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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2015년, 진보정치 원년

채인택
논설위원
2015년 새해로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광복, 그리고 분단이 70주년을 맞는다. 6·25전쟁은 65주년이다. 전투병 파병 16개국과 의료지원 5개국을 포함한 21개국에서 연인원 175만4000여 명의 유엔군이 이 땅을 밟았으며 이 가운데 4만896명이 목숨을 바쳤다.

 분명히 해둘 점은 당시 공산세력의 침략 앞에 ‘좌우가 따로 없이 힘을 합쳤다’는 사실이다. 모순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는 역사가 증언하는 진실이다. 개전 당시 영국은 클레멘트 애틀리(1883~1967) 총리가 이끄는 진보진영의 노동당 내각(1945~51년 집권)이 집권하고 있었다. 애틀리는 46년 세금을 재원으로 전 국민을 거의 무료로 진료해주는 국민건강시스템(NHS)을 도입하는 등 복지국가 건설에 주력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불리는 영국식 복지제도를 완성한 인물로 꼽힌다. 복지는 진보가 추구하는 가치 중 하나다.

하지만, 외교에선 확고하게 친미국·반소련·반공산주의 정책을 폈다. 대숙청·인명경시·인권탄압·관료주의를 비롯한 소련의 비참한 현실과 동유럽을 짓밟은 패권주의를 보고 공산주의를 혐오했기 때문이다.

 47년 당내 좌파가 결집해 ‘계속 좌향좌(Keep Left)’를 구호로 외치며 노동당이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중립적인 제3세력으로서 남을 것을 요구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49년 4월 공산권에 대항하는 서방 집단방위기구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창설에 앞장섰다. 공산당에 접근한 노동당원은 가차 없이 제명했다. ‘동지’라고 봐주는 법이 없었다. 국민을 위한 진보정책을 펴는 데 몰두하면서 소련이 영국의 의사결정에 개입할 수 없도록 차단했다. 개혁과 복지를 이루려면 공산당이나 소련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확신시켜 야 한다고 믿어서다.

 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애틀리는 즉각 파병했다. 영국은 미국에 이어 둘째로 많은 병력(연인원 8만7000명)을 한반도에 보냈다. 파병 비용은 안경과 틀니 지원비 등 복지예산을 깎아 마련했다. 당시 외무장관은 1922~40년 운송노조 위원장을 지낸 어니스트 베빈이었다. 그는 노동운동 중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공산당과 싸워본 경험이 있어 철저한 반공노선을 견지했다. 노동운동가 출신의 진보 반공주의자인 셈이다. 노동당은 이렇게 스스로 반성하고 대중과 함께 머리를 맞대며 미래를 위해 혁신을 마다하지 않는 전통을 세웠다. 마거릿 대처에 밀렸던 노동당이 90년대 토니 블레어 주도 아래 ‘신노동당’으로 새롭게 개혁해 재집권에 성공한 것도 이러한 DNA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을 대표하는 진보정당 사회민주당도 마찬가지다. 2차대전 이후 49·53·57년 총선에서 연거푸 집권에 실패했다. 유권자는 무산계급 혁명이나 외치는 낡은 이념정당에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59년 11월 마르크스주의 폐기를 앞세운 당 개혁안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채택했다. 계급투쟁·산업국유화·계획경제 등에 치우친 비현실적 정책은 내다버리고 대신 진보의 본질인 인권보장·기회평등·사회정의·세계평화·복지를 앞세웠다. 결과는 집권 성공이었다. 사민당은 빌리 브란트(69~74), 헬무트 슈미트(74~82), 게르하르트 슈뢰더(98~2005) 등 3명의 총리를 배출했다. 20년간 제1당으로 집권했으며 연립정부 참여를 포함해 25년 이상 국정을 책임지며 역사를 만들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판결로 통합진보당을 해산했다. 헌재는 진보의 탈을 쓴 종북을 도려낸 것이지, 알맹이 진보를 탄압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진짜 진보세력에 집권의 길을 연 것일 수 있다. 진보정치는 오랫동안 종북에 발목이 잡혀 제대로 꿈을 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북 제거를 계기로 한국의 진보세력은 건강한 민주주의와 따뜻한 시장경제, 동서화합, 세대 간 소통, 나아가 번영과 복지, 남북통일의 방법을 두고 보수와 치열하게 경쟁을 벌일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동지’라는 말에 빠져 자정과 개혁을 하지 못했던 진보세력의 통렬한 자기반성과 개혁 프로그램 제시다. 이를 이룬다면 국민 눈높이에 맞춘 진보집권 플랜도 나올 수 있다. 올해는 이를 위한 진보 원년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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