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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흔든 시 한 줄]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아무 일도 너희에게 일어나지는 않으리./안에 오랜 피가 서려 불길 일으켜/멸하라 멸하라고 분노했어도,/ 두 골짝 고루 비춰 해를 주시는/하느님은 너희들도 사랑하시는 것을,/-악한 자가 어찌 길이 형통하며/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삼 연고니이까?



- 박두진(1916~1998) ‘예레미야는’



악인이 더 잘되는 모순된 세상

신의 뜻에 인간행동이 더해져야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는 사람은 신(神)을 바라본다. 그러나 신이 주재한다는 세상도 인간이 주재하는 세상 못지않게 이(利)가 의(義)를 누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80년대 초 대학에 입학해 이런 세상의 모습에 번민하던 젊은 시절, 시인 박두진은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로 시작하는 예레미야의 항변(예레미야 12장 1절)을 화두로 던져주었다. 이는 예레미야의 질문이자 박두진의 질문이었고, 또한 나의 물음이었다. 신이 직접 다스렸다는 예레미야의 시대, 즉 구약(舊約) 시대도 세상은 정의롭지 못했고, 신이 직접 내려왔었다는 신약(新約) 시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예레미야의 질문 위에 녹두장군 전봉준을 추모한 시인 김남주의 ‘황토현에 부치는 노래’를 덧대었다.



 “보아 다오, 그들은/강자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자유를 위해 구걸 따위는 하지 않았다/…/성단의 탁자에 손을 얹고 선을 구걸하지도 않았고/돈뭉치로 선을 사지도 않았다”



 그렇게 신의 뜻에 인간의 행동이 더해질 때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나는 믿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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