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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새로운 대한민국

지나간 역사는 바꿀 수 없다. 다만 역사에 대한 인식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바뀔 뿐이다. 그리고 새 세대의 참여와 선택으로 미래의 역사는 만들어가는 것이다. 2015년, 올해는 우리 역사의 한 고비라고 할 수 있다. 나라를 빼앗겼던 1910년 경술국치로부터 105년, 1945년 해방과 분단으로부터 70년이 된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밖으로는 전쟁과 테러의 먹구름이 세계 곳곳을 뒤덮고 있으며 안으로는 심상치 않은 파열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렇듯 요동치는 역사의 격류 속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아야 할 때다. 왜 100년이 넘은 경술국치로 돌아가야 하는가. 그것은 지난 70년 우리가 겪고 있는 남북분단과 내부의 이념분열이 식민지화의 수모 속에서 전개됐던 독립운동 과정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우리 독립운동의 특징은 조선조 왕권체제로의 복귀가 아닌 새 공화국을 출범시킨다는 혁신성에 있었다. 다만 새 나라의 이념, 구조, 제도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냐에 대해서는 준비된 대답이 없었기에 그 모델을 찾는 과정에서 독립운동의 성격이 크게 두 갈래로 나뉘게 된다.

과거와 현재의 만남, 그 역사적 대화를 사진 합성으로 상상해 봤다. 서울 창덕궁 인정전의 현재 풍경을 바탕으로 하여 70년 전의 상황을 겹쳐 놓았다. 현대사의 두 거인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김구 임시정부 주석이 인정전 앞에서 악수하며 미소 짓고 있다. 광복 직후인 1946년 2월 실제 모습이다. 48년 단독정부 수립을 놓고 의견이 갈렸던 두 사람이 오늘 대한민국의 모습을 본다면 어떤 감회를 주고받을까. 위 사진에서 합쳐진 과거와 현재의 인정전 돌계단처럼 다시 손을 맞잡을 수 있기를 광복 70년의 아침에 새삼 기대해본다. [최승식 기자]


이홍구 전 총리
본사 고문
하나는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100여 년의 성공적 실험을 거친 미국식 민주공화국이다. 1903년 하와이 이민으로 출발한 미국의 교민사회는 자연스럽게 독립운동의 한 근거지가 되었다. 다른 하나는 1917년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으로 출범한 소비에트연방이었다. 얼어붙은 두만강 건너 만주와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한 지사들에게 레닌의 성공은 큰 자극제로 모델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렇듯 우리의 독립운동은 추구한 지향점이나 모델이 다양했고 조직이나 운동 방식도 여러 갈래로 나뉘었으나 모두가 애국적 국권회복운동이었으며 반제국주의, 반패권주의, 반봉건주의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독립운동의 특성은 지금까지도 계승된 측면이 없지 않으나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더불어 강대국 간의 세력균형 처리 방식에 의해 한반도가 임의적으로 양분됨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로 변형돼 버렸다.

70년 전과 오늘의 서울역 풍경이 대조적이다. 흑백 사진은 광복 소식을 듣고 군중이 몰렸던 과거의 서울역이다. 당시 서울역사는 ‘작은 도쿄역’이라 불리던 일본식 건축물이다. 예나 지금이나 건물은 그대로다. 대신 주위의 빌딩숲이 세월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김상선 기자]


 사실 1945년 8·15 광복 이전에 북위 38도 선을 경계로 한 한반도의 분단을 예견했던 한국인은 누구도 없었다. 또한 남한에 진주한 미국과 북한에 진주한 소련이 바로 세계를 동서로 양분한 냉전의 양축으로 등장하게 된 것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 냉전의 이념적·물리적 대결구도 안에서 독립운동기에 잉태되었던 새 나라의 두 설계도는 두 개의 대립되는 정부 수립으로 현실화되었다. 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9월 9일 북한 정부 수립으로 분단 대결구도가 완성되었고, 그로부터 2년 후 50년 6월부터 3년간 북한의 남침으로 촉발된 한국전쟁은 피로 물든 한반도가 동서 대결의 최전선임을 실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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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기와 냉전 초기에 우리는 20세기 근대사회가 만들어낸 전체주의체제의 성격과 위험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대중사회의 출현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국가 구성원 전체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20세기형 독재체제의 출현을 예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유일 지도자, 유일 정당, 유일 이념, 모든 매체와 정보통신 수단의 독점, 전 국민의 통제와 외부로부터의 격리 등으로 성격 지어지는 전체주의체제는 이념적 좌(左)와 우(右)에서 고루 실험되었다. 히틀러의 나치독일과 군국주의 일본이 우파적 실험이었다면 흐루쇼프가 20차 공산당대회에서 비판한 스탈린의 소련은 좌파적 실험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운동이 절정이던 1987년 6월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 을 오늘의 한국은행 앞 모습과 겹쳐 놓았다. 민주화는 산업화와 함께 현대사를 이끌어온 두 바퀴다. 산업화가 대한민국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시켰고, 민주화는 자유·인권의 가치를 일깨웠다. [최승식 기자]

 지난 70년에 걸친 남북한 체제의 발달 과정을 되짚어 볼 때 가장 큰 차이는 한국의 세계화 전략과 북한의 예외화, 즉 ‘우리식’의 고집이다. 북한체제가 전체주의체제의 교과서적 정의에 부합하는지 여부나 ‘70년을 버텨 온 성공적 전체주의 실험’이란 평가는 굳이 논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한국의 산업화 시기에 군사 리더십이 운영한 권위주의체제에 대한 여러 갈래의 평가와 비판은 계속될 것이다. 가난의 극복을 위한 강압을 어떻게 정당화하느냐는 것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충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70년째로 접어드는 한반도의 분단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으며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너무 멀어서가 아니라 큰 고개를 넘지 못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서두르기보다는 차분히 걸으며 길게 내다보아야 한다. 분단관리를 잘해야 통일의 기회가 온다는 것은 이미 독일이 보여주었다. 통일은 크게 외칠수록 오히려 멀어지기 쉽다. 목청은 줄이고 지혜와 인내력에 기댈 때 길은 가까워질 것이다.

 우리의 민주체제 발전과 통일 추구가 뒤섞이면 민주도 통일도 어려워질 뿐이다. 민주정치나 복지사회에 관한 추상적 원리 논쟁보다는 국가의 현실적 과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며 분단 사태의 위기관리에 힘을 모았던 독일의 보수와 진보 정당들의 선례를 주목해야 한다. 독립운동과 민주화 투쟁으로 저력을 길러온 한국 정치도 일상화된 분열의 원심력을 제어하며 당면한 국가적 과제를 성공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구심력을 찾는 데 힘을 모아야 하겠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큰 걸림돌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마음속에 축적된 응어리다. 개인·가족·나라 등 여러 차원에서 인간은 지난날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 지난 100년, 우리 민족은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행로에서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말할 수 없이 복잡한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특히 전쟁과 분단의 파괴적 압력에 눌려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 왔는가. 이러한 참담한 역사 과정에 대한 우리의 집단적 인식은 민족의 주체성을 담보하는 차원에서 영원히 보전될 것이다. 하지만 개인·가족·이웃의 가슴속에 깊이 응어리져 있는 아픔·억울함·분함·미움·슬픔 등 남겨진 마음의 유산은 어찌할는지. 그 마음의 상처가 남아 있고 상속되는 한 분열을 치유하고 분단을 넘어서려는 민족공동체의 동력은 쉽게 작동하기 힘들 것이다.

 해방과 분단 70주년을 맞는 을미년 새 아침에 우리 마음의 유산을 정리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인간의 소중함을 다시 확인하며 함께 만들고 지켜가는 민주공동체, 그리고 눈앞의 산만 넘으면 훤히 보이게 될 민족공동체 통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글=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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