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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1)-제79화 육사졸업생들(104)|장창국|정규7기의 활약상

7기생(정규)은 1백%가 일선 중대장 및 연대참모 등으로 6·25를 맞았기 때문에 누가 전공을 세우고 못 세우고의 차이를 구별할 수가 없다. 사실 모두가 죽음을 초월한 전투를 한 것이 사실이다.
7기생 중 6·25사변 전에 전사한 분 가운데 유명한 사람이 있다. 국민학교교과서에도 나오는 육탄10용사의 주인공인 「김소위」가 바로 7기생 김성훈씨다.
북괴군이 개성 송악산 동쪽으로부터 유엔 비둘기고지까지 약5km에 걸친 토치카를 축조한 후 49년 5월4일 북괴군대대 1천명이 중화기로 개성시를 향해 밀려들고 있었다.
이때 1사단(사단장 김석원장군) 11연대(연대장 최경록중령)하사관교육대가 졸업행군을 위해 황해도 백천까지 갔다오는 길에 개성에 도착했는데 전투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이 교육대의 구대장을 맡았던 김소위는 하사관후보생을 이끌고 나갔으나 적의 토치카가 워낙 견고해 박격포나 총격으로는 정복이 불가능했다.
이때 제1분대장 서부덕2등 상사 등 9명의 용사가 특공대를 조직할 것을 건의했으나 김소위는 자신이 혼자 갈 것을 결심하고 있었다. 부하들은 남은 병력은 누가 지휘하는가 하고 끝내 반대했다.
김소위는 하는 수 없이 9용사(서부덕·김종해·윤승원·이희복·박평서·황금재·양남순·윤옥춘·오제룡)에게 57파운드 폭탄 하나씩을 주며 굳은 악수를 나누었다.
이들보다 앞서 적진을 향하던 도중 박창근하사는 적탄에 맞아 숨지고 9용사는 적 토치카 속으로 용감히 뛰어들어 장렬히 전사했다.
김소위는 이 전투에서는 살았으나 바로 다음날 적의 박격포탄에 맞아 숨졌다.
그러나 후일 평양방송은 서부덕과 오제룡이 살아 있다고 보도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방송하기도 했다. 그 진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부상해 포로가 됐거나 북괴의 조작선전이라는 양설이 전사에 기재돼있다.
그때 11연대에서 같이 싸웠던 사람 중 7기생으로는 최일영씨(57·함북 경원·소장 전국방대학원장)가 있다. 최장군은 휴전회담이 진행 중이던 52년 12월 피아간에 마지막 전선확보를 위해 안간힘을 쓰던 때 경기도 연천 서북방의 유명한 노리고지 전투에서 1사단 11연대 3대대장으로 공을 세웠다.
김정운씨(56·평북 정주 사단장)도 6.25초 옹진전투에서부터 휴전 때까지 전장에만 있었다.
김장군은 전투에서 복부 관통상을 입고도 부하들을 전부 후퇴시킨 뒤 끝까지 남았다가 죽을 뻔한 일 등 일화가 많은 사람이다.
또 유명한 백마고지 전투를 치른 현국회 국방위원장인 김영선씨(57·경기양평)를 빼놓을 수 없다. 김장군도 육탄10용사를 배출한 1사단의 12연대에서 6.25전에 이미 전투에 참가했고 전란 때는 문산전투·무극리전투·영천전투·매봉산전투 등 큰 싸움을 치른 사람이다.
그는 9사단 30연대 1대대장으로 피아간에 24번 빼앗고 빼앗겼던 백마고지전투에 참가, 적의 38군 소속2개 사단과 맞부닥쳤다.
이때 전 장병은 부모에게 유서를 써 놓고 머리털·손톱을 깎아 후방으로 보내는 등 죽음을 각오하고 싸움에 임했다.
당시 김대대장은 『우리가 살 곳도 여기요 죽을 곳도 여기다』라는 배수진을 쳐놓고 응전한 결과 백마고지를 사수할 수 있었다.
김씨는 그후 파월백마부대 사단장을 맡는 등 백마와는 인연이 깊었다. 그는 백마사단장을 지내면서 매일 매일의 작전상황 등을 적은 일지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어 후일에 큰 전사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재순씨(56·대령예편)도 잘 싸웠다. 그는 1사단 15연대 1대대 중대장으로 6·25를 맞아 적전차에 육탄으로 돌입하다 머리에 파편상을 입은 것을 비롯, 후퇴당시 군 병력이 부족하자 부산에서 학도병을 모집, 대구 팔공산전투를 치르기도 했다.
김씨는 송요찬장군의 참모총장시절에 비서실장을 지냈고 5·16후 송장군이 내각수반을 할 때도 비서실장을 했다.
이밖에도 잘 싸웠던 사람들은 김춘집(56·평북·사단장) 김세돈(58·평북·사단장·미국이민) 조재준(사망)씨 등이 있고 포병장교로는 김용금씨(57·강원 인제·중장)가 있다.
김용금 장군은 51년 고양포전투, 52년 금화전투에서 포병대대장으로 많은 전공을 세웠다.
김씨는 사단장을 거쳐 국방부인사국장·합참정보국장을 지냈고 국방부직할 부대장도 역임했다.
그는 현재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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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