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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리다매'의 공습 … 한국산 세계일류상품도 흔들린다

부산에 본사를 둔 ㈜은성사는 낚싯대 하나로 전 세계 강태공의 지갑을 낚았던 회사다. 한때 세계 시장 점유율이 20%를 넘었다. 낚시 종주국 일본에서만 한 해 2000만 달러(약 220억원) 이상을 팔았다. 하지만 이 회사는 이제 수출을 하지 않는다. 은성사 관계자는 “단가가 30~40% 싼 중국산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말했다. 박리다매로 물건을 파는 중국의 ‘중리다매(中利多賣)’로 인한 대가는 혹독하다. 한때 1300여 명이었던 이 회사의 공장 직원은 120명으로 줄었다.



위기의 국가대표 상품
일류상품 업체 절반이 매출 줄어
한국서 만드는 쓰리쎄븐 손톱깎이
중국산에 밀려 군 입찰서 탈락
“1등 기업도 한순간 추락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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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덜미만 잡히는 게 아니다. 앞도 가로막혔다. 재생용 프린터 드럼 분야의 강자였던 백산OPC는 선진국 업체의 견제로 실적이 곤두박질했다. 일본의 캐논이 제기한 145억원대 특허권침해 금지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해외 영업이 위축됐기 때문이다. 불과 5년 새 매출이 반 토막 났다. 회사 관계자는 “중국 업체가 저가의 일회용 카트리지를 대량 공급하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시장을 호령했던 한국산 세계일류상품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본지가 7일 세계일류상품을 보유한 524개 기업의 실적을 전수 조사했더니 절반이 넘는 284개 기업(54.2%)의 매출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은 해당 기업의 재무 자료를 기준으로 2013년 1~3분기와 지난해 1~3분기를 비교했다. 대상이 된 세계일류상품은 세계 시장 점유율 5위 안에 드는 제품 중에서 기술력과 상품성 등을 평가해 산업통상자원부와 KOTRA가 2001년부터 지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제조업에서 ‘국가대표’ 인증을 받은 두 곳 중 한 곳은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는 뜻이다. 박태일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글로벌 경기 부진 여파도 있지만 세계 시장에서 ‘메이드 바이 코리아’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라며 “일류 기업이라도 한순간에 벼랑 끝으로 몰릴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라고 말했다.



 국가대표 중의 대표인 삼성전자는 2000년 이후 연평균 15조원가량 매출이 늘었으나 최근 성장세가 멈췄다. 세계 1위 조선회사인 현대중공업은 저가 수주 부메랑을 맞으면서 창사 이래 최대 영업적자를 냈다. 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는 1조~4조원, 두산인프라코어·볼보건설기계는 1000억~4000억원 매출이 감소했다.



 대기업의 부진은 도미노처럼 협력업체로 이어졌다. 조선기자재나 기계부품 같은 분야에서 한 우물을 파면서 착실하게 성장해 왔던 강소기업이 된서리를 맞은 것이다. 8만 종류가 넘는 용접용 파이프 이음쇠를 만드는 성광벤드는 2013년 3분기까지 3074억원이던 매출이 지난해엔 2297억원으로 25% 줄었다. 회사 관계자는 “세계 경기가 호전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마땅한 대책이 없다”고 했다.



 세계적 경기 침체 외에도 이들에겐 기술 경쟁력, 환율 등 극복해야 할 난관이 수두룩하다. 매출이 140억원 줄어든 중장비 부품업체인 동일금속은 일본 수출 비중이 60%가 넘는데 엔저 때문에 고전 중이다. 카지노용 모니터 세계 1위인 코텍은 원화 강세 때문에 매출이 20% 이상 줄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꿋꿋이 한국에 공장을 유지하며 생산을 하는 ‘메이드 인 코리아’ 기업은 오히려 정부의 역차별을 호소하기도 한다. 중리다매의 공세 속에서도 천안 공장을 유지하며 고급 손톱깎이 시장에서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 쓰리쎄븐은 최근 정부 납품과정에서 쓰라린 경험을 했다. 육군에 34만여 개의 손톱깎이 세트를 공급하는 입찰에서 떨어진 것이다. 이문을 남기지 않은 수준인 세트당 1280원을 적어냈지만 1079원을 제시한 E사에 밀렸다. E사는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한다. 육군의 구매요구서 규정이 ‘모든 재료 및 가공·조립은 국내에서 획득, 제조해야 한다’에서 ‘모든 재료 및 가공·조립은 직접 획득, 제조해야 한다’로 바뀌면서 중국산 도입이 가능해졌다. 김상묵 대표는 “중국에서도 군 물자 조달 때는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에 우선 기회를 준다”며 “오로지 가격만 중시하는 조달 정책 때문에 안방에서도 외면받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영훈·이상재·손해용·박수련·김영민 기자 filic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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