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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경제사] 근대 초 유럽의 지식혁명은 백지 위에서 시작됐다

그림 1 조반니 바티스타 란제티,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더’, 1670년께. 정복왕 알렉산더와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만남을 묘사했다.
그림 1은 이탈리아 화가 조반니 바티스타 란제티(Giovanni Battista Langetti)가 1670년께 그린 작품이다. 그는 마치 두 인물에만 강한 조명이 비치는 것처럼 작품을 그렸다.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 화가 카라바조에게서 영향을 받았음이 느껴진다. 알렉산더가 권좌에 오른 후 자신을 축하하러 오지 않은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몸소 찾아가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보라고 말한다. 그러자 디오게네스가 햇빛을 가리니 비켜 달라고 대답했다는 유명한 일화를 묘사하고 있다. 우리의 관심은 역사적으로 맞지 않는 사물이 무엇인가에 있다. 정답은 바로 책이다. 디오게네스가 가리키고 있는 책은 사각형의 얇은 종이를 가지런히 모아 한쪽 모서리를 고정한, 오늘날 가장 흔한 ‘코덱스(codex)’라는 책 형태를 보여준다. 화가는 그의 깊은 지식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두꺼운 책을 펼쳐놓았다. 그 뒤로 다른 책도 보인다.

세계화는 어떻게 진화했나 <19> 종이와 책의 전파와 변천

그림 2 폼페이의 벽화, 79년 이전.
그런데 기원전 4세기 그리스에는 이런 형태의 책이 존재하지 않았다. 로마제국의 폼페이에서 제작된 벽화를 보자(그림 2). 폼페이가 화산 폭발로 잿더미에 묻힌 해가 79년이므로, 이 벽화는 그 이전에 제작된 게 분명하다. 주인공이 왼손에 들고 있는 것이 당시의 책이다. 밀랍을 칠한 나무판을 서너 겹 묶은 ‘밀랍판(wax tablet)’이다. 오른손에는 ‘스틸루스(stylus)’라 불리는 뾰족한 필기구가 들려 있다. 그리스인들이 밀랍판을 사용하기 시작한 때가 기원전 8세기라고 역사책은 전한다. 이 밀랍판이 코덱스의 원조라고 볼 수 있다.

파피루스로 책 만들어
그렇다면 디오게네스는 어떻게 생긴 책을 읽었을까? 코덱스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두루마리(scroll) 형태의 책이 대부분이었다. 두루마리 책은 제작과 보관이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글을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야 해서 중간의 특정 지점으로 바로 찾아갈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런 단점을 극복한 코덱스가 나타나기까지 두루마리 책은 인류와 긴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리스인들이 두루마리 책의 재료로 사용한 것은 주로 이집트산 파피루스였다. 나일강변에 야생하는 갈대 줄기를 얇게 잘라 가로·세로로 겹친 후 두들기고 건조시켜 제작했다. 분명히 디오게네스는 파피루스로 만든 두루마리 책에 익숙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유추가 100% 확실한 것은 아니다. 양이나 염소의 가죽으로 만드는 양피지(parchment)도 오랜 기간 인간이 사용해 온 재료였다. 디오게네스의 책은 양피지로 제작된 것이었을까? 양피지는 기원전 3세기 페르가몬에서 개발됐다고 알려져 있다. 이집트에서 들어오는 파피루스의 공급이 부족해져 가격이 급등하자 대응책으로 양피지를 본격적으로 만들어 사용하게 됐다고 한다. 이 기록으로부터 기원전 3세기 이전에는 파피루스가 책을 만드는 주요 소재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짐승 가죽에 글을 쓰는 건 드물지 않았다. 기원전 5세기에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당시에 이런 글쓰기가 자주 이뤄졌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디오게네스의 책이 양피지로 만든 게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파피루스로 만들었건, 양피지로 만들었건 간에 디오게네스가 읽은 책이 두루마리 형태였음은 분명하다. 르네상스 시대 이래 유럽인들 사이에서 그리스 시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는 했지만, 그리스 책에 대해서는 17세기 화가에게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림 3 한대에 제작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이, 간쑤(甘肅)성에서 출토.
종이책을 유럽인이 접한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최초의 종이는 중국 후한의 채륜(蔡倫)이 105년께 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나무껍질과 낡은 그물 등을 원료로 하여 얇고 가벼운 종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나무를 이용한 기존의 목간(木簡)이나 죽간(竹簡)에 비해 관리하기 쉽고, 비단을 이용한 백서(帛書)에 비해 값이 싸다는 장점이 있었으므로 그가 만든 ‘채후지(蔡侯紙)’는 인기가 컸다. 그림 3은 오늘날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종이다. 한대에 만들어진 이 종이는 표면이 거칠고 불규칙한 초기 종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종이, 당나라 때 세계로 퍼져
한동안 동아시아에서만 사용됐던 종이가 더 넓은 세계로 알려진 것은 당나라 때였다.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를 장악할 목적으로 7세기에 당 태종은 중앙아시아로 세력을 확장했다. 8세기에는 힌두쿠시 산맥 부근까지 깊숙이 진격했다.

그러나 7세기에 등장한 이슬람교를 매개로 응집력을 강화한 아랍인과 투르크인도 8세기 초 사마르칸트를 점령하면서 실크로드의 통제권을 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새로 발흥한 압바스 왕조와 당 왕조의 군대는 751년 오늘날의 키르기스스탄에 위치한 탈라스에서 한판 대결을 벌였다. 고구려 유민 출신인 고선지(高仙芝) 장군이 이끄는 보병 중심의 당 군대는 기병 중심의 이슬람 군대와 격전을 벌였으나 패배하고 말았다. 이때 종이 제작 기술을 가진 당 병사들이 사마르칸트에 포로로 끌려가 제지공방을 만들게 되면서 기술이 이전됐다.

그 후 제지술은 이슬람 세계 전역으로 전파됐다. 793년에는 바그다드에서, 900년에는 이집트에서, 1085년에는 스페인의 톨레도에서 종이가 생산됐다. 제지 기술은 더욱 발달했고, 책을 제작하는 기술도 개량됐다. 십자군전쟁을 거친 후 제지술은 유럽 전역으로까지 확산됐다. 1190년에 프랑스에 상륙한 제지술은 13세기에 이탈리아로, 그리고 14세기에 네덜란드와 독일 지역으로 소개됐다. 유럽의 나머지 지역들도 대부분 16세기 말까지는 종이를 생산하게 됐다.

활판 인쇄술, 세계사에 엄청난 영향
1440년대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금속제 활판 인쇄술이 세계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당시는 종교개혁의 불길이 뜨겁게 타오르던 시기였다. 성직자의 역할을 중시하는 구교와 달리 신교는 개인이 성경을 직접 읽음으로써 신의 뜻에 접근할 것을 강조했다. 이런 신교의 교리가 빠르게 확산할 수 있었던 데에는 과거보다 값싸게 인쇄할 수 있는 기술의 등장이 중요했다. 그러나 새 인쇄술만으로는 인쇄물의 생산비를 대중이 구입할 수 있는 수준까지 낮출 수 없었다. 고가의 양피지를 대신해 값싸고 튼튼한 종이가 공급돼야만 했다. 1500년까지 유럽에서 10개국 이상의 언어로 5만 종의 인쇄물이 2000만 권이나 발행될 수 있었던 데에서 수백 년에 거쳐 유럽에 전파된 중국 원천기술의 공이 컸다. 이후 유럽에서 진행된 과학혁명과 계몽주의는 바로 이 토대에서 출발했다.

인쇄물 대량생산으로 지식 대중화돼
종교개혁 이후 신교가 들어선 지역은 구교 지역에 비해 빠른 경제성장을 보였다. 그 이유를 막스 베버(Max Weber)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신교의 교리가 개인의 영리 추구에 더 잘 부합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역사가들은 종교적 가르침의 차이보다 신교 지역에서 사람들의 문해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종이와 새 인쇄술이 결합해 종교적·비종교적 인쇄물을 대량 생산하게 되자 글을 이해하고 표현하려는 열망이 고조됐다. 많은 사람이 교육에 힘을 쓰게 되었고, 그 결과 소수의 전유물이었던 지식이 대중화됐다는 것이다. 백지장에서 시작된 이 ‘지식혁명’이 경제적 진보를 낳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매우 높다. 결국 경제발전은 구성원들의 두뇌로부터 나오는 게 아닌가.



송병건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마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제사학회 이사를 맡고 있으며 『세계경제사 들어서기』(2013), 『경제사:세계화와 세계경제의 역사』(2012), 『영국 근대화의 재구성』(2008) 등 경제사 관련 다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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