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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따라 왔던 꼬마 관객 이젠 자녀 손잡고 옵니다”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의 김성녀 연희감독과 심청역을 맡은 소리꾼 민은경
마당놀이가 돌아왔다. 1981년 시작돼 30년간 250만 관객을 동원하며 대한민국의 겨울 여흥을 책임지다 2010년 막을 내린지 꼭 4년만이다.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작으로 ‘극장판 마당놀이’의 새로운 30년을 선언한 ‘심청이 온다’(2015년 1월 11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는 손진책 연출, 박범훈 작곡, 국수호 안무 등 원조 창작진이 ‘마당놀이 인간문화재’로 불리던 김성녀·윤문식·김종엽 ‘3인방’을 무대에서 떠나보내고 출연진을 전면 세대교체했다. 서정금, 김학용, 민은경 등 국립창극단 배우들과 김성예송재영 명창, 소리꾼 황애리가 주역을 맡고, 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 식구들이 가세한 77명 출연진이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관현악단의 경쾌한 캐롤 연주와 왁자지껄 놀이패의 길놀이가 마당을 열면 연출진과 관객이 뒤섞여 고사를 지내고, 신명나는 국악기 연주와 사물놀이, 한국무용 등 우리 전통연희의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지며 한 편의 퍼레이드 쇼가 펼쳐진다. “청아, 땅콩은 접시에 담아왔니?” 등 발 빠르게 요즘 세태를 풍자한 해학과 재치는 그대로, 천막극장 감성을 살린 사방 가림막에 화려한 영상을 투사하고 와이어 액션으로 선녀가 등장하는 등 스펙터클은 강화했다. 30년 관객 사랑은 여전해 12월 유료객석 점유율 90%를 웃돌며 매진 행렬중이다. 한국형 송구영신 레퍼토리로 정착될 ‘업그레이드 마당놀이’의 탄생이다. ‘새로운 30년’을 위한 세대교체의 중심에 선 김성녀 연희감독과 심청역 민은경을 만났다.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 중에서
19일 국립극장에서 만난 김성녀 감독은 심한 감기를 앓고 있었다. 4년 만에 새 출연진으로 올리는 마당놀이를 준비하며 쌓인 극도의 긴장이 개막과 동시에 한꺼번에 풀린 탓이다. 하지만 화장기 없는 얼굴에 털모자를 눌러쓰고 연신 코를 풀면서도 힘든 내색 없이 “오히려 감기가 나을 것 같다”고 활짝 웃으며 촬영과 인터뷰에 적극 응했다. 마당놀이에 대한 변치않는 열정이 짠하게 전해 왔다.

요즘 빈 좌석이 없을 정도라면서요.
“참 다행스러워요. 그동안 사랑받았던 저희 3인방이 없어도 관객이 모일까 큰 걱정이었는데. 4년 공백 두길 잘했어요. 변함없이 찾아준 관객들한테 감사하고 이제 또 이렇게 30년이 가겠구나 싶네요.”

연희감독으로 물러나 후배들 연기 보니 어떤가요.
“노래도, 연기도, 마당놀이 스타일이 있어요. 관객하고 노는 법을 전해주려 애를 썼는데, 솔직히 아직은 제가 뛰어나가고 싶을 때가 많아요. 관객을 같이 끌어가야 하는데 아직 부족하니까요. 다행히 관객들이 좋아해 주시는 걸 보니 이제 새로운 걸 받아들여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첫날 김종엽씨는 다녀가고 윤문식씨는 아직 안 오셨는데, 마당놀이를 생명처럼 생각하시는 분이라 좀 섭섭하시겠죠.”

윤문식·김성녀의 애드립이 마당놀이의 생명이었잖아요.
“당시엔 10번 봐도 10번 다 재밌도록 매일 바꿨죠. 이번에 유일하게 연출지시 아닌 애드립을 넣은 게 ‘옥황상제가 젖 더 먹고 오라 해서 비행기 회항했다’인데, 중앙대에서 마당놀이를 공부한 제자가 한 거에요. 제가 한국적인 음악극 인재양성을 위해 대학에 간 건데, 이렇게 준비된 제자들이 무대에서 채워주니 보람이 있네요.”

심청역을 맡은 민은경도 김 감독이 중앙대에서 키운 제자다. 김 감독은 민은경이 “당차고 성실한 슈퍼땅콩”이라며 “학교 때도 남들 다 놀 때 실력을 갈고 닦더라. 연습실이 없으면 혼자 건물 처마 밑에서 소리를 하던 성실함에 반했다”고 추켜세웠다. 민은경은 2008년부터 마당놀이에 참여했고, 현재 김 감독이 이끌고 있는 국립창극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은경씨는 마당놀이를 다시 하니 어떤가요.
“마당놀이에서 단면 극장보다 4배 이상 에너지 쏟으며 굉장히 많은걸 얻었거든요. 이번에 초심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마당놀이가 항상 ‘오늘 오신 손님~’이란 노래로 여는데 첫 공연 날 눈물이 왈칵 나더라고요.”(민)
“30년 동안 대답해준 관객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늘 울컥하는 노래에요. 마당놀이 보는 사람은 다 알죠. 첫날 고사 지낼 때 제가 나가 인사하니 관객들도 많이 우셨대요.”(김)

관객은 올림픽정신으로 마당 참여
민씨는 지난 6일 끝난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과 10일 시작된 마당놀이를 병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을 보냈다. 두 공연의 일정이 겹쳐 마당놀이에 못 설 형편이었지만 손진책 연출이 민은경 심청을 고집했다는 후문이다. 민씨는 몸은 바빠도 고향으로 돌아온 느낌이라 ‘춘향’에서 힘들었던 것이 오히려 치유받고 있다고 했다.

“예전 무대에 대한 향수가 있거든요. 과거 ‘3인방’과 함께했던 기억이 너무 강해 지금 무대는 좀 낯설지만요. 하지만 30년 관객들은 마당 자체를 좋아해 주는 느낌이에요. 저희가 좀 부족해도 너그럽게 봐 주시죠”(민)

“첫 공연 끝나고 근처 음식점에서 관객 수십 명을 만났는데, 우리가 나와야 재밌다 하시면서도 연말 놀거리가 생겨 고맙다더군요. 저도 후배들 잘 봐달라고 인사했죠. 마당은 그런 관객과의 끈끈한 정이 있어요. 꼭 봐줘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보시죠.”(김)

김 감독은 4년 전 막을 내릴 때 관객들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좋은 극장에 터를 잡고 새출발을 하게 돼 한결 가뿐해졌단다. 사실 마당놀이는 체육관이나 가설 천막극장의 열린 무대에서 관객과 어울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 왔다. 그래서 대극장에 마당놀이를 들여놓자는 안호상 국립극장장의 제안을 처음엔 거절했다고.

하지만 해오름극장의 드넓은 무대 위 3면에 가설객석을 올리고 1층 객석까지 사방에 가림막을 두른 뒤 화려한 영상과 조명, 와이어액션까지 동원하니 번듯한 맞춤형 마당놀이 극장이 됐다.

“해오름극장이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해 반대했어요. 달오름극장처럼 객석이 무대를 에워싸도록 리모델링하면 멋진 마당놀이 극장이 될 수 있죠. 그런데 박범훈, 국수호씨가 한번 부흥시켜보자는 거에요. 국립극장은 국민의 것인데 전통으로 국민과 놀아주는 게 국립의 의무 아니겠느냐며. 돌이켜보면 1년을 보내는 국민에게 힐링 프로그램 제공을 위해 국립에 필요한 공연을 찾는 극장장의 ‘촉’이 옳았던 것 같아요.”

고전의 기발한 현대화가 인기의 비결
마당놀이는 1981년 MBC 창사기념 프로젝트 공모에 당선된 손진책 연출의 ‘허생전’이 큰 인기를 얻으며 곧바로 연말 고정 레퍼토리로 정착됐다. 당시 극단 민예에서 우리 연극 만들기에 열중했던 손 연출이 새로운 한국적 공연 양식의 틀을 창조해 낸 것. 그러나 문화사대주의가 강해 번역극을 해야 예술로 인정받던 그 시절, 사실 마당놀이는 공연예술로 인정받지 못하고 평가절하됐었다.

“초기엔 마당놀이 배우라는 게 좀 창피했어요. 예술가가 아니라 쟁이 취급을 받았으니까. 오직 관객들만 사랑해준 예술이었죠. 그런데 전통을 공부해보니 손 연출이 전통 연희의 형식을 기상천외한 감각으로 현대화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연출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서 자부심과 긍지도 생겼죠. 고전을 기발하게 요즘 시대 이야기로 풀어가는 지점이 인기의 비결이기도 했어요. 남편에게 불만도 많지만 그 부분만큼은 존경합니다.”

김 감독은 수시로 “내가 뛰어나가고 싶다”며 마당놀이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지만 ‘세대교체’를 향한 단호한 의지로 이번 공연의 출연을 고사했단다. 영원히 지속되어야 할 마당놀이의 발전적 계승을 위해 개인적 미련을 떨쳐낸 것이다. 2010년 일단 막을 내린 것도 세대교체를 위한 배수진이었던 셈이다.

“3인방에 의존해 우리보다 나은 후배를 기르지 못한 게 잘못이었죠. 이제 우리도 힘이 점점 약해지는데, 또 다른 30년을 위해 그때 접었기 때문에 새롭게 시작될 수 있었어요. 이번에도 극장에서 출연을 원했지만 그러면 새 출발이 안 되겠죠. 3인방 없이도 과감히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국립극장이 마련해줘서 새로운 30년을 위한 연결고리가 된 것 같아요. 자리를 잡으면 우리가 까메오로 나갈 수도 있겠죠.”(김)

“막 내릴 때 젊은 배우들도 너무 안타까워했어요. 절대로 없어져서는 안 될 문화자산이니까요. 그래서 동료들과 소규모 마당놀이라도 하며 이어오고 있었죠.”(민)

배우 입장에서 마당놀이의 매력은 뭔가요.
“정해진 틀이 없는 관객과의 소통에 가장 매료되요. 연기 안에서도 자유로움이 있거든요. 무대에서 즐겨라, 놀아라 하지만 보통 무대는 그러기 어려워요. 아무리 재밌어도 대사를 정확히 해야되니까. 마당에선 가끔 대사가 좀 다르게 나와도 애드립으로 포장이 되죠. 예전 공연때 마지막 대사가 ‘아버지, 청이가 환생인간 되어 중전이 됐습니다’인데 ‘중전’을 까먹어 ‘환생인간 되어 환생인간 됐다’가 됐어요. 관객이 빵 터졌죠. 정극이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좀 부족해도 웃음으로 이해해주시는 관객 힘으로 가는 것 같아요.”(민)
“틀을 깨면서 노는 게 원래 어려운데 익숙해지면 굉장히 즐겁거든요. 배우들도 몸은 힘들어도 재밌어 하는 게 마당의 생명 같아요. 관객도 같이 즐기러 오는 게 특징이죠. 그야말로 올림픽 참여 정신으로 오시니까. 관객이 ‘어디 잘하나 보자’ 하고 앉아 있으면 3톤 트럭 끌고 가는 것 같지만 같이 놀아주면 두세 시간이 10분처럼 가거든요.”(김)

관객과 하나 되는 마당놀이의 정체성은 어떻게 얻어졌나요.
“판소리나 탈춤도 관객의 추임새로 가죠. 관객이 적극 들어와서 소통하는 게 전통의 특징이에요. 월드컵 때도 온 국민이 ‘대~한민국!’ 외치는 게 다 추임새에요. 그만큼 참여와 소통이 뿌리깊이 내재된 민족을 놀게 해줄 판이 없었죠. 심각하게 숨도 못 쉬고 지켜보다 박수치고 나오는 게 아니라 맘껏 풀어주자는 입장에서 원래 전통의 특징을 손 연출이 잘 끌어들인 것뿐이에요.”

어르신 위주인데 관객도 세대교체가 필요하지 않나요.
“마당놀이는 중장년층을 분명한 타깃으로 하는 장르에요. 그들이 손잡고 온 애들이 나중에 자기애들 데리고 오는, 그게 30년 관객이죠. 지금도 어린 애들이 많이 오는데 그 애들이 크면 자연스럽게 순환될 거라 봐요.”(김)
“맞아요. 마지막에 같이 어울리면서 춤출 때 애들한테 재밌었느냐 물어보면 걔네 말로 ‘졸 재밌다’고 그러거든요.”(민)

관객은 항상 변화를 요구하는데요.
“마당놀이는 날마다 새로운 이슈들을 담으면서 그 시대와 같이 가는 거니까 변화도 자연스러워요. 2020년 심청이는 지금과 또 다르겠죠. 심청이 얘기 속에 2020년을 담을 거니까. 시대와 함께 무한 변신하는 게 마당이란 장르인 걸요.”(김)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는 … 심청전을 뺑덕 어멈의 시점으로 풀어냈다. 원작에서 심 봉사의 재산을 탕진하고 바람나 도망간 악녀 뺑덕이 사실 심 봉사의 허위광고에 낚인 피해자라는 신세 한탄으로 시작한다. 심 봉사는 여색을 밝히는 능글맞은 노인, 심청은 당돌하고 톡톡 튀는 신세대가 됐다. 세 주인공이 만담 하듯 스토리를 이어가는 사이 무용수와 창극 배우가 뒤섞인 대규모 앙상블이 화려한 퍼포먼스로 심청 탄생, 곽씨부인 장례, 인당수 투신, 용궁 마당과 맹인 잔치 등 주요 장면을 이끈다.

해오름극장은 업그레이드 마당놀이에 걸맞는 현대적 설비로 극장 시스템을 적극 활용해 볼거리를 강화했다. 고사 상이 무대 한가운데서 솟아오르고, 11m 길이의 천으로 전체 객석을 감싸는 360도 스크린에 투사된 영상이 순식간에 극장 전체를 바다에 빠뜨리며, 태몽을 알리는 선녀가 와이어 액션으로 등장해 꽃을 건네는 등 스펙터클 넘치는 미장센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속시원한 풍자와 해학은 여전하다. SNS로 전파되는 최신 유행어는 기본, 페북으로 허위과장 광고를 하는 심 봉사, 심청이 젖주기 카톡방을 개설하는 동네 아낙들, 인당수 투신을 ‘현실도피적 자살행위’라 몰아붙이는 뺑덕어멈에게 ‘사회적 타살’이라 받아치는 심청, 인당수 투신을 만류하고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라 부추기는 청년 알바들 등, 지금 우리 삶의 마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이 질펀한 유머 속에 녹아들어 관객의 추임새를 부추긴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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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