에 사로잡혔을 때 주변에 대한 강력한 조종 욕구가 일어난다”고 했다. 주변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면서 바닥으로 떨어진 자존감을 보상받는다는 얘기다.

경쟁에 지친 낙오자들의 도피처
자신의 실제 모습과는 전혀 다른 가짜 정체성을 만들어 놓고 이에 맞추기 위해 거짓된 말과 행동을 병적으로 반복하는 사람을 일컬어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한다. 리플리 증후군처럼 병적인 성격 장애는 드물지만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스스로를 포장하느라 노력하다 지쳐 있는 상태다. 남에게 나를 멋지게 보여 사랑받고 싶고, 성공하려고 경쟁하다 지쳐버린 것이다. 이럴 때 거꾸로 어딘가 숨고 싶은 회피 반응을 보인다. 아날로그 세상에서는 아마 혼자 숨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나 너무나 쉽게 ‘가짜 진실’을 만들 수 있는 시대이다 보니 허위 정보가 넘쳐난다. 그렇게 자신의 파워를 과시해 자존감을 보상받는 것이다.

허위 정보 전술은 과거엔 하고 싶다고 해서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막강한 권력의 정보기관이 유력 언론 매체를 조종해야 겨우 다수의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세상을 뜨겁게 달구는 거짓 정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부츠 이름 가운데 ‘울프릭’은 스카이림이라는 롤플레잉게임의 한 캐릭터라고 하니 게임을 좋아하는 어린 학생이 만든 허위 정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허위 정보가 수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어 진실로 굳어진다. 한 개인이 익명성 아래 엄청난 정보 통제능력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이 됐다는 얘기다.

허위 정보 전술, 과거엔 권력집단만 가능
허위 정보가 진짜로 자리 잡는 데는 이를 공급하는 사람뿐 아니라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 책임도 있다. 살기 힘들면 사람은 상상 속에서 유토피아를 구축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거짓일 수도 있는 정보지만 굳이 검증하려 들기보다 다수가 연결된 거짓 네트워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한 팀이 돼 세상에 대한 통제력을 더 크게 확보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그런 힘이 잠시나마 힘든 세상에서 나를 강력한 존재로 느끼게 한다. 결국 허위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도 조용한 동업자인 셈이다.

외로워서 SNS를 시작했는데 SNS에 중독될 정도로 빠지니 더 외롭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남들 시선에 신경 쓰느라 자신의 경제력을 넘어서는 무리한 소비를 하는 사람, 유행을 좇느라 좋아하지도 않는 문화 콘텐트를 억지로 감상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 주변 시선에 따라 내 삶의 가치를 결정하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다. 거짓 정보를 만드는 일도 비슷하다. 나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니 주변을 조종하는 파워, 즉 자신이 만든 허위 정보가 마치 진짜인 양 탈바꿈하는 것을 보며 쾌감을 느낀다. 스스로 이만큼 영향력이 있으니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공공에 아무 유익이 없는 이 같은 가짜 영향력은 더 큰 외로움과 자괴감만 불러온다.

요즘 일본에서 『미움받을 용기』라는 심리서 한 권이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일부러 남을 괴롭혀 미움받자는 게 아니다. 인생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10명 중 1명은 나를 좋아하고 7명은 그저 그렇고, 나머지 2명은 나를 싫어할 수밖에 없으니 그런 인생의 진실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뇌가 행복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첫 번째 요건을 심리학적 용기라고 하는데, 내 마음속 부끄러움이나 콤플렉스 등을 솔직히 꺼낼 수 있는 용기를 말한다. 허위 정보로 영향력을 과시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열어야 행복할 수 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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