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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태양·바람·와인 … 마티스의 혼 깨우다

콜리우르의 포구 풍경
앙리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1905),캔버스에 유채, 79.4 cm × 59.7 cm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소장
지난달 프랑스 남부의 루씨옹 와인 지역을 돌아보러 갔다가 우연히 야수파(Fauvism: 포비즘)의 고향을 방문하게 됐다. 루씨옹 해변의 진주라 불리는 작은 항구 마을 콜리우르(Collioure)였다. 야수파는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앙드레 드랭(André Derain, 1880~1954) 등을 중심으로 1904년부터 1908년까지 현대 미술사에 짧지만 굵은 족적을 남긴 미술사조. 특히 마티스는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섞지 않은 원색으로 강렬하게 표현해 내면서 ‘색의 마술사’로 불렸다. 이같은 야수파를 태동시킨 에너지는 아마도 아프리카의 원색을 떠올리는 지중해의 태양과 바람과 검붉은 와인 아니었을까. 올해로 100년이 된 야수파의 시원을 찾아가는 길은 그래서 알 수 없는 에너지로 가득했다.

프랑스와 스페인 문화 교차 … 그리스·로마 유산도 그득
해는 떠 있었지만 햇볕이 화창한 날은 아니었다. 프랑스 남부의 유명 와인지역 루씨옹의 중심 마을인 페르피냥에서 차를 타고 40여분. 멀리 지중해가 잠시 눈에 들어오더니 이내 산길로 접어든다. 콜리우르 마을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차를 세웠다. 엷은 안개 너머 계곡 사이로 파스텔 톤의 건물 지붕들이 보였다. 그 가운데 작은 포구가 있고 양 옆과 뒤로 산 언덕이 둘러쳐져 있는데 그 곳에는 계단식으로 경작한 포도 밭이 한눈에 들어왔다. 콜리우르는 스페인 국경과 가까이 있는 관계로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프랑스와 스페인이 교차하는 곳이다.

오래된 거리에 있는 가게 간판
마을에 들어서니 항구 옆으로 오래된 건물 두 개가 서로 마주하고 있다. 그 사이 잘게 부서진 돌들이 해변을 만들었는데 걸어가는 소리가 잘 들릴 정도로 적막함이 느껴졌다. 콜리우르는 옛부터 로마와 그리스 선원들이 북적거리던 곳이라 그들이 남겨 놓은 고고학적 유산과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기록에 의하면 981년부터 루씨옹 지역의 백작들과 마조르카 왕이 이 마을을 발전시켰다. 루이 9세 때는 30년 동안 프랑스 통치하에 있다가 이후 스페인에 예속됐고 1642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해 프랑스령으로 굳어졌다. 이 기간 동안 군사적 목적으로 건축된 단단한 요새는 콜리우르의 상징이 됐다.

마티스, 친구 드랭 초대해 ‘새 스타일’ 숙성
프랑스에서 인상주의가 태동하고 있을 무렵 앙리 마티스는 예술이 아닌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곡물상을 하는 가정에서 태어나 성년이 되어서는 법률을 공부, 변호사 사무실에서 서기일을 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그림을 좋아해 개인적으로 드로잉 교습을 받기도 했다. 마침 충수염에 걸리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게 되었는데, 지루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다.

그 후 여러 예술가들과 교류하고 에콜 드 보자르 등 전문 예술학교에서 공부도 했는데, 특히 구스타프 모로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모로는 마티스에게 위대한 예술가의 길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만의 표현을 어떻게 구현하는지 방향을 알려주었다. 색을 섞지 않고 본연 그대로의 색으로 개성을 표출하는 그의 스타일이 여기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티스는 또 주변의 여러 예술가들(장밥티스트 카미 코로, 클로드 모네, 반 고흐, 폴 세잔)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파리에서 활동하던 마티스는 1905년 콜리우르에 정착한다. 무슨 이유로 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을에 정착 후 친구였던 앙드레 드랭을 초대했다. 두 예술가는 이곳에서 여름을 함께 보내면서 자신들의 스타일과 테크닉을 숙성시켰다. 그리고 여기서 작업한 작품들을 그 해 가을 파리 그랑팔레 가을 살롱 전에 내놓는다. 그림들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은 강렬한 색들로 표현됐고 이것을 본 잡지 ‘질 블라스(Gil Blas)’의 예술평론가 루이스 보첼레가 이들을 일컬어 ‘야수들(Fauve)’이라고 혹평한데서 ‘야수파(Fauvism)’로 불리게 됐다.

이 살롱에 마티스가 내놓은 그림이 지금까지도 야수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것으로 알려진 ‘모자를 쓴 여인’이다. 1905년 콜리우르 마을에서 부인 아멜리를 모델로 그린 작품이다.

자연의 색채를 화폭에 담은 인상주의 화풍에서 많이 비껴난 강렬한 색들의 도입은 자연의 색을 단지 도용하는 차원을 넘어 예술가의 감정을 이입했다는 측면에서 훗날 후기 인상주의(반 고흐, 고갱, 세잔)와 독일의 표현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질 좋은 와인과 엔초비 산지로도 명성
콜리우르는 사실 와인 생산지로도 명성이 높다. 마을 자체가 AOC(원산지 통제)로 규정돼 있으며 무베드르와 시라 품종으로 만드는 드라이 레드 와인이 유명하다. 바로 옆 마을인 바뉼스의 스위트 와인(VDN: 뱅두나투렐)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와인은 진하고 깊은 맛이 있으며 장기 숙성이 가능하다.

또 프랑스에서 엔초비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콜리우르 엔초비다. 그만큼 품질이 좋다. 1870년까지만 해도 140개의 선박과 180명의 어부가 엔초비 생산에 종사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다 사라지고 수작업 염장 엔초비의 명성을 이어가는 곳은 단 두 곳, 로크(Ets Roque)와 데스클로(Ets Desclaux) 뿐이다.

역사적으로 이 마을 엔초비가 유명세를 얻은 것은 1466년 루이 9세가 이 지역에서 유명한 참치, 정어리와 더불어 엔초비의 염장세를 더 걷기 위해 장려했기 때문이다. 엔초비 어획 기간은 4~5월과 9~10월 사이로, 잡은 엔초비는 수작업으로 염장을 해 항구로 갖고 온다. 염장한 엔초비는 생선 자체에서 나온 진액으로 3개월간 숙성되면 생선 고유의 향과 부드러움이 자연스럽게 살아 있게 된다.

샤갈·피카소도 찾아와 … 주민 3000명에 갤러리 40곳
콜리우르 마을의 늦가을 풍경은 쓸쓸하다. 스페인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좁은 골목은 여름 내내 활기차 있지만 계절이 지나면 적막이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이 햇볕을 온 몸으로 받던 해변은 텅 비고 잔잔한 물결에 작은 돌들이 쓸리는 소리만 들린다. 방파제에는 점심거리를 준비하는 한가한 강태공이나 나이 많은 선원들이 벤치에 앉아 빈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모습 정도가 보일 뿐이다.

그러나 마을을 감싸고 있는 언덕에는 강렬한 야수파의 색으로 물든 포도나무들이 멋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여름 지중해를 바라보며 검은 포도를 잉태했던 나이든 포도나무들은 열매를 내주고 긴 휴식에 들어간다. 고성이 바다에 닿아 있는 항구는 물이 맑아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인다.

이런 마을을 예술가들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야수파 이후 피카소, 듀피, 샤갈, 브라크 같은 예술가들이 이 마을을 찾아 작업을 했다. 그 흔적 덕분인지 3000명이 거주하는 이 작은 마을에는 크고 작은 갤러리들이 40곳 이상 있고 매년 예술 축제가 열리고 있다.

야수파는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꽃피운 아방가르드 운동의 첫 단추다. 인상파와 그 전의 오래된 시스템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조다. 마티스는 “야수파가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야수파는 모든 것의 시작이다”라고 단언했다. 아쉽게도 짧은 사조로 단명했지만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이 사조의 중심에 있던 마티스는 순수한 색채에 대한 실험을 계속한 유일한 예술가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마티스의 색은 지금도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100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콜리우르의 해변과 좁은 골목길에는 마티스의 화려한 색이 여전히 살아 있다. 마티스가 그 옛날 이 골목과 해변 그리고 포도밭 언덕을 걸으며 얻어낸 그 충만한 예술적 에너지 말이다.


콜리우르(프랑스) 글·사진 김혁 와인평론가 hkim@podoplaz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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