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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 소멸 직전 … 야당 내 보수·진보, 각자 갈 길 가야

최정동 기자
[진보의 현재와 미래]
통합진보당이 해산된 이후 ‘진보의 길’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진보를 자임하는 105명은 24일 새로운 정치세력을 주장하고 나섰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건설을 촉구하는 국민모임’을 만들면서다. 명진 스님, 정지영 감독,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 종교계(22명)·문화예술계(20명)·노동계(3명) 인사들이 참가했다.

[통진당 해산 이후] 진보의 재구성 주장하는 김세균 교수


이 가운데 학계(32명)의 얼굴이자 공동대표로 김세균(67·사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나섰다. 진보운동에 매진해 온 참여파 교수다. 중앙SUNDAY는 25일 본지 편집국에서 그를 만나 진보의 현재와 미래를 물었다. 그는 “진보정치가 소멸 직전”이라며 “일본처럼 1당 패권체제가 되거나 미국처럼 보수 양당체제가 될 수도 있는데 새로운 무대를 만들면 진보진영이 기사회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민모임에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며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

-왜 새로운 진보정치 세력인가.
“새정치민주연합은 새누리당과 별 차이가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시장 만능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던 원죄가 있다.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이 생기고 사회가 황폐화되고 있잖나. 철저한 반성 없이 야당을 하니 정부를 비판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따라간다. 분명한 정체성이 없고 정파 중심 파벌이 모여 있다. 대안 정당 역할을 못하니 국민 지지도도 떨어졌다. 이런 야당으론 도저히 안 되겠다는 소리가 터져 나오는데 세월호 참사로 그 목소리가 커졌다. 당시 광화문 농성장에 모인 많은 사람이 새 야당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같이했다. 통합진보당도 여러 문제로 진보정치를 쇠락하게 했다. 민족 문제를 제기할 때 종북 혐의를 받을 행동을 했고, 폭력을 행사하고 패권주의 행태를 보여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한국 진보정치는 1987년 민주화 대투쟁 이후 성장한 대중운동을 기반으로 해 왔는데, 오늘날 최하점으로 떨어져 소멸 직전이다.”

-통진당 해산은 어떻게 봤나.
“이석기와 경기동부연합 중심의 NL(자주파)을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북한식 사회주의를 남쪽에서도 실현시키려 하면 말할 필요도 없이 종북이다. 과거 그쪽 사람들과 대북정책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 종북 혐의를 받을 여지가 있었다. 연북 노선, 즉 북한과 연합하자, 북한과 잘 지내자 하는 노선인데 남북 관계를 해친다는 이유로 비판할 것도 안 하면 종북 혐의를 받는다. 종북 혐의를 받을 수 있는 연북 노선엔 철저한 경계가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신당은 통진당 노선으로부터 정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구체적 증거로 이야기하지 않고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를 주장하는 숨은 의도가 있다’며 법적으로 해산시킨 건 잘못이다.”

-‘통진당 강제 해산에 따른 비상원탁회의’에서도 활동 중인데.
“원탁회의에는 통진당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그동안 통진당은 독불장군이어서 다른 진보와 관계가 멀어졌다. 통진당을 그대로 놔뒀으면 소멸됐을 거란 시각이 있다. 그런데 헌재가 불법화해 버리니 낡은 진보가 탄압받는 진보로 소생했다고들 한다. 결국 문제는 통진당이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다. 헌재 판결처럼 법적 강제로 정당을 해산시키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 보는 거다. 원탁회의는 공안 한파와 한국의 매카시즘에 반대하는 회의다.”

-함세웅 신부, 김상근 목사가 국민모임과 원탁회의에서 빠졌는데.
“범민주개혁세력엔 신당을 지지하는 사람과 새정치연합을 혁신시키자는 사람이 있다. 함 신부와 김 목사는 신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가 새정치연합이 중요하지 않으냐는 의견을 들으면서 나중에 신당 추진 측과 새정치연합 혁신 측이 정권 교체를 위해 협력해야 하니 지금은 빠지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 같다.”

-다른 진보 정당은 어떻게 보나.
“정의당·노동당은 자기 기치만 내걸고 다른 정파와 통합하지 못하는 폐쇄성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개방적이고 대중성 있는 진보로 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일본형 정치구도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헌법도 맘대로 바꿀 수 있는, 사실상 1당 패권체제가 돼 버리는 거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느냐. 자민당이 싫어도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도 최악의 경우 새정치연합도 싫고 진보정당도 개판이라면 새누리당 1당 패권체제로 갈 수 있다. 그 다음 가능성이 있는 게 미국형이다. 미국에선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지만 공화당과 함께 양대 보수정당이라고 봐야 한다. 우리도 새정치연합이 혁신하지 않으면 미국 식으로 가는 거다. 새정치연합 내의 진보파와 기존 진보정치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이들이 함께 새 무대를 만들고 정치 진출에 성공한다면 몰락하는 진보진영이 기사회생할 수 있다. 총선에서 20석 이상 얻어 원내교섭단체가 되면 한국 정계 개편에서 태풍의 눈이 될 거고, 잘하면 영국형으로 정치구도가 바뀔 수도 있다. 영국은 보수당과 자유당이 있었는데, 노동당이 생기자 중간의 유연한 보수였던 자유당이 작아지고 보수당·노동당 시스템이 됐다. 독일과 프랑스도 보수정당과 진보정당 두 축으로 돼 있는데 한국도 그렇게 갔으면 좋겠다. 새정치연합 내 보수파는 보수로 가고, 진보파는 진보로 가서 영국 자유당처럼 점차 사라져야 한다.”



김세균 부산고, 서울대 정치학과 66학번. 1970년대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79년 민주·노동운동 지원자들에게 용공 혐의를 씌운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으로 수감됐다가 독일로 유학, 베를린 자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치사상·마르크스주의가 전공이다. 89년 서울대 교수가 된 뒤에도 각종 사회운동에 참여했다. 지난해 2월 퇴임 뒤 지식순환협동조합의 2년제 대안대학을 만들고 있다. 참교육학부모회 설립자인 오성숙씨가 부인이다. 진보진영 이론·실천가인 고 김진균(1937~2004) 전 서울대 교수(사회학)가 형이다.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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