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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아브라카다브라

이정재
논설위원
‘푸른 양띠 해’ 첫날의 말머리는 아브라카다브라다.

 아브라카다브라. 고대 히브리어로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뜻. 우리 식으론 수리수리마수리쯤 되는 주문. 이 주문은 어떻게 수천 년을 살아남았나. 과연 주문을 외기만 하면 실제 이루어질까. “에이, 그럴 리가.” 왠지 아닐 것 같지만, 많은 연구자가 내린 결론은 “그렇다”다.

 반복되는 언어는 주술처럼 뇌의 잠재의식을 자극해 의식보다 더 큰 힘으로 상상을 현실화한다. ‘입버릇 이론’을 만든 작가이자 뇌과학자 사토 도미오의 설명은 이렇다. “뇌의 대부분은 의식보다 잠재의식이 차지한다. 말은 잠재의식을 자극한다. 인간의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상상만으로 운동 효과를 낼 수 있고, 상상만으로 학습 능력을 높일 수 있다.”(『기적의 입버릇』) 프랑스 심리학자 에밀 쿠에도 동조한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은 자율 신경계에 자동으로 입력되며 인간의 몸은 입력된 그대로 실현하려 한다.”

 희망이 말한 대로 이뤄진 사례는 부지기수다. 빌 게이츠가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난 할 수 있어” 주문을 외운 일은 너무나 유명한 일화다. 그는 말대로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전문가가 됐고, 세계 최고의 부를 일궜다. 한국에선 배우 김윤진 얘기가 잘 알려져 있다. 1999년 무명시절, 그는 “3년 안에 정상에 서겠다”고 매일 주문을 외었다고 한다. 3년 뒤, 그는 과연 영화 ‘밀애’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 후 안면마비에 걸린 그가 이를 극복해 2005년 미국에서 올해의 엔터테이너상을 거머쥔 것도 매일 주문처럼 “병마에 굴복하지 않는다”고 되뇐 것이 효과를 봤다고 한다.

 뭐든 뭉치면 세지는 법. 아브라카다브라도 그렇다. 2002년 월드컵. 대한민국은 같은 꿈을 꾸었다. ‘꿈은 이루어진다’를 매일 되뇌었다. 월드컵 4강신화는 현실이 됐다.

 아브라카다브라를 현대어로 옮기면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쯤 될 것이다. 자기 충족적 예언이 가장 잘 작동되는 분야가 어딜까. 바로 경제다. 너도 나도 잘된다고 하면 정말 잘되고, 안된다고 하면 정말 안된다. 오죽하면 ‘경제는 심리’란 말까지 나왔겠나. 소비 심리, 투자 심리를 경제 예측의 주요 지표로 삼는 것도 그래서다.

 어제 끝난 2014년을 잠시 돌아보자. 지난해 우리 경제의 언어는 어떤 것들이었나. 파산·불황·실업·침체·저성장…온통 부정이다. 고령화·저출산의 공포가 스멀스멀 온 나라를 덮었다. 특히 유행한 말이 ‘일본화(japanization)’였다. 잃어버린 20년, 일본을 닮아간다는 저주스런 주술의 언어다. 이 저주의 언어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읊어졌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까지 “잃어버린 20년이 우려된다”고 겁을 줬다. 설마 그러길 바라기야 했겠나. ‘겁주기 효과’를 노려서였을 것이다. 당장 돈을 풀고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감을 그렇게 표현한 것일 것이다. 그래도 새해엔 이 말부터 바뀌었으면 한다. “일본처럼은 안 될 것이다. 절대 그렇게 되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이러이러한 것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같은 말이라도 사람을 움직이는 건 희망의 언어, 골든룰이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골든룰은 적극적·긍정적이다.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 실버룰은 소극적·염세적이다. 실버룰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지난해 말 최경환은 이런 말을 했다. 기자들과 만나 내년 경제정책을 설명하는 자리에서다. “경제는 심리다. 너무 ‘힘들다 힘들다’ 하면 진짜 힘들어진다. 새해엔 말부터 ‘좋다, 괜찮다’로 바꿔야 한다.” ‘잃어버린 20년’으로 줄곧 겁주던 그 최경환 맞나 싶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경제 살리기에 도움이 된다면 여자의 변심처럼, 경제부총리의 변심도 무죄다. 그렇다. 오늘부터 겁은 주지도 받지도 말자. 대신 주문을 외자. 모두 함께 외우면 더 세진다. 아브라카다브라. 2015년 대한민국 경제, 살아난다.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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