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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엽 기자의 어쨌거나 살아남기] 재난① 그 순간 시간이 멈춘다








“저런 상황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영화잖아. 현실에서는 그냥 다 죽는거야.”

재난 영화를 보고나면 이런 얘기 흔히 하죠.

과연 그럴까요? 영화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주인공이기에 살아남은 걸까요?

그렇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재난 상황에 닥쳤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영화 속 주인공처럼 재난을 피해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갑작스런 재난이 닥치면 그 상황에 대해 일단 ‘거부’를 합니다. 달려오는 차 앞에서 멍하게 서있다가 사고를 당하는 게 바로 그 때문이죠. 그때 사람의 머릿 속에는 ‘내게 이런 일이? 설마 말도 안돼. 사실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어있는 겁니다. ‘거부’ 상태죠.

주간지 ‘타임’의 아만다 리플리 기자는 『언씽커블』이라는 책에서 재난에 대처하는 법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취재를 통해 9.11 사태나 쓰나미, 총기 난사 사건 등의 재난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거부’상태에 빠져들었다는 걸 밝혀냈습니다. 특히 ‘시간이 멈추는 것 같은 상황’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답니다.

저도 대학 때 그런 순간을 겪은 적이 있었습니다. 운전면허연습장에서 1종 면허시험을 준비하느라 친구와 트럭을 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친구가 브레이크 대신 엑셀을 잘못 밟아서 벽으로 마구 돌진했던 겁니다. 벽이 눈 앞으로 돌진하는 아주 짧은 순간이었는데 순간 제 머릿 속에는 어린 시절부터의 제 인생이 영화처럼 펼쳐졌고 급기야 21년의 삶을 모두 정리하고도 시간이 남아 ‘내게 이런 일이 생길리 없어. 나는 절대 죽을 리가 없어. 이건 꿈이야’라는 생각까지 떠올랐습니다.

평소 ‘저런 상황이 오면 문을 열고 차에서 액션배우처럼 뛰어내릴꺼야’라고 생각했던 나는 없고 옴짝달싹 못한 채 엑셀을 힘껏 밟고 있는 친구를 그저 바라만보고 있었습니다. 결국 트럭은 벽에 심하게 부딪혔고 멀리서 사람들이 비명 소리, 운전하던 친구의 통곡 같은 비명이 수영장 물 속에서 소리가 울려퍼지듯 웅웅거리며 들려왔습니다.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될 당시 생존자들도 이런 현상을 겪었다고 합니다. 뛰고 있는 소방대원들이 느리게 걷는 것처럼 보이고 날아가는 파편에 새겨진 글씨까지도 완벽하게 읽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현상을 왜곡 현상이라고 합니다. 왜곡 현상은 극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착시현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 현상에 빠져들며 ‘재빨리 움직여야’한다는 인식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시력이나 청각을 일시적으로 잃기도 한다네요. 정신적인 현실 거부가 분명히 도망쳐야하는데도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거부 단계를 거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바로 위험 단계에 닥치면 뇌가 ‘탈출’이라고 인식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는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재난 상황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매우 높아진다고 하네요. 생존자들이 말하는 뇌 트레이닝 방법은 ‘이건 사실이 아닐꺼야’라는 왜곡의 소리가 들려올 때 ‘이건 사실이야. 정신차려’라고 대응하도록 반복해서 훈련을 하는 겁니다.

실제로 모두가 거부 현상에 빠져있을 때 한 사람이 “건물이 무너진다. 밖으로 나가야한다”고 쉬지 않고 소리친 덕분에 한 부서가 살아남기도 했다고 합니다.

다음 번엔 거부 이후의 단계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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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