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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나는 불량국가에 살고 있지 않다

김준현
경제부문 기자
영화 ‘호빗’을 보겠다는 고 1 아들을 구슬려 ‘국제시장’을 선택했다. 영화를 놓고 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녀석은 의외로 재미있게 봤단다. 주인공과 비슷한 연배인 외할아버지가 영화에서처럼 흥남에서 배를 탔고, 부산 국제시장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걸 아이가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나도 지난해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 애를 먹었다. 잠시나마 사춘기 아들과 공감대를 이뤘다는 것만으로도 본전은 뽑은 것 같다. 물론 녀석이 영화에 감화 받아 “공부 더 열심히 할게요”라고 다짐하진 않을까 기대한 건 역시 욕심이었지만. 이왕 오버했으니 이런 얘기까지 했다면 아이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할아버지 세대가 저렇게 고생했으니 지금 우리가 이만큼 살 수 있는 거다. 우리나라 멋있지 않으냐”고.



 고리타분하단 소리 들을 줄 뻔히 알면서 자꾸 이런 얘기 하고 싶은 건 혹 아이가 자기가 태어나 자란 이 땅, 이 나라에 자괴감을 느끼고 있진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얼마 전 본 ‘한국의 OECD 성적표’란 페이스북 글이 계기가 됐다. 게시자가 언론보도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자료를 간추린 듯한데 한국은 자살률처럼 등수가 높을수록 기분 나쁜 항목 50개에서 1등이었다. 이름 붙이자면 ‘대한민국 워스트(worst) 50’쯤 되겠다. 사교육비 지출, 노인 빈곤율, 남녀 임금격차 등은 그런 줄 알았지만 보행자 교통 사망률, 당뇨 사망률도 1등이라니. 게다가 성 범죄 발생, 소득 불평등 등 7개 항목은 은메달이란다. 댓글에 쓰인 것처럼 ‘불량국가’ ‘열등국가’라 손가락질 받아도 할 말 없겠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불량하고, 열등한가. ‘워스트 50’은 우리의 모든 걸 설명하고 있나. 우리를 표현할 다른 게 있지는 않을까. 이를테면 이런 거다. OECD가 11월 발표한 경제전망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3.5%로 OECD 34개 회원국 중 1등이다. 내년 전망(3.8%)도 멕시코(3.9%)에 이어 2등이다.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리지만 우리 경제 아직 꽤 괜찮은 셈이다. 이런 것도 있다. 2012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율도 OECD 1등. ‘워스트 50’ 식으로 ‘베스트 50’ 만드는 것 일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베스트 50’ 같은 얘기 매력 없어 할 게 분명하다. ‘착한 남자’ 매력 없듯이. 그러나 매력 없기는 자신감 없는 남자가 더하다. 혹 ‘워스트 50’ 같은 유의 글만 잔뜩 본 우리 아이들이 자신감을 잃고 이런 매력 없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을까. 아니 내가 이미 그런 남자가 돼 버린 건 아닐까.



 세월호의 아이들, 윤 일병의 참혹한 죽음, 땅콩 리턴의 재벌 3세…. 굳이 ‘워스트 50’을 나열하지 않더라도 올 한 해 우리에게서 자신감을 빼앗아 간 일이 너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이 불량국가의 낙인은 아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의 아버지의 삶이 무의미하지 않은 것처럼. 대한민국, 자신감이 필요하다. 12월 31일이라서 해보는 얘기다.



김준현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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