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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1950년 역사서 『광복 1775일』 펴낸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이중근(73·사진) 부영그룹 회장은 최근 회사 시설팀에 국기 게양대를 손보라고 지시했다. 서울 서소문동에 있는 사옥으로 출근하던 길에 우연히 눈에 들어온 모습을 보고 지시한 것이다. 부영그룹 사옥 정문 앞에는 태극기와 회사기, 새마을기를 내거는 같은 크기의 게양대 세 개가 나란히 서 있다. 이 회장은 “왜 태극기 게양대의 높이가 다른 것과 같나. 당장 태극기 게양대의 높이를 키우고 태극기도 더 큰 것을 게양하라”고 지시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태극기와 회사 깃발이 똑같은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지난 8월 말 서강대에 ‘베르크만스 우정원’이라는 건물을 지어 기증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대학 측은 관례적으로 준공·기증식에서 국민의례를 생략해왔는데, 이 회장이 하자고 주장했다. 국민의례 없이는 행사에 참석할 수 없다는 이 회장의 고집에 결국 국민의례가 거행됐다.

성공한 기업가인 그가 이번에는 역사 서적을 펴냈다. 『광복 1775일』(우정문고)이라는 책이다. 1945년 광복 이후 6·25전쟁 이전까지 격동의 한반도를 연월(年月)에 따라 편년체로 엮었다. 세 권으로 구성된 이 책의 분량은 무려 2546쪽. 그는 지난해에도 『6·25전쟁 1129일』을 펴냈다. 그가 잇따라 역사책을 펴낸 이유는 뭘까. 이 회장은 『광복 1775일』의 서문에 ‘광복 후 역사적 과정을 반추하며 후손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것이 나이 든 사람들의 의무’라고 썼다. 중앙SUNDAY가 23일 부영그룹 사옥에서 이 회장을 만났다.
 
-『광복 1775일』을 낸 동기는.
“역사 기록은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었다. 광복 이후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 이념적으로 극한 대립을 했다. 그 결과 6·25전쟁이 발발했다. 이후 남북한은 광복 직후 상황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으면서 완전히 다른 역사 인식을 갖게 됐다. 향후 한반도가 통일된 후에도 이런 인식의 차이는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사실만을 기록한 역사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지난해에 발간한 『6·25전쟁 1129일』과도 연결된다. 어린 시절 개인적인 경험도 책 발간의 동기 중 하나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인 1948년 여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길거리에는 시신이 즐비했다. 어렸지만 왜 이렇게 비참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이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책을 발간했다.”

-책의 분량이 방대하다. 기업 경영에 바쁠 텐데 어떻게 준비했나.
“처음 이 책을 기획했을 때는 2004년이었다. 본격적으로 준비한 것은 4년 전이었다. 더 늦기 전에 광복 공간에서의 우리 역사에 대한 객관적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별도의 자료수집팀을 구성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등 관련국들을 찾아 자료를 수집했다. 업무 시간 중에도 사무실에서 틈틈이 자료를 연구했다. 나는 1년 365일 출근하고 특별한 취미도 없다. 이런 생활 습관 덕분에 책 쓰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워낙 자료가 방대해 이를 검토하고 수정하고 검증받고 하다 보니 4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지난 4년은 내 인생에서 매우 특별한 시간이었다.”

-책은 역사 기록을 연월일(年月日) 순으로 정리해 기록하는 편년체로 돼 있다. 굳이 편년체로 기술한 이유가 있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남북한의 역사 인식은 크게 다르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역사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광복 직후 6·25전쟁 전까지의 역사를 편년체로 집대성한 서적은 이 책이 유일할 것이다. 중국의 한 역사학자가 ‘이 책은 남한뿐 아니라 북한에도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는 말을 들었다. 북한의 역사학자들도 이 책을 본다면 객관성을 바탕으로 한 오해 없는 사료로 인정할 것이라고 자부한다.”

-이 책을 통해 강조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학자들에 따라 광복 후 한반도를 보는 시각이 조금씩 다르다. 책을 펴낸 입장에서 1948,1949년 군 기강을 잡기 위해 단행된 숙군(肅軍)과 50년 농지 개혁에 방점을 두고 싶다. 당시 제대로 숙군을 하지 않았다면 6·25전쟁의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농지 개혁도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농지 개혁을 통해 토지를 농민들에게 나눠줬기 때문이다. 당시 소작농 또는 약간의 땅을 갖고 있는 자소작농의 비율은 전체 농민의 84%였다. 이들은 토지 소유권에 대한 기대감에 힘입어 적극적으로 대한민국을 수호해야겠다는 애국심을 가질 수 있었다. 농지 개혁이 애국자를 만들어낸 셈이다. 6·25전쟁 직전에 이런 정책들이 시행됐던 것은 우리의 국운이 좋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은 6·25전쟁 발발 직전에서 끝난다. 6·25를 어떻게 평가하나.
“결론적으로 6·25전쟁은 미국과 소련의 판단 착오로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소련은 당시 8월 15일 이전에 남한을 완전 장악할 것으로 오판하고 전쟁을 일으켰다. 미국은 자신이 개입하면 북한군이 물러나고 소련이 손을 뗄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국 중공의 개입으로 전쟁은 3년을 끌었다. 무고한 인명만 대거 희생되고 승자 없는 전쟁으로 끝났다. 개인적으로 6·25전쟁을 세계 전쟁으로 부르고 싶다. 군대를 파병한 16개국을 포함해 연합군 진영에는 63개국이 참여했다. 공산 진영에도 10여 개국이 가담해 총 80개에 가까운 나라가 6·25전쟁에 직간접적으로 매달렸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사망한 일본인은 약 300만 명에 달한다. 6·25전쟁에서는 400만 명이 숨졌다. 이를 볼 때도 6·25전쟁은 세계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은 6·25전쟁을 계기로 경제를 재건하게 됐고, 한국 역시 전화를 딛고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긴 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엔 이념적 갈등이 심하다.
“미국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대립해도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책적 대립으로 갈등이 표출되고 결국 타협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다르다. 일반인들도 진보라고 하면 북한과의 연계 등 극한 이념적 편향성을 연상한다. 이는 6·25전쟁을 겪었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원죄적 유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런 갈등의 원인을 찾아내고 치유해야 한다. 이 책을 펴낸 이유 중 하나다. 평지에 있는 나무만 똑바로 서 있는 게 아니다. 경사지에 있는 나무도 땅은 경사졌지만 나무는 똑바로 서 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상대를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정립돼야 한다고 본다.”

-부영그룹은 지금까지 중·고교와 대학에 기숙사·도서관·체육관 등 100개 이상을 지어 기증했다. 교육 사업에 많은 투자를 하는 이유는.
“교육 사업은 가장 관리하기 쉽고 장기적으로 볼 때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분야다. 이 때문에 항상 후세 교육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래서 학교에 기숙사를 지어 기증해왔다. 특히 내가 중학교 다닐 때는 왕복 50리(약 20㎞) 길을 걸어다녔다. 당시 좀 더 학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추운 겨울에는 특히 그랬다. 학교에 기숙사가 있으면 학생들이 적어도 등·하교 시간만큼 더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숙사를 지어 기증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기업의 수익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측면에서 한 일이다. 학교를 수익사업의 일환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인재를 국가의 동량으로 키우기 위한 기부 사업이라고 보는 게 옳다.”

-동남아와 아프리카 등에서도 육영 사업을 하고 있는데.
“저개발 국가들에 대한 지원 중 가장 효과가 큰 게 역시 교육이다. 더불어 한국에 대한 이미지도 크게 높아진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최근 태국에서 열린 초등학교 졸업식이었다. 그 자리에서 학생들이 우리나라의 졸업식 노래를 불렀다. 이 행사에는 6·25전쟁에 참전했던 ‘리틀 타이거 부대’ 용사들도 초청됐다. 이들이 ‘고향의 봄’을 우리말로 부를 때는 정말 가슴이 뭉클하고 큰 보람을 느꼈다. 아쉬운 점은 해외 교육사업 투자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법정기부금에서 제외돼 있다는 점이다. 좀 더 유연한 법 적용이 필요할 것 같다.”
부영그룹은 현재 베트남·캄보디아·피지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14개국에서 지원활동을 벌이고 있다.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3국에서도 같은 활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건설해 기증한 초등학교 수는 602개에 달한다. 이와 함께 피아노 6만 대와 교육용 칠판 60만 개 등 교육 기자재도 무상 제공했다.

-‘세발자전거론’이라는 이 회장의 경영철학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인가.
“내 경험을 통해 터득한 것이다. 기업의 목표와 책무는 성장보다는 존재 자체라고 생각한다. 큰 기업은 오너나 사장의 전유물이 아니다. 많은 종업원과 그 가족들이 생계를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발자전거론은 이에 근거한다. 두발자전거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되돌아 오는 길이라도 항상 달려야 하지만 세발자전거는 잠시 멈추고 쉴 수도 있다. 기업은 직원들의 안정적인 생계를 위해 조심스러운 경영을 통해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기업인 또는 육영사업가 중 어떤 평가에 비중을 두고 싶나.
“둘을 합해 ‘사람다운 사람이었다. 쓸 만한 사람이었다’고 불리면 족하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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