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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경영권 승계 관행, 이젠 달라져야

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제목에 혹해 구입한 일본 젊은이들에 관한 책이다. 사회학자인 일본인 저자는 일본은 ‘절망의 나라’라고 했다. 좁은 취업문, 40%에 육박하는 비정규직, 끝없는 불황에 허덕이고 있어서다. 그런데 이런 나라에 사는 젊은이가 행복하다니! 결론은 섬뜩했다. 청년들이 미래를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출구가 없으니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접고 현재에 만족하며 산다는 거였다.



 그럼, 우리 젊은이들은?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도 일본과 대단히 흡사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전엔 훨씬 가난했다는 (어른들의) 지적은 틀린 말이 아니지만 그때의 젊은이들에게는 기회가 많았다” “성장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달려왔는데, 돌연 경제성장이 멈추자 모두가 망연자실해졌다” 등등. ‘일본’을 ‘한국’으로 바꾸면 그대로 우리 얘기였다. 그렇다면 한국 젊은이들도 일본처럼 행복할까?



 일본 도쿄의 아시아개발은행(ADB) 연구소 박재하 부소장은 “아니다”고 단언한다. 저성장·고령화가 일본만큼 진행되지 않아서? 기회의 창이 더 열려 있어서? 정규직 꿈을 포기하지 않은 젊은이들이 더 많아서? 박 부소장은 이보다 경영권 승계 관행을 꼽았다. 오너 가족이라는 이유로 20대에 임원이 되는 관행이 한국의 젊은이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일본도 우리 재벌과 같은 동족(同族)기업이 꽤 있다. 상장기업 중 대략 10%다. 글로벌기업으로는 도요타자동차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의 승계 관행은 우리와 다르다.



 도요타는 3대까지 승계됐지만 전문경영인과 번갈아 하는 ‘혈연 중심 혼합 승계형’이다. 창업 이후 11명의 최고경영자(CEO) 중 오너 일가 6명, 전문경영인 5명이었다. 무엇보다 CEO가 되는 과정에서 큰 차이가 없다. 2~3세가 CEO 되는 데 입사 후 평균 31년, 전문경영인은 35.8년으로 비슷하게 걸렸다. 처음 CEO가 될 때 나이도 오너 57세, 전문경영인 62세였다. 심지어 오너 가족이 CEO가 될 때 노조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노조가 “실력 있는 창업가족은 그룹 구심력의 상징”이라고 평했을 정도다.



 우리는 어떨까. 3년 전 20대 재벌그룹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오너 가족은 입사해 평균 6.6년 만에 임원, 14.8년 만에 사장이 됐다. 나이로 보면 평균 27.9세에 입사해 34세에 임원, 42세에 사장이 됐다. 한진그룹 막내딸이 27세에 임원, 아들은 31세에 계열사 사장이 된 게 그다지 이상하지 않은 까닭이다. 하지만 임원이 되는 데 21년 걸리는 일반 직장인들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일본은 전문경영인의 파워도 상당하다. 소니와 마쓰시타는 2세에게 경영권을 넘기려 했지만 실패했다. “2세가 능력이 없다”는 전문경영인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승계 과정도 차이가 크다. 간장으로 유명한 기코망은 직계 가족만 고집하지 않는다.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친·인척의 2세들을 모두 입사시켜 현장에 보낸다. 그런 후 수십 년의 테스트를 거쳐 승계한다. 능력 없는 가족에게 경영권을 넘기지 않기 위해서다. 일본에서 동족기업과 승계를 둘러싼 구설이 적은 까닭이다.



 한때 오너경영과 전문경영인 경영체제 중 어느 게 더 우월한지를 놓고 논쟁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이 논쟁은 쑥 들어갔다. 위기 극복엔 오너경영이 정답이었기 때문이다.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 먼 미래를 내다본 장기 투자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위력을 발휘했다. 한국 기업이 글로벌기업으로 고속성장한 이유기도 하다. 그렇다고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조현아 사태가 그 증거다. 기존의 승계 관행이 여론의 힘에 밀려 제동이 걸린 사례다. 사회가 투명해지고, 저성장이 지속된 결과 아닐까. 하물며 우리의 반재벌정서는 진작부터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재벌 스스로 달라지는 수밖에 없다. 더 늦기 전에 승계 관행을 바꿔야 할 거다. 지금 방식으로 승계하는 건 갈수록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야 오너 체제도 유지할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가족이라고 특별 대우하지 않는 일본 동족기업 사례를 참조했으면 한다. 이게 조현아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이지 싶다.



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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