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사장님·사모님 넘쳐나는 사회

얼마 전 지방의 한 도서관으로부터 강의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일로 도서관 직원과 한참 통화를 했는데, 그 직원이 나를 계속해서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교수가 아닌데 교수라고 불리니 마음이 불편했다. 처음에는 그냥 넘기다 나중에 안 되겠다 싶어서 말을 끊고 “저는 교수가 아닌데요”라고 했다. 그러자 그 직원이 당황한 듯했다. 막상 말을 해놓고 나니 나도 나 자신을 어떻게 부르라고 해야 할지 난감했다.

나는 어디에도 소속돼 있지 않은 프리랜서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사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비정규직이다. 원고 청탁이 들어와야 겨우 쥐꼬리만 한 원고료라도 받을 수 있을 뿐 보너스와 퇴직금은 물론이요, 정기적인 수입조차 없다.

가끔 가다 그동안 쌓아놓은 명성(?)을 바탕으로 책을 써서 몇 푼 안 되는 인세를 챙기는 것, 그것이 보너스라면 보너스다. 이렇게 대책 안 서는 직업이 바로 프리랜서다. 어떻게 보면 프리랜서라는 말은 이 시대가 비정규직 화이트칼라에게 붙여주는 허울 좋은 이름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대책 없는 프리랜서도 신분 상승의 호사를 누릴 때가 종종 있다. 내게 강의를 부탁하는 사람 중에 나를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꽤 있다. 물론 그들도 내가 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교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를 그렇게 부르는 것은 마땅한 호칭을 찾을 수 없어서일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강의를 하니 강사님보다는 한 등급 높은 교수님이 낫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 같다.

언제부터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궁금하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교수님을 그냥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사실 교수라는 것은 직급을 가리키는 말 아닌가. 이런 식이라면 시간강사는 시간강사님이라고 불러야 맞다. 하기야 옛날에 시간강사 하던 친구가 정말 학생이 자기를 이렇게 부르는 것을 들었단다. 그런데 이제는 여기저기 교수님이 넘쳐난다. 대상이 누구든 강의를 하기만 하면 졸지에 교수님이 된다.

그런가 하면 회사원인 우리 남편은 종종 ‘사장님’으로 불린다. 덩달아 나는 ‘사모님’이 된다. 하지만 나나 남편이나 처음에는 이 호칭이 듣기에 몹시 불편했다. 언젠가 남편이 “거기 ○○○사장님 댁이죠”라고 묻는 전화에 “○○○은 맞는데 사장은 아닙니다”며 대꾸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호칭이 익숙해졌다. 누군가 ‘아줌마’라고 부르면 어색하고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고 한다. 왠지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호칭을 통해 상대방의 신분을 알아서 높여주는 이런 풍조는 우리 사회 구성원의 자존감이 집단적으로 결여돼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자존감이 없으니 누군가 자기를 무시할지 모른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게 되고, 그래서 호칭에 특별히 민감해지는 것이다.

얼마 전 비행기 일등석에 탄 어떤 교수가 승무원이 자기를 교수님이라고 안 불렀다고 폭언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니 여러 가지 이유로 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은 혹시 호칭을 잘못 썼다가 “내가 누군데 감히”라는 말을 들을까봐 아예 알아서 상대를 높여주는 것이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저씨, 아줌마들이 졸지에 모두 사장님, 사모님이 되었다.

이들이 만약 길거리에서 만난다면 대충 이런 대화를 나누지 않을까.

“박 사장님. 안녕하세요.”
“아이고 김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요즘 정 사장님은 어떻게 지내세요.”
“글쎄, 이 사장님 말로는 최 사장님이랑 여행 갔다고 하던데….”



진회숙 서울시향 월간지 SPO의 편집장을 지냈다.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공부하기 등에서 클래식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클래식 오딧세이』 등이 있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