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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의 비옥함이 끝없는 사랑 이야기의 샘

올 4월 타계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는 장편소설 여섯 권, 중편소설 네 권, 단편소설집 여섯 권, 논픽션 일곱 권 등을 남겼다. 『백년의 고독』으로 1982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라틴아메리카의 상징이 되었다.

자서전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의 첫 대목은 어머니와 함께 자신이 태어난 콜롬비아 아라가타카에 있는 외할아버지의 집을 팔러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중단하고 작가로서의 삶을 결심한 그에게는 이 무렵이 작가로서의 삶을 결단하는 시기였다.

어머니는 연락도 없이 바랑키야에 있는 마르케스를 찾아온다. 카리브해 연안에 있는 이 아름다운 지역은 마르케스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곳이다. 그는 이 지역 일간지 ‘엘 에랄도’에 칼럼을 쓰며 서점과 카페를 배회하고 있었다. 수소문 끝에 서점에 있는 마르케스를 찾아낸 어머니는 아들과 아라가타카로 향한다. 길을 가는 도중에 마르케스의 눈을 사로잡는 간판이 있다.

‘마콘도(Macondo)’라는 이 농장의 이름은 외할아버지를 따라 처음 여행을 다녔을 때부터 줄곧 내 관심을 끌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그 이름의 시적 울림을 좋아했다. 나는 누가 그 이름을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고, 나에게 그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자문해 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 책 세 권에 등장하는 상상의 마을에 그 이름을 붙였다. 우연히 어느 백과사전에서 그것이 나무의 이름이라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꽃도 피지 않고 열매조차 맺지 않으며 가볍고 스펀지 같아 카누나 부엌 세간들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세이바나무와 유사한 열대나무.

『백년의 고독』의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빌어먹을! 마콘도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라고 말할 때, 독자들은 이 마을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머릿속에 각인된다. 하지만 그것은 작가 개인의 기억과 상상력이 뒤엉켜 있는 하나의 장소였고, 마르케스의 소설은 대부분 이러한 방식을 따른다. ‘문학과 현실에 관하여’라는 산문에서 마르케스는 『백년의 고독』이 유명해진 뒤의 일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내 소설이 유명해지자 중남미의 여러 곳에서 돼지꼬리와 흡사한 것을 지니고 있던 남녀들의 고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얼마 후에 한 독자는 서울에서 돼지꼬리를 갖고 태어난 한 소녀의 사진을 오려서 보냈다. 내가 소설을 썼을 때 생각하던 것과는 정반대로 서울의 그 소녀는 꼬리를 자르고도 살아남았던 것이다.”

“내 책의 모든 것은 실제 사건에서 비롯”
마르케스의 작품들은 ‘마술적 리얼리즘’을 창조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마르케스는 모든 것이 현실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말한다. “내 책에 쓰인 것 가운데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서 비롯되지 않은 것은 단 한 줄도 없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마르케스가 태어난 카리브 해안의 문화적 특징이기도 하다. “카리브해에는 신대륙 발견 이전의 주요 신앙 속에 존재하던 본래 요소와 마술적 믿음이 그 이후에 도착한 여러 상이한 광범위한 문화와 혼합되어 ‘마술적 혼합주의’라는 이름으로 성립된 곳이다. 그래서 이런 카리브해에 대한 예술적 관심과 예술은 고갈되지 않을 정도로 비옥하다.”

마르케스의 이야기는 마술적 혼합주의라고 스스로 명명한 카리브해의 비옥함으로부터 나왔고, “카리브해에서 태어나 카리브해에서 자란” 그는 “현실보다 더 가공할 만한 것을 떠올릴 수도 없었던” 작가다. 그러나 공통의 관심사는 있다. 그것은 ‘절대적 사랑’이라고 부를 만한 것으로 당대의 관습과 운명을 거스르는 인물들의 태도다.

2011년 헤닝 카슨에 의해 영화로 옮겨진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은 평생 독신으로 90세 생일을 맞은 노인이 십대 소녀와 하룻밤을 보내며 인생에서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는 이야기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마르케스는 이게 바로 진짜 현실이라고 느끼게 해 주는 작가다.

2007년 마이클 뉴웰 감독이 만든 마르케스 원작의 영화 ‘콜레라 시대의 사랑’ 중 한 장면.
부모의 사랑 이야기로부터 작품 구상
2007년 마이클 뉴웰에 의해 영화로 옮겨진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콜레라와 내전으로 수많은 목숨이 희생당하고 뒤이어 터진 전쟁으로 인해 편할 날 없던 시대 콜롬비아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그린 50년간의 짝사랑이다. 『사랑과 다른 악마들』은 18세기 말 콜롬비아의 항구도시 카르타헤나를 무대로 삼는데, 열두 살 소녀와 사제 사이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성령은 신앙보다 사랑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모든 이야기가 믿기지 않는 러브스토리일지도 모르겠으나, 마르케스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 이야기로부터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콜라주입니다. 제가 알고 있거나 들어본 적이 있거나 읽은 적이 있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콜라주이지요.”

이처럼 세상사와 인물에 관심이 많다 보니 직접 영화판에 뛰어들어 각본을 쓴 적도 있고, 로마에서 영화 제작에 대해 공부를 한 적도 있다. 1996년 선보인 호르헤 알리 트리아나 감독의 ‘오이디푸스’는 콜롬비아, 멕시코, 스페인의 합작으로 만든 마르케스 각본의 꽤 알려진 영화다.

마르케스의 삶은 다채로웠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적 현실과는 불화를 겪을 때가 많았다. 콜롬비아의 정치적 혼란과 부정에 펜으로 맞서면서 써내려간 르포 작품인 『칠레의 모든 기록』은 마드리드에서 만난 칠레 출신의 영화감독 미겔 리틴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적은 것이다. 마르케스의 진면목은 이러한 작품들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 아무리 어두운 현실을 다룬다고 해도 그의 이야기가 문학의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것은 독특한 유머가 있기 때문이다. 『백년의 고독』을 출간할 무렵의 젊은 기자 시절, 해군 구축함 승무원 여덟 명의 실종 사건을 취재하고 돌아온 마르케스에게 편집국 직원들이 질문을 던졌다.

“자, 위대한 가보가 무슨 얘깃거리를 가져왔는지
한 번 봅시다!”
나는 그들에게 진실을 말했다.
“죽은 생선 한 마리밖에 없어요.”

가보는 마르케스의 애칭이다. 그에게 문학이란 실종 사건을 취재한 뒤 남은 ‘죽은 생선 한 마리’와 같다. 이 생선의 부패함(현실)과 아이러니(유머)는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은 『백년의 고독』의 마지막 페이지로 이어진다. 마르케스는 소설의 마지막 문단에 “바람에 의해 부서질 것”들과 “인간의 기억으로부터 사라질 것”들을 돌아본다. 왜냐하면 “고독한 운명을 타고난 가문들은 이 지상에서 두 번째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마르케스가 직시한 인간이란 가문의 운명이었다.


이상용 영화평론가. KBS ‘즐거운 책 읽기’ 등에서 방송 활동을, CGV무비꼴라쥬에서 ‘씨네샹떼’ 강의를 하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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