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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바이러스와의 공생

대상포진(帶狀疱疹)에 걸렸다. 다소 음습한 느낌을 주는 이름의 이 병의 특징은 심한 통증이다. 혹자는 출산이나 포경수술의 고통에 비교하기도 한다. 칼에 찔리거나 베이는 듯한 아픔이 간헐적으로 닥쳐온다. 이 병을 일으키는 것은 수두 바이러스다. 대부분이 몸 밖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 아닌, 본인 척추의 신경절에 잠복해 있던 수두 바이러스가 면역력이 떨어진 틈을 타 증식을 재개하는 것이라고 한다. 수두를 앓았던 것이 초등학교 2학년 때였으니 40년가량을 ‘봉인’ 상태로 몸속에 있었다는 것 아닌가. 인내력이 대단한 놈들이다.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 파견됐던 한국 의료진 중 한 명은 지금 독일의 병원에 격리돼 있다. 에볼라 출혈열 환자의 피를 뽑는 과정에서 주삿바늘이 보호장갑을 찢으면서 맨살의 손가락에 스쳤기 때문이다. 의료진의 몸속으로 에볼라 바이러스가 침투했는지는 최대 21일 동안 지켜봐야 알 수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지금까지 발견된 바이러스 중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이다. 치사율이 70%에 이른다.



 축산농가들은 구제역 때문에 난리다. 돼지에 이어 소에게도 번졌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발굽이 두 개인 동물에게만 기생한다. 공기에 의해서도 전파된다는 점이 공포스럽다. 4년 전 구제역 대란 때 덴마크 국립 수의학연구소를 찾아가 세계적 동물 바이러스 학자인 그레엄 벨스햄 교수를 만난 기억이 난다. 그는 “구제역 바이러스가 북한에서 오는 것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바이러스가 바람을 타고 수백㎞를 이동할 수 있다”고 했다. 북풍이 부는 계절에 구제역이 창궐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이러스가 바람을 타고 날아다닌다면 북한의 구제역은 중국이나 몽골에서 시작된 것일 수도 있다. 인접국끼리의 공조 없이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바이러스는 전쟁·기아·세균 못지않게 인류를 괴롭혀 왔다. 1918~19년 미국 시카고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번진 ‘스페인 독감’은 2500만~5000만 명을 희생시켰다. 우리나라에서도 당시 약 14만 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무오년(戊午年) 독감’ 사태라 불리는 일이다.



 인류는 백신과 항바이러스제 개발로 바이러스의 번식에 맞서왔지만 박멸시킨 것은 천연두 바이러스뿐이다. 몸속에서 수십 년을 조용히 버티고, 바람을 타고 국경을 넘나든다니 ‘정복’은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다.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쯤에 있는 존재와 고등 생명체의 공생, 끔찍한 숙명이다.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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