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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세컨드샷] 배상문의 병역 고민, 벤 호건에게 묻는다면 …

배상문이 난처한 상황이다. 미국 골프 매체의 보도로 “(병역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 발언까지 알려지면서 여론이 나쁘다. 배상문은 일단 병역 연기를 위한 국외 여행 기간 연장을 위해 행정소송을 벌이겠지만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배상문은 한국에 돌아와 입대하거나 미국에서 시민권을 따는 두 가지 옵션이 가능하다. 배상문이 어떤 선택을 할까 궁금하다.

 이건 알았으면 좋겠다. 골퍼로 전성기에 군에 가도 세상의 종말은 아니다. 벤 호건을 보면 된다. 그의 나이 서른한 살이던 1943년 3월 징집됐다. 억울했을 것이다. 적지 않은 나이인데다 골프에 물이 올랐을 때여서다.

배상문
 호건은 어린 시절 캐디였다. 공교롭게도 같은 골프장에서 캐디를 한 동갑내기 친구가 바이런 넬슨이다. PGA 투어에서 11연승을 기록한 넬슨은 어릴 때부터 재능이 뛰어났다. 캐디 골프대회에서 노력파 호건이 넬슨을 이기지 못했다. 스무 살에 프로가 된 호건은 먹을 것 걱정을 하며 투어에 다녀야 했다.

 프로 전향 후 10년이 지난 40년에야 호건은 정상급으로 올라선다. 3개 대회 연속 우승을 했다. 41년과 42년에 5승씩을 기록했다. 이제 그에게 따뜻한 날이 왔다고 생각했는데 징집됐다.

벤 호건이 1951년 4월 6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코스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호건은 제2차 세계대전에 비행 교관으로 근무했다. 장교로 복무하면서 짬짬이 골프를 했다. 45년에 제대한 그는 다시 넬슨을 상대해야 했다. 넬슨은 군에 가지 않아 온종일 골프에 전념할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군에 다녀온 호건에게 졌다. 46년 호건은 32개 대회 중 13개 대회에서 우승했다. 처음으로 얻은 상금왕이었다. 넬슨은 이후 은퇴했다.

 47년과 48년에도 호건의 성공은 계속됐다. 호건은 ‘주머니 속의 뱀 같다’고 저주하던 훅을 고쳤다. 48년엔 PGA 챔피언십과 US오픈에서 우승했다. 이제 전성기가 왔다 싶었을 텐데 더 큰 시련을 그를 기다렸다. 49년 2월 승용차에 타고 가던 그는 버스와 충돌했다. 그는 옆에 탔던 부인을 보호하려 자신의 몸을 던져 부상이 더 컸다. 다리 정맥의 혈액 응고로 인해 다시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다.

 호건은 그것도 이겨냈다. 호건은 50년 US오픈에서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기적 같은 우승을 차지했다. 2008년 다리를 절뚝거리며 우승한 타이거 우즈의 US오픈과 비견되는 인간 승리의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호건은 53년 디오픈과 US오픈, 마스터스에서 우승을 했다. 당시 디오픈과 겹쳐 또 다른 메이저 대회인 PGA 챔피언십에 나가지 못했다. 만약 경기에 나갔다면 우승했을 가능성, 그러니까 그랜드슬램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른바 ‘호건 슬램’이다. 그의 나이 마흔한 살 때였다.

 기자는 골프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는 타이거 우즈나 잭 니클라우스, 아널드 파머가 아니라 벤 호건이라고 본다. 그 많은 어려움을 겪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최고의 골퍼로 우뚝 선 그의 모습은 골프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에서도 가장 멋진 드라마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배상문은 텍사스주 댈러스에 산다. 호건은 댈러스와 붙어 있는 도시 포트워스에서 나고 생을 마감했다. 깊은 고민 속에 있을 배상문이 포트워스 근교에 있는 벤 호건 박물관에 방문했으면 좋겠다. 현명한 선택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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