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노트북을 열며] 큰 욕심 없이 살고 싶다는 욕심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뭔가 새해 결심을 하기에 앞서 사무실 책상 주변을 한바탕 정리했다. 구석구석 쟁여 놓았던 별별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태 갖고 있었는지 기억조차 못한 것도 많았다. 책이며 자료며 처분할 것을 고르는 데 한나절 넘게 걸렸다. 그냥 내버릴 것만 모아도 큰 종이상자 여러 개가 넘쳤다. 지나간 것들을 왜 진작 버리질 못했는지, 쓸데없는 욕심에 혀를 끌끌 찼다.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에게 그때그때 주었더라면 요긴하게 쓰였을 자료나 물건 중에는 이미 시효가 지난 것도 눈에 띄었다.



 지나간 것들은 특히 창작자라면 얼마든 보물창고로 삼을 수도 있다. 한동안 묻어 두었던 과거는 잘 익은 김장김치처럼 새로운 문화상품이 되곤 한다. 1950~80년대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가장의 헌신적인 삶을 그린 영화 ‘국제시장’이나 90년대 히트송들로 올스타 무대를 만든 TV프로그램 ‘무한도전’의 ‘토토가(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편’이 가까운 예다. 물론 소구하는 대상은 좀 다르다. 전자가 아버지 세대의 고난과 희생에 공감하는 지금의 중년 이상이 중심이라면, 후자는 그 무렵 대중문화에 열광했던 지금의 중년 이하가 중심이다. 개인적으로 그 중간 세대쯤 된다. ‘토토가’는 그저 즐겁게 본 반면 ‘국제시장’은 마음이 복잡했다.



어려서는 한국전쟁 피란길에 아버지와 헤어지고, 자라서는 동생들 뒷바라지에 온몸을 던지는 주인공의 삶에 물론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지금 시대 가장 노릇에 결코 좋은 모델은 아니다 싶었다. 특히 노인이 된 그가 손주들까지 다 모인 자리에서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듯한 결말이 그랬다. 혹시 동생들 챙기느라 제 자식들에게는 살뜰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까지 떠올랐다. 그의 시대에 비하면 지금은 건사해야 할 동생도, 자식도 많지 않다. 그래서 가장의 무게가 덜해졌다고 할지 모르지만, 가장 노릇이 녹록지 않다는 건 여전하다. 아버지 역할은 권위주의적 가부장이 아니라 ‘친구 같은 아빠’가 지향점이 된 지 오래다. 일 하느라, 돈 버느라,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건 더 이상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일에 여유가 생겼을 리는 없다. 거창한 욕심이 아니라 그저 제 식구 먹여 살리며 오순도순 살고 싶다는 소박한 욕심도 불안한 일자리, 부족한 일자리에 곧잘 휘청거린다.



 한바탕 책상 정리를 하고 마음도 머리도 개운함을 느낀 건 잠깐뿐이었다. 몇 년 뒤 또 책상을 옮기더라도 비슷한 일을 겪게 되리라는 예감이 스멀스멀 찾아왔다. 정리정돈을 잘 못하는 습관만 아니라 언젠가 도움이 되겠거니 하면서 지나간 것들을 끌어안고 사는 습관도 하루아침에 바뀔 리 없다. 새해 큰 결심은 못했지만 이런저런 욕심이 없다면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 욕심껏 살면서 지나간 것에서 무엇을 취사선택할지, 새해에도 계속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