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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째 특수학교 못 세운 서울, 당신 자녀라면 …

특수학교, 주민 소통 마당으로 4일 오후 장애인 특수학교인 서울 강남구 ‘밀알학교’의 북카페를 이웃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 학교가 들어서려 하자 상당수 주민들은 “집값 떨어진다”며 반발했다. 하지만 체육관과 미술관, 음악홀 등을 개방한 이 학교는 ‘주민 사랑방’이 됐다. [김상선 기자]


이진희(50·여·서울 서초구)씨는 고2 아들의 통학을 위해 매일 6시간씩 운전한다. 아들은 뇌성마비로 팔다리를 가누지 못한다.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특수학교로 아들을 등교시키는 일은 5년 전 시작됐다. 아들이 서울 관악구 재활학교에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자 집 근처엔 그를 수용할 중·고교가 없었다. 이씨는 “뇌성마비 학생이 다니는 특수학교가 서울에는 5곳뿐인데 모두 멀고 정원도 차 있었다”며 “사정이 이러니 호주나 캐나다 등으로 이민 가는 학부모가 주변에 많다”고 토로했다.

[이젠 시민이다] 1000만 시민에 특수학교는 29개뿐
뇌성마비 고2 아들 다닐 학교 없어
매일 서초~경기 광주 6시간 운전
1997년 반대 컸던 일원동 밀알학교
이젠 주민 사랑방 … 주변 집값 올라



 장애 학생이 다닐 수 있는 특수학교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에선 2002년 종로구 경운학교가 개교한 뒤 13년째 특수학교가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1000만 시민이 사는 서울에 특수학교가 고작 29개다. 주민들은 “집값이 떨어진다”며 반발하고,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이 원치 않는 시설을 굳이 들여놓으려 하지 않는다.



서울 동대문·중랑구에는 특수학교가 한 곳도 없다. 이곳에 사는 장애 학생 90여 명은 매일 10~15㎞ 거리를 통학한다. 강서·양천구에도 특수학교가 한 곳뿐이어서 장애 학생 170여 명은 다른 구에 있는 학교를 다닌다.



 강서·양천구에 사는 장애 학생과 학부모들은 최근 들어 가슴에 큰 멍이 들었다. 서울시교육청은 강서구 공진초등학교 가양분교 자리에 특수학교를 세우려 했으나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는 소식을 들어서다.





 특수학교 자리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반대 서명도 진행했다. 지난해 12월 31일 만난 60대 아파트 주민은 “부자 동네도 많은데 이제 막 개발되려는 지역에 특수학교를 만든다니 반가울 리가 있느냐”며 “일반 학생들이 안 좋은 영향을 받을까 걱정하는 부모도 많다”고 말했다.



 중랑구의 특수학교 설립도 3년여 동안 별다른 진척이 없다. 시교육청이 이곳에 학교를 세우려 했으나 주민 반발을 의식한 구청과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지난해 경기도 용인에서도 특수학교 설립 계획에 항의하는 주민 집회가 이어져 경기도교육청이 현재 대체 부지를 물색 중이다.



 특수학교가 기피 시설로 인식되는 상황은 한국에서나 볼 수 있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선진국에선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금기시하고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오랜 기간에 걸쳐 자리 잡았다”며 “시민의 역사가 짧은 한국은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 현상이 팽배하다”고 지적했다. 중앙미디어네트워크의 새해 어젠다 ‘이젠 시민이다’에서 추구하는 시민은 절제라는 성숙한 교양을 갖추고, 공공선을 추구하는 시민이다. 이젠 약자를 포용하는 성숙한 의식을 갖춰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대안은=이태수 전남대 특수교육과 교수는 “주민 의식을 단번에 바꾸기는 어렵다”며 “특수학교와 주민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 사회에서도 상생의 성공 사례가 있다. 1997년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개교한 밀알학교가 대표적이다. 이곳 역시 개교 전엔 주변 아파트 주민들이 항의 시위를 벌인 데 이어 통학버스 진입로를 가로막기도 했다. 하지만 4일 찾아간 밀알학교는 주민의 사랑방이 돼 있었다. 학교 재단이 운영하는 카페와 빵집엔 4인용 테이블 40여 개가 주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밀알학교가 갈등을 상생으로 바꾼 비결의 으뜸은 주민과의 소통이었다. 개교 후 학교 측은 체육관 등을 주민에게 개방했다. 도자기 작품으로 장식된 음악홀에선 매주 공연을 열고 학교 안에 웨딩홀까지 마련했다. 카페에 앉아 뜨개질을 하던 한모(74·여)씨는 “개교 전 주민들이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며 극심하게 반대했는데 오히려 지금은 이 학교 때문에 집값이 올랐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이 학교에서 자원봉사도 활발하게 한다. 10여 년 동안 수업 보조활동을 한 장수연(54·여)씨는 “아이들 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많이 배우고 있다”며 “고등학생인 딸도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천인성·정종훈·신진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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