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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5)제79화 육사졸업생들-7기 특별반(108)

7기특별이 육사에 입교한 것은 48년8월17일이었다.
정부수립과 독립이 선포된지 이틀후의 일이다.
7기정규보다 1주일 늦게 입교하고 졸업은 l개월 빨랐다.
그래서 「7특」은 정부수립후 최초로 입교하고 최초로 졸업한 육사생들이다.
이 때문에 그들은 자기네가 「사실상 육사1기」라고 자부하고 있다.
7특은 독립후의 국군 증편에 따른 장교부족을 메우기위한 비상조치였다.
그래도 장교가 모자라 7기후반과 8특이 모집됐다.
7특 임교생은 총2백46명이었다.
정내혁·안광수 두생도는 원래 일본육사출신으로 군영반을 나온 국군장교들이었으나 잠시 군에서 나갔다가 다시 군에 들어가기위해 7특으로 재입교한 사람들이다.
7특은 군에서나 사회에서 화려한 역할을 한사람이많다.
대장만도 이주일장군(작·함북경성·전감사원장)유병현 현주미대사(57·충북청원)등 2명이고 중장출신은 정내혁 현국회의장(57·전남곡성)등 4명이며 소장 18명, 준장 16명등 장군만도 40명이된다.
7특의 훈련담당중 대장은 박정희소령이었다.
박소령은 청주군관학교 2기생인데 생도중엔 이주일·윤태일·김묵등 만군선배들도 다수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낮에는 박정희소령을 선배로, 중대장·교관으로 깍듯이 모셨지만 일과후에는 중대장실에가서 농담과 옛얘기들을 나누면서 자유로 운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7특은 군사경력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군사교리보다는 민간생활로 해이해진 정신자세를 일깨운다는 명목으로 훈련을 엄하게 실시했다.
그래서 입교 사흘후인 8월20일 완전무장을 하여 실시한 장거리 구보에서 민영식·서청하등 후보생2명이 숨지기도했다.
이들은 대열을 벗어나 물을 마시러 갔다가 그대로 고구라져 절명한것이다.
그후 육사에서는 이두사람의 감투정신을 귀감으로 삼기위해 비석을 세웠으며 이코스를 육사생들의 장거리 구보로 정해놓았다.
김풍익생도(6·25때 전사)등 2명도 기절해 있다가 맨 후미를 달리던 방희생도(예비역소장·현 대한광업협회회장)에게 발견돼 절명직전 구출됐다.
방희생도는 물을 마시려다 역시 고꾸라져 의식을 잃고있던 이두명을 보고 부락민들을 동원하여 치료케 했던 것이다.
그날밤 생도들은 『미국식 훈련을 시킨다더니 사람을 죽이기냐』면서 학교당국에 항의했다.
이바람에 훈련책임을 말고있던 박정희소령의 입장이 한때 몹시 난처했었다.
박소령은 같이 뛰지는 않았지만 반환점인 갈매리에 지켜 서서 구보상황을 살피는등 지휘 책임을 진 소속중대장이었던 것 이다.
7특의 모집요강에는 ▲장교경력이 있는 자 ▲2주훈련후 경력에 상당한 계급부여라는 조항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2주훈련이 끝나갈 무렵 미고문관인 「로버트」준장이 학교에 나타났다.
광복군이나 일본군·만주군의 훈련은 미군훈련과 다르기 때문에 적어도 2개월 훈련은 받아야 임관시킬수 있다는 것이었다.
생도들은 『약속이 다르다』면서 스트라이크를 벌였다.
이때훈련연장에항의하여30명경도가퇴교했다.
그러나 잘 수습되어 입교2개월후인 10월12일 졸업하게됐다.
60명 정도가 탈탁되어 실제임관자는 l백89명이었다.
생도들 가운데는 하사관 출신도 끼여 있어 이들을 가려내어 7기정규로 돌렸다.
그러나 문중섭·고정훈등 4명은 장교경력은 없으나 특수기능이 인정되어 7특으로 임관됐다.
졸업생 대부분으로 「경력에 상당한계급」을 부여받지 못하고 소위로 임관됐다.
다만 만군장교출신인 이주일·윤태일생도만 대위계급으로 임관됐다.
7특은 건국후 최초의 육사임관자들이라하여 개교이래 처음으로 이승만대통령이 졸업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7특은 임관하자마자 전투에 참가, 6·25등 전투에서 공을 많이 세웠고 전사·실종만도 40명이나 된다.
특히 졸업하고 난 뒤 1주일 휴가를 마치고 각기 배속된 연대로 귀대하던날 여순반란 사건이 터졌다.
당시 반란진압은 해야겠는데 전투경력을 가진 소대장등 일선지휘자들이 없어 쩔쩔 매던 때였다.
그래서 9특졸업생들을 대량으로 여분반란 진압부대에 배속, 20연대만 하더라도 19명이나 배속됐다.
당시는 진압군속에도 공산주의자들이 끼여있어 소대장이 자기소대원의 총에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그런 위기 상황이었다.
현재 국립묘지에는 7기특별 동기생 위령탑이있다.
본래 국립묘지에 사관학교 기별 위령탑을 포함한 개별적인 구조물을 설치할 수가 없는데 7특만예외로인정받고있다.
박대통령시절 동기생들이 박대통령을 찾아가 『대통령이 중대장하면서 동기생을 길렀고 순국전사한 사람도 많이 있으니 위령탑을 세우게 해달라』고 건의해 승낙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7특들은 임관날인 10월12일이면 매년 동기생 위령탑앞에 모여 전사한 동기생을 추모하고 이승만·박정희 두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한다고한다.
7특은 임관21주년인 69년 지금의 육사 정문을 세워 모교에 헌납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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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