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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북한 장마당에 LED TV·노트텔까지 … "생수 없어서 못 팔아"

2013년 9월 평양 중심가인 영광거리 뒤편의 메뚜기시장에서 상인들이 치약·샴푸 같은 생필품과 돼지고기로 보이는 육류를 판매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은 핵·미사일 과학자에게 각별한 애정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찬사나 훈장·표창 뿐 아니라 주택과 가전제품 같은 물량공세도 이어집니다. 이들을 위한 과학자거리를 조성하도록하고 넓은 평수의 고층 아파트도 선물합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아파트 공터에 텃밭을 만들어주라는 특이한 주문을 합니다. 석달 전 위성과학자지구를 방문했을 때도 “주택지구에 과학자들을 위한 텃밭도 조성해 놓고 배추·무우를 비롯한 남새(야채)를 재배하고 있는 걸 보고 기뻐했다”는 게 노동신문(10월14일자) 보도입니다.

"미국 할아버지가 수령님보다 세"
달러화 인기 치솟고 북 화폐 찬밥
핵·미사일 과학자 아끼는 김정은
채소 내다팔게 텃밭 딸린 집 선물



 보통 30~50평 정도 규모인 텃밭은 협동농장과 별개로 개인이 가꾸고 수확할 수 있는 밭인데요. 텃밭에서 나온 작물을 내다팔아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죠. 공들여 가꾸다보니 단위 면적당 수확이 공동경작의 경우보다 훨씬 많다고 합니다. 최고지도자가 첨단 과학자들에게 텃밭을 가꾸도록하는 상황은 북한 경제의 현실을 엿보게합니다. 텃밭작물을 팔수 있는 곳이 ‘장마당’입니다. 북한식 시장을 통치하는 말이죠.



 정권수립 초기 북한엔 3일장, 5일장 같은 재래식 장마당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1958년 8월 개인상업을 폐지시키고 국영유통이나 협동상업으로 만든 뒤 모두 폐쇄됐습니다. 주민들이 필요로하는 상품이 충족되지 못해 1964년 농민시장 형태로 장마당이 운영됐죠. 소련과 동구권 붕괴 등으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1990년대들어 장마당에 대한 의존은 커졌습니다.



 농민시장으로 불린 초기 장마당엔 채소와 과일·명태 같은 농수산물이 주를 이뤘는데요. 최근들어선 거래 품목이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이젠 “고양이 뿔 말고는 없는게 없다”고 할 정도라는군요. 과자와 비누·치약 같은 생필품이 인기라고합니다. 개성공단에서 흘러나온 의류와 초코파이, 간식용 소시지, 막대커피로 불리는 커피믹스도 은밀히 거래된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평양과 지방 도시엔 중심가 뒷골목에 ‘메뚜기 시장’도 성행중입니다. 보자기를 펼쳐놓고 샴푸나 의약품 등을 팔다가 단속반이 나오면 곧바로 짐을 싸 이리저리 이동하며 팔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는군요.



 장마당에선 생필품과 함께 남들에게 자신의 부를 과시할 수 있는 아이템이 인기라고 합니다. 국내 탈북단체들에 따르면 지난 한해 북한 장마당에선 평판TV로 불리는 LCD나 LED텔레비전과 도난경보기, 짧은 여성치마 등이 베스트셀러였다는군요. 평양판 한류(韓流)로 불리는 한국 영화·드라마를 손쉽게 볼수 있는 장비인 일명 ‘노트텔’(EVD플레이어)도 중국에서 은밀히 반입돼 거래된답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생수를 먹는 경우도 늘고 있어, 한 병에 1300원하는 높은 가격에도 물건이 없어 못팔 정도라고 하는군요. 중국산 생수병을 들고 거리를 다니는 걸 부의 상징이나 최신 유행으로 여기는 풍조도 나타났다고 합니다.



 북한 시장에서 가장 대접받는 화폐는 미국 달러입니다. 이른바 ‘달러화(dollarization)’로 불리는 북한 경제의 달러중심 거래는 점차 심화되는 추세입니다. 한때 북한 당국이 시장에서 달러를 퇴출시키려 평양 등의 외화상점이나 외국인 상대 매장에서 유로화만을 결제토록했지만 달러쏠림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겁니다. 중국 위안화도 맥을 못추게 됐답니다. 대신 북한 화폐는 거의 퇴출위기에 처했다고합니다. 장마당에서 김일성 초상이 새겨진 북한돈은 속칭 ‘북데기’라고 불린답니다. TV 한대에 인민폐 1000위안 정도 하는데 이걸 북한돈으로 바꾸면 한 보따리가 되기 때문에 이런 취급을 받는다는군요.



 주민들 사이에는 “미국 할아버지(100달러에 새겨진 벤자민 플랭클린을 지칭)가 제일 힘있고, 중국 할아버지(100위안에 그려진 모택동)가 그 다음, 수령님(북한화폐의 김일성을 지칭)이 제일 마지막”이란 말이 돌고있다고 합니다.



 북한 장마당에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돈주’라고 불리는데요. 정작 돈과 상품유통을 쥐락펴락하는 큰손은 화교상인이라고 합니다. 대북 정보 관계자는 “북한 경제의 실상을 김정은 보다 잘 알고 있는게 화상(華商)”이라고 전합니다. 화교 상인들은 중국으로부터 원료를 들여와 북한의 공장에서 자기들이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합니다. 대북 소식통은 “중국은 화교 상인들을 통해 북한 경제의 실상을 비교적 소상한게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북한 장마당의 확산은 공식적인 경제부문이 축소되고, 대신 사적 경제영역이 늘어나는 걸 의미합니다. 2002년 7·1경제관리 개선조치가 상품공급 부족 등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국가를 믿지 못하겠다는 의식은 더 확산됐다는데요. 그래서 북한 주민들이 오늘도 장마당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는가 봅니다.



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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