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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국 뒷이야기, 이성계·이방원·정도전에게 묻다

소년중앙 시간탐험대 2기 대원들의 마지막 활동이 20일 서울 덕수궁 강당에서 열렸습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흔적을 따라가는 탐험을 마무리하는 시간이었죠. 이날 탐험대원들은 각각 역사 속 인물과 그들을 인터뷰하는 기자단으로 변신했습니다. 기자단이 된 대원들은 고려 말 조선 초의 역사 인물들을 찾아가 돌직구 질문을 던졌습니다. 역사 속 인물로 변신한 대원들 역시 당당하게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그 치열했던 기자회견의 현장으로 안내합니다.



소중 시간탐험대 2기 ③고려 말 조선 초 역사 인물 인터뷰

이방원을 맡은 예조 대원들이 ‘이조일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시간탐험대 2기는 이조·예조·병조·공조·한성부 등 5개 조로 나뉘어 활동해왔다. 조선의 행정을 담당하던 육조와 한성부(오늘날의 서울시청)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날 이조는 이성계, 예조는 이방원, 한성부는 정몽주, 병조는 정도전, 공조는 공양왕을 각각 맡았다. 기자회견은 이조 대 예조, 한성부 대 병조, 공조 대 멘토팀이 번갈아 역사 인물과 기자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1라운드 단심가의 정몽주를 만나다



정몽주 역할을 맡은 한성부 대원들이 단상에 오르고, 병조 대원들은 기자석에 앉아 마이크를 잡았다.



―‘병조일보’ 김한슬(용인 초당초 5) 기잡니다. 왜 고려를 끝까지 지키려 했습니까.



“고려가 망한 건 부패한 불교의 승려와 권문세족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을 개혁하면 충분히 고려를 계승할 수 있다는 뜻에서였습니다.”



―목숨을 걸 만한 일이었습니까.



“충분히 그럴 만했다고 생각합니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있으면 백성들이 타격 받을 건 불을 보듯 뻔해서입니다.”



―정도전과는 어떤 이유로 갈라섰습니까.



“우리는 둘 다 고려를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방법론이 달랐습니다. 정도전은 새 왕조를 세우려 했죠. 제가 지은 단심가의 내용에서 충분히 알 수 있듯, 저는 개혁은 하되 고려 왕조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죽교
단심가 새 왕조 건설을 꿈꾸던 이방원은 정몽주를 초대한 자리에서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로 시작하는 하여가(何如歌)를 지어 그의 마음을 떠 보았다. 이에 응답해 정몽주가 지은 시조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더라도 고려에 대한 일편단심이 변치 않으리란 뜻을 담았다. 이에 이방원은 집으로 돌아가는 정몽주에게 자객을 보내 선죽교에서 살해했다.



―정몽주 선생은 우리나라 성리학의 창시자인데, 왜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조선의 건국을 반대했습니까.



“국왕과 왕비는 한 나라의 아비와 어미입니다. 성리학에서 아버지를 죽이는 건 불효입니다. 국왕을 폐하는 건 나라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라 유교 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2라운드 정도전의 입장 표명



이번엔 입장을 바꿔 병조의 정도전이 단상에 오르고, 한성부 기자단이 질문을 던졌다.



―고려를 무너뜨린 게 진정 백성을 위한 일이었습니까? 백성이 혼란스럽기 않도록 나라를 개혁할 수 있었을 텐데요.



“고려 말 권력자들의 부정부패로 백성의 삶이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나빠질 대로 나빠진 왕조 안에서 길을 찾으려 한 정몽주야말로 백성을 생각하지 않은 것 아닐까요?”



―고려는 500년 가까이 이어왔으며 문화적으로 최고의 나라였습니다. 멸망시키지 않았다면 더 좋은 유산을 남길 수도 있었을 텐데요. 왜 개혁이 아닌 개국을 택했습니까.



“먼저 고려의 충신들이 실질적으로 한 개혁이 무엇이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실행한 것이 없으니 새 나라를 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빠른 개혁을 위해서죠.”



―단지 권력을 잡기 위해 500년 역사를 무너뜨린 건 아닙니까.



“그렇다면 고려는 단지 권력을 얻기 위해 1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신라를 무너뜨리고 세운 나랍니까? 백성이 잘 살도록 하기 위해 조선을 건국한 겁니다.”



3라운드 기자회견장에 선 공양왕



기자회견을 위한 질문과 답변을 준비 중인 한성부 김민서(수원 다솔초 4) 대원과 김진형 연구원.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 역할을 맡은 공조 대원들이 단상에 올랐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의 두 연구원과 멘토 선생님들이 기자 역할을 맡았다.



―‘구려일보’ 강유림 기잡니다. 이성계는 신진사대부 세력의 지지를 받는 훌륭한 무관이었습니다. 공양왕 입장에선 이성계 세력이 두려웠을 텐데 곁에 두고 높은 관직에 올린 이유는 뭡니까. 진작에 처단했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사실 저는 왕위를 제대로 계승 받은 게 아니라 이성계에 의해 왕위에 올라 꼭두각시처럼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제 스스로 지지세력을 가질 수 없었으니 마음대로 이성계를 제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왕건의 피가 흐르는 후손으로서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책임감이 없었다니 이해가 안 됩니다.



“신진사대부 세력의 핵심인 정도전과 정몽주는 저를 왕으로 세우는 데까지는 모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정도전은 결국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려 했죠. 저를 보필하고자 했던 정몽주가 이방원에 의해 살해당하고 나서는 무늬만 왕일 뿐 힘도, 기댈 곳도 사라졌습니다.”



4라운드 이성계를 인터뷰하다



이조 정의연(군포 흥진초 5) 대원
다음 라운드는 이성계 역할을 맡은 이조 대원들과 예조 기자단의 치열한 공방이다.



―‘예조 투데이’ 박서현(인천 신정초 5) 기잡니다. 위화도회군이 성공했으니 망정이지, 만약 실패했다면 반역을 저지른 셈인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동 정벌이 가망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나서게 된 것입니다.”



―위화도회군을 한 이유가 뭡니까.



“사불가론으로 이미 충분히 설명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불가론 고려는 1388년 명나라의 전진기지인 요동 지방을 공격해 명의 압력에서 벗어나려던 ‘요동 정벌’을 꾀한다. 하지만 이성계는 군사를 이끌고 요동으로 향하던 중 위화도에서 말을 돌려 개경으로 돌아와 최영 일파를 제거한다. 이때 회군의 명분으로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는 건 옳지 않고, 농번기인 여름에 군사를 동원하는 건 옳지 않으며, 정벌을 간 틈을 타 왜구가 침입할 것이고, 무더운 여름이라 아교가 녹아 활이 망가지고 전염병에 걸릴 위험이 크다는 네 가지 이유를 내세웠다. 이를 ‘사불가론(四不可論)’이라 한다.



―왜 조선 건국 과정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을 안 했습니까.



“방원이는 고려 충신을 많이 죽였습니다. 그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면 민심을 사지 못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또 야망이 너무 큰 점도 왕의 자리에 적합하지 않다고 봤습니다. 사실, 신덕왕후에 대한 저의 사랑도 컸습니다. 그래서 신덕왕후가 낳은 방석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한 겁니다.”



1차 왕자의 난 태조 이성계에게는 8왕자가 있었다. 6명은 첫째 왕비 한씨가 낳았고, 2명은 둘째 왕비인 신덕왕후 강씨가 낳았다. 태조는 신덕왕후의 뜻에 따라 막내 방석을 세자로 삼는다. 조선 개국 공신인 정도전은 이 같은 결정을 지지한다. 이에 다섯째 왕자 방원은 태조 7년인 1398년, 정도전이 왕자들을 죽이려 했다고 뒤집어 씌워 정도전과 강씨 소생의 방석·방번을 죽이는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다.



―김태현(고양 강선초 4) 기잡니다. 왜 이방원이 아버지에게 화해를 청하려 보낸 신하들을 모조리 죽여서 ‘함흥차사’가 되게 했습니까.



“그자들을 산 채로 돌려보내면 이방원을 인정한다는 뜻이 됩니다. 형제를 살육한 방원이 내 아들임을 인정하기 싫었습니다.”



함흥차사 1차 왕자의 난 이후 분노한 이성계는 둘째 아들 방과(정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함흥으로 떠난다. 이방원이 아버지의 노여움을 풀고자 함흥으로 사신을 보냈지만 이성계는 매번 그들을 죽이거나 잡아 가둬 보내지 않았다. 이에 ‘함흥차사(咸興差使)’는 심부름 간 사람이 소식이 없거나 회답이 좀처럼 돌아오지 않음을 비유하는 말이 됐다.



5라운드 이방원의 변명



소중 시간탐험대의 비밀기지인 덕수궁 중명전에서 단체 기념촬영.(위) ‘예조투데이’ 박서현 기자가 질문을 하고 있다.
이번엔 예조에서 이방원을 맡은 대원들이 단상에 올랐다. ‘이조일보’ 기자들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형제들을 죽이면서까지 왕권을 차지하려 했던 이유가 뭔가요.



“큰아들이 왕을 이어받아야 마땅한데 아버지가 둘째 부인의 아들인 어린 동생을 왕위에 올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권력을 쥐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왜 군사를 끌고 가 상왕으로 물러난 아버지 이성계를 막았습니까.



“아버지는 끝끝내 제 의견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효원(인천 고잔초 4) 기잡니다. 왕위에 오른 뒤 왜 억불정책을 펼쳤나요.



“건국 이념인 유교 사상에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6라운드 이성계의 마지막 입장 표명



태조 이성계
멘토 선생님들이 이성계의 마지막 입장 표명을 위해 단상에 올랐다. 공조의 ‘고려 크로노그래프’ 기자들이 질문에 나섰다.



―어떤 나라를 세우고 싶었던 겁니까.



“검소한 유교 정신을 통해 깨끗한 정치를 실현하고 싶었습니다.”



―왕위에 오르는 데 신진사대부가 영향을 끼친 겁니까.



“예. 저는 장군이라 무술은 잘 하지만 그렇게 똑똑하진 않습니다. 신진사대부와 손잡음으로써 성리학 이념도 배우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는 데 큰 도움도 받았습니다.”



―왜 종교가 아닌 학문을 선택했습니까.



“많은 분들이 유교가 종교가 아닌 학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유교는 사상이자 조상을 신봉하는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크로노그래프 기자단은 “조선이 백성에게 좋은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노력해주시기 바란다”는 말로 기자회견을 마쳤다.





글=이경희 기자 , 사진=장진영 기자 , 진행=황정옥 기자, 문화유산국민신탁 김진형 연구원, 권준흥 연구원, 노소연(서울교대 1), 강유림(한국전통문화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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