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우리는 병원 잘 안 가요, 자연치유력 믿으니까

최정동 기자
“책을 읽다가 의사나 질병 얘기가 나오면 직업 탓인지 집중하게 됩니다. 환자들에게 얘기해줄 거리가 생기잖아요. 임신을 앞둔 여성들에겐 미국의 여류 추리소설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깨어진 거울』을 들려줍니다. 이 소설에서 풍진이란 병은 연쇄살인의 단초가 됩니다. 풍진에 걸려 기형아를 낳은 유명 여배우가 복수를 한다는 줄거리죠. 임신을 원하지만 풍진 항체가 없는 여성에겐 풍진이 얼마나 무서운 비극을 부를 수 있는지를 소설 얘기로 전하면서 반드시 예방주사를 맞고 접종 후 3개월간은 완벽한 피임을 할 것을 권해요.”

가족 17명이 의사, 은혜산부인과 김애양 원장

서울 역삼동 은혜산부인과 김애양(56) 원장은 이처럼 환자들에게 종종 소설 속 건강 얘기를 들려준다. 환자들에게 마음의 힐링을 해주는 것이다. 김 원장은 가족 중 무려 17명이 의사다. 5남매(김 원장은 넷째 딸)가 모두 의사이고, 둘째 언니의 남편(미국에서 병원 건축 사업)을 뺀 4명의 배우자도 의사다. 산부인과 의사가 3명, 재활의학과 2명, 내과·비뇨기과·신경정신과 등 전공분야도 다양하다. 자식대에서도 8명이 의사이거나 의대를 다닌다.

의사이자 수필가인 그는 2008년부터 4권의 책을 저술했다. 남촌문학상을 받은 그의 첫 작품 『초대』와 세 번째 책 『위로』는 수필집이다. 얼마 전에는 『명작 속의 질병 이야기』를 냈다. 8일 그의 진료실에 들어서니 의료전문서적 대신 다양한 장르의 서적들이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의사 집안이어서 주변에서 부러워할 것 같다.
“별로 내세울 일은 아니다. 5남매 모두 의사가 된 것은 아버지의 강한 권유 때문이다. 부친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셰익스피어 전집을 완역한 고(故) 김재남 전 동국대 영문과 교수다.”

-5남매가 의사여서 생긴 일화는.
“언니들이 의대를 다닐 때 난 초등학생이었다. 식탁에 해부학 공부를 위한 ‘해골바가지’가 놓여 있었다. 그릇으로 괜찮겠다고 생각해 땅콩을 담아 먹다가 어머니에게 혼나기도 했다. 해부학 실습시간 때 벗긴 토끼 껍질을 지닌 채 무심코 미팅에 나간 적이 있다. 남학생들이 기겁을 했다.”

-의사 집안이라 장점이 많을 것 같다.
“의대생 때 중간·기말시험과 의사 국가고시 기출문제인 ‘족보’를 구하려고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됐다. 집에 아픈 사람이 생기면 서로 돌봐주기도 한다. 2002년에 오빠(서울대병원 병리과 김우호 교수)의 폐에서 림프종이 발견됐다. 오빠 집으로 매일 가서 주사를 직접 놔줬다. 요즘은 진단서를 끊는 의사는 가족 중 내가 유일하다. 다들 내게 진단서 받으러 온다. 남매가 모두 사는 형편이 비슷해서 서로 싸우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의사들은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나.
“특별한 것은 없다. 병원을 잘 가지 않는 것이 공통점이다. 정신과 의사인 남편은 혈압이 높지만 병원에 가지 않는다. 병원 가면 뻔히 ‘당장 약 먹으라’고 할 것이므로 식이요법을 해볼 기회도 갖지 못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무엇에 좋은 음식이라고 소개하면 더 열심히 찾아 먹는다. 감기에 걸려도 약은 안 먹고 쌍화탕 정도만 마신다. 자연 치유력인 면역력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픈데 병원에 가지 않기란 쉽지 않다.
“가벼운 병이라도 환자들은 겁부터 먹는다. 하지만 질병에 의연하게 대처하고 병을 조금 우습게 알 필요가 있다. 누구나 다 병에 걸리고 생명은 유한하지 않나. 우리 몸은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건강염려증이 심하거나 의사에게 ‘살려주세요’라고 너무 매달리면 이런 심리를 악용하는 의사도 더러 있다.”

-『의사로 산다는 것』이란 책도 썼는데, 의사란 어떤 직업인가.
“창의성이 없는 직업이다. 돈 잘 벌고 안정적인 것은 사실이다. 의대에서 공부하는 정도의 노력이라면 다른 일을 해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의사는 ‘희생과 보답’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일부 과잉진료가 문제되고 있다.
“한 번에 나을 수 있는 병인데 여러 번 병원에 오게 하는 의사도 있다. 영국의 의사 조셉 크로닌이 쓴 소설 『성채』를 보면 ‘…내 주변에 늑대와 다름없는 의사도 많아. 필요 없는 주사를 놓기도 하고 조금도 장애가 안 되는 편도선이나 맹장을 도려내기도 한다. 서로 짜고 환자를 마음대로 농락해 치료비를 절반씩 나눠 먹기도 하고…’란 대목이 나오는데 국내 의료 현실에 비춰 봐도 공감이 간다. 요즘은 갑상선 제거 수술이 과잉 시술 아닌가 생각한다.”

-건강염려증은 현대인의 병인가.
“17세기 프랑스의 극작가인 몰리에르의 희곡 『상상병 환자』에도 건강염려증이 언급된다. 상상병이 곧 건강염려증이며 희곡에서 주인공은 결국 의사 사윗감을 찾는다.”

-산고(産苦)는 어떻게 묘사할 수 있나.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어린 시절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많은 경험을 했다. 그는 자전적 소설인 『우리들의 시대에』에 인디언의 분만 장면이 나온다. 진통 이틀이 지나도록 출산하지 못하자 남편은 백인 의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의사는 마취도 없이 배를 갈라 아이를 꺼냈다. 그때 곁에 있던 남편이 자살했다는 슬픈 얘기다. 사랑하는 아내의 고통을 지켜보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어머니는 여자보다 위대하다는 말은 산고를 감내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많이 읽을 것 같다.
“퇴근 후 시어머니 저녁 식사를 차려 드린 뒤 오후 8시부터 보통 자정을 넘겨 새벽 1∼2시까지 읽는다. 남편은 고3 때 그렇게 공부했으면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쓴 『명작 속 질병 이야기』의 들머리에 “이 책을 통해 병마를 이겨내는 힘을 얻고 삶을 사랑하게 되기를, 또한 문학으로 소통하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질병 없는 세상이 가능하진 않겠지만 가상 체험을 통해 질병에 대한 면역성을 얻고 모두 건강하시길 기원한다’고 썼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tkpark@joongang.co.kr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