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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것 찾아 45년 알아주는 날도 오네요

가히 단색화 열풍이다. 꽁꽁 얼어붙은 한국 미술시장을 유일하게 지피는 군불이다. 미술품 경매회사인 서울옥션의 올해 마지막 오프라인 경매(17일)에서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 12점이 모두 거래됐다. 김환기의 1968년 작 점화 ‘무제 16-VII-68 # 28’이 16억6885만원으로 최고가를 기록했다. 16일 열린 K옥션 경매에서도 정상화·하종현·박서보·윤형근 등 단색화가 4명의 작품 22점이 모두 낙찰됐다.

서구의 미니멀리즘이나 모노크롬과는 또 다른 이 ‘한국적’ 간결함은 1960년대 말부터 식민의 수치를 넘고 내전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30세 전후의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응어리지기 시작한 결기였다. 그 결기가 50년이 지난 지금 비로소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것이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올해 아트 바젤, 프리즈 등 세계적인 아트 페어에서 치솟기 시작한 단색화의 인기는 학고재 갤러리가 상하이점 개관 1주년을 기념해 중국 본토에서 처음 개최한 단색화전 ‘생성의 자유’(12월 20일~2015년 2월 8일)에서도 확인됐다. 이우환(78)·정상화(82)·하종현(79) 작가의 3인전인 이번 전시에서 하 작가의 작품은 전시 오픈 전날 6점이 모두 팔려나갔다.

Conjunction 97-030(1997), Oil on and pushed from back of hemp cloth, 180x120cm
중국 상하이 모간산루(莫干山路) 50호(M50 Art Zone). 원래 공장지대였다가 작가들과 갤러리가 모여들면서 예술특구로 지정된 곳이다. 베이징의 798 지역과 비슷한 컨셉트다. M50에서도 한복판을 차지한 학고재 상하이 갤러리에서 20일 오후 개관 1주년 전이 열렸다. 중국어 전시 제목은 ‘대지무애(大知無碍)’. 큰 지식에는 걸릴 것이 없다는 뜻이다. 한국 단색화가 품은 고민과 열정을 중국 지식인들에게 대번에 소개하기 위해 고심 끝에 골랐다는 게 우찬규 학고재 대표의 설명이다.

전시장으로 들어가면 왼쪽으로 정상화 작가의 작품 4점, 오른쪽으로 하종현 작가의 작품 6점이 걸려있다. 돌과 철판이 대화를 나누는 듯한 이우환 작가의 작품은 하얀 돌조각이 깔린 별도의 방에 설치돼 있다.

작가 중 유일하게 개관식에 참석한 하종현 화백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올해만 해도 LA와 런던, 뉴욕에서 전시를 가진 그다. “45년간 마대를 밀었을 뿐인데…한 우물만 파다 보니 이런 날이 온 것 같다”는 그는 대만·중국·한국 컬렉터가 작품을 모두 사갔다는 우 대표의 말에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 가격은 크게 올라 100호 기준으로 점당 10만불(약 1억원)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그는 캔버스를 사용하지 않는다. 성기게 짠 마대를 직접 주문해 틀 위에 얹고 그 뒤에 물감을 묻혀 밀어낸 뒤 다시 앞에서 긋고 문대고 밀어올리며 자신의 예술혼을 형상화한다. 필립 다장 파리 1대학 교수는 “일체의 표현주의적 충동을 제한하면서 특정한 규칙성과 대칭적 조화를 이룬다”고 그의 작품세계를 평가했다. 미술사학자 김미경은 “조선시대 비단이나 종이 뒷면에 색칠을 해서 앞면에 그것이 반투명 상태로 비치게 하는 ‘배채법(背彩法)’에다가 전통 보자기나 대나무발, 계란 묶는 짚새기에서 보이는 통(通)의 개념을 묶었다”고 설명한다.

왜 이런 방법을 쓰게 됐나.
“69년부터 74년까지 한국아방가르드협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다양한 입체와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평면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캔버스에 유화 작업을 되풀이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서양 작가들이 하는 방식을 따라해서는 새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감과 붓도 다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찾았다.”

왜 마대를 골랐나.
“2차 대전이 끝났을 때가 11살이었다. 그 뒤로 다시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이 이어지는 삶이었다. 힘들고 배고팠다. 포로수용소나 훈련소에서 본 게 철조망이고 모래를 넣어 진지를 만든 마대였다. 철조망이나 마대를 활용해 만든 작품은 보고 자란 일상을 예술로 승화했다는 의미다. 전쟁의 고통이 없었으면 오늘날 내 작품이 탄생했을까 싶다.”

뒤에서 물감을 밀어낸다는 것이 독특하다.
“한약방에서 삼베에 약재를 넣고 짜내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 인생 같은 거다. (물감은) 제멋대로, 나오는 대로 살다가 가는 거다.”

색깔이 매우 한국적이다.
“이 갈색 마대부터 우리 흙의 느낌을 담았다. 색깔은 크게 흰색, 흙색, 검은색을 쓰는데 물감도 직접 주문해 쓴다. 백자의 흰색, 기와의 검정을 고유의 흙색 위에 표현하려고 했다. 학생들이 하회마을에 스케치 여행을 갔다가 ‘동네가 전부 선생님 작품이에요’ 하더라. 그만큼 색채와 느낌이 한국적이라는 얘기겠지. 그런데 잘못하면 촌스러워진다. 촌스러움에서 뛰쳐나와야 세계적이 된다.”

한국적이라는 말이 쉽지 않다.
“유학 가려는 학생들에게 추천서도 많이 써줬다. 그런데 외국 가서 배운 학생들이 대부분 어정쩡해지더라. 그들의 세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그냥 ‘서양놈 뒷다리만 긁다가 오더라. 내 강점은 여행은 많이 했어도 외국에서 한 달 이상 살아본 적이 없다. 한국을 떠나지 않고 작업만 해온 것이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이다.”

단색화란 명칭은 어떻게 나온 건가.
“뭐 평론가들이 모노크롬이니 미니멀리즘이니 여러가지를 붙이려다 잘 안 나왔다. 윤진섭씨가 ‘그냥 우리 이름을 붙이자’해서 나온 말인 줄 알고 있다.”

왜 지금 단색화인가.
“거명되는 작가 하나하나가 개성 있다. 그동안 한 사람씩 소개해왔는데 이걸 모아놓으니 엄청난 힘이 된 것이다. 특히 ‘단색화’란 이름으로 모였다는 게 중요하다. 단색화 이전에는 한국에서 미술운동 조류로 조명된 것이 거의 없다. 이름이 부여된다는 것은 미술사에 남는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보람을 많이 느낀다.”

중국에서 단색화 전시가 갖는 의미는.
“우리나라에서 단색화가 붐을 이룰 70년대는 중국에서 문화혁명 시기였다. 거기에서 한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중국인들은 당시 한국에 이런 게 있었다는 것에 놀라고 부러워한다.”

작품이 많은가.
“일산 수장고에 1000점 정도 있다. 왜 이렇게 많느냐고? 안 팔렸으니까. 그래도 나는 계속 그렸다. 나는 그림을 파는 사람이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지.”(우찬규 학고재 대표는 “팔려고 노력하지 않고 당당한 태도에서 감동받았다”고 귀띔했다).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홍익대 미대 학장, 서울시립미술관장 등을 지냈다.
“2001년 홍대를 떠나면서 일시불로 받은 퇴직금 2억5000만원으로 ‘하종현 미술상’을 만들어 젊은 후학들을 키우는데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온 것이 기억에 남는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대규모 회고전도 가졌다. 앞으로 계획은.
“전위적인 작품도 해봤고 지금까지는 단색화 위주의 작품이었지만 이제 영역을 확장하고 싶다. 죽을 때 후회 없도록 어떤 색깔이든 거침없이 다 소화해보고 싶다. 이를테면 만선에 걸린 색색깃발 같은 것 말이다. 다색화 시리즈는 이미 시작했다.”


상하이(중국)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학고재 갤러리, 전호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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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