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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제대로 읽는 재팬] "셰익스피어보다 관광영어 배워야" 일본 뒤흔든 GL논쟁

한국의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센터시험’(17, 18일)을 앞둔 요즘 일본 대학가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이름하여 ‘GL 쇼크’.



"극소수 대학 외엔 직업훈련 매진을
더늦으면 일본 경제 수렁에 빠진다"
한 컨설턴트, 민관대책회의서 제안
기업 "대환영" 대학 "말도 안돼" 발끈

 대학의 틀 자체를 뒤흔들어 놓을 지 모를 이 대변혁의 불씨는 지난해 9월 일본 총리 관저의 한 회의에서 비롯됐다.



 “대학을 이대로 방치해선 안됩니다. G형 대학과 L형 대학 두 종류로 과감하게 나누고, 배우는 것도 전혀 다르게 해야 합니다.”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가 의장으로 참석하고 주요 각료, 전문가 12명으로 구성된 ‘마을·사람·일자리 창생(創生)회의’에서 불쑥 나온 이 제안에 참석자들은 경악했다. 제안자는 도야마 가즈히코 경영 컨설턴트. 2000년대 초반 ‘산업재생기구’의 대표를 맡으며 ‘기업 회생의 마술사’로 불렸던 인물이다.



 그가 말한 G형 대학이란 글로벌(Global)에서 싸울 극소수 인재를 육성하는 대학. 반면 L형 대학은 지역밀착(Local) 일자리에 종사할 다수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직업훈련형 교육을 하는 대학을 뜻한다. 바꿔 말하면 도쿄대·게이오(慶應)대·와세다(早稻田)대 같은 이른바 일류 이외 대학은 학문적 교육을 아예 그만두고 직업훈련에 전념해야 한다는 자극적 제안이었다.



 파장은 엄청났다. 일본 사회 전체가 찬반 양론으로 갈렸다. 문제는 이 제안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일 정부는 지난해 12월 27일 최종적으로 “‘L(지방) 취업’ 대졸자에겐 학자금 대출 반환을 면제한다”라는 깜짝 놀랄 정책을 발표했다. 속도조절은 하겠지만 사실상 ‘L형 대학’으로 유도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G형-L형 대학 분리’ 주장의 가장 큰 근거는 일본 내 산업·고용 환경의 변화다.



 일 경제는 자동차·전기·전자 등 글로벌 경제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경제권(G형), 그리고 서비스업·사회복지 등 글로벌과는 별 관련 없는 경제권(L형)으로 나눠진다. 그런데 그 비중을 보면 L형이 80~90%로 압도적 다수다. 또 L형 산업은 갈수록 노동력이 부족해지고 생산성 또한 다른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상황이다.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전문대학 뿐 아니라 극소수 G형 대학을 제외한 모든 대학에서 학문보다 직업훈련을 중심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 결단 없이는 수십 년 내에 일 경제는 벼랑 끝으로 떨어질 것이란 얘기다.



 ‘창생회의’가 제시한 운영 개선 방안 또한 획기적이다. L형 대학의 커리큘럼은 이렇다. ▶문과대:기본적으로 없애거나 축소한다. 셰익스피어나 문학개론을 가르칠 게 아니라 대학이 위치한 지역의 관광명소 및 역사·문화에 대해 영어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입한다 ▶경영학과:전략론을 가르칠 게 아니라 회계와 문서 프로그램 작성법을 철저히 익히게 한다 ▶공대:기계역학, 유체역학 말고 도요타에서 사용 중인 최신 공작기기의 사용법을 가르친다.



 기업들은 대찬성이다. “매년 신입사원에게 실무 지식을 ‘0’부터 다시 가르치는 것도 지쳤다”(대기업 인사담당자)는 것이다. “대학교육과 현장의 괴리를 메우는 비용을 따져볼 때 사회 전체의 생산성과 효율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대학의 역할과 의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아마추어들의 덜 떨어진 생각”이란 반대론도 만만치 않다. 신분의 양극화, 교양의 과소평가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는 지적도 많다.



 일 언론들은 ‘G형-L형 대학’ 논의가 그 실현 가능성은 별개로 치더라도 일본 사회가 처해 있는 위기적 상황을 날카롭게 지적한 것이라고 실망한다. 실제 일본의 대학 수는 1991년 514곳에서 올해 781곳으로 늘었지만 학생 수는 오히려 감소로 돌아섰다. 발상의 전환 없이는 모두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토 모토시게(伊藤元重) 도쿄대 대학원 교수(경제학)는 언론 기고에서 “일본 경제 전체의 고용 및 부가가치 비중을 볼 때 지방경제가 훨씬 큰 만큼 L(로컬) 부문의 활성화 없이는 일 경제가 동력을 찾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여기에는 일본 특유의 산업구조도 한 몫 한다. 미국은 구글·애플 같은 지식산업, 그리고 금융 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굴뚝형 제조업은 과감히 접었다. 반면 독일은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고수하면서 고부가가치형으로 전환했다. 한국·중국 등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는 개도국을 의식한 산업구조 전환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미국형도 독일형도 아니다. 제조업 수출은 감소했지만 부가가치가 낮은 외식·건설·유통 등 서비스업이 다수다. 따라서 앞으로 부가가치가 낮은 서비스 분야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못하면 임금도, 국내총생산(GDP)도 증가하지 않는 일종의 블랙홀에 빠지게 된다.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L형 대학’의 등장이 필연적이란 지적이다.



 일 정부가 최근 확정한 ‘수퍼글로벌 대학(SGU)’도 ‘G형-L형 대학 분리’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일 문부과학성은 세계 대학순위 100위 진입을 목표로 하는 ‘톱(Top)형’ 13개 대학, 국제화에서 모범이 되는 ‘글로벌 견인형’ 대학 24곳을 선정했다. 도쿄대·교토대·게이오대 등 ‘Top형’에는 향후 10년 동안 매년 4억2000만엔(약 약 39억원)씩, 조치(上智)대 등 ‘글로벌 견인형’에는 매년 1억7200만엔(약 16억원)씩을 보조금으로 지급한다. 말이 ‘수퍼글로벌 대학’이지 사실상 ‘G형 대학’이다.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문부과학상은 “(SGU를 육성해) 앞으로 전세계 상위 100위 안에 일본 대학이 10곳 이상 차지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는 도쿄대(23위), 교토대(52위) 두 곳에 불과하다.



 ‘G형-L형 대학 분리’의 성패는 결국 일선 대학교수들의 반발을 얼마나 억제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는 게 지배적 분석이다.



 도쿄 소재 한 명문 사립대 관계자는 “‘L형 대학의 경우 순수학문 교수들은 그만 두거나 직업훈련 교원으로 훈련과 재교육을 받도록 한다. 또 기본적으로는 일선 실무 경험자를 교수로 삼는다’고 하는 의견에 어떤 교수들이 찬성하겠느냐”고 말했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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