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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잘못 + 1 사과= 0 잘못'… 진심 담은 ‘I'm sorry’의 위력

1942년 중국 상하이. 급진파 항일단체는 친일파 핵심 인물인 정보부 대장을 암살하는 계획을 세운다. 여자의 임무는 신분을 속이고 그를 유혹하는 것. 경계심으로 가득 찬 남자의 마음을 얻는 데 3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고, 드디어 남자를 암살하는 그 날이 왔다. 그런데 오늘, 남자는 여자에게 6캐럿짜리 멋진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한다. 이렇게 큰 다이아몬드 반지를 낀 채 나가면 분명히 누군가가 노릴 거라며 반지를 빼려는 여자에게, 남자는 그대로 가자고 한다. 그리고 말한다. “내가 지켜주겠소.” ”여자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린다. 지금 바깥에는 남자를 암살하려는 저항군이 기다리고 있다. “어서, 도망가요.”


탕웨이·양조위가 주연한 2007년 영화 ‘색, 계(Lust, Caution)’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는 암울한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한 자극적인 스토리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 유독 이 장면을 명장면으로 꼽는 사람들이 있다. 이념과 사랑 사이의 갈등, 계략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 여자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다이아몬드 반지가 아닌 ‘지켜주겠다’는 남자의 약속, 그 한마디였기 때문이다.

경영 현장에서도 말 한마디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 진정한 사과 한마디의 효력은 크다. 타이레놀 독극물 사태를 겪은 존슨앤존슨(1982년), 납 성분이 검출된 장난감으로 위기에 처한 마텔(2007년), 직원이 택배 상자를 내던지는 ‘패대기 동영상’으로 곤혹을 치른 페덱스(2011년)의 공통점은 바로 즉각적인 사과로 소비자의 신뢰와 사랑을 회복했다는 것이다.

권위·체면 중시 사회일수록 사과 인색

듀크대 경제심리학자 댄 에리얼리(Dan Ariely)의 실험은 ‘I’m sorry’한마디의 효과를 보여준다. 커피샵의 고객들에게 간단한 설문조사에 참여하면 5달러의 사례금을 지급하겠다고 한 후 참여자에게 실수인 척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하는 설정이었다. A집단은 평범한 분위기로 조사가 진행되었고, B집단에서는 실험자가 조사를 설명하는 중간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전화를 받으면서 시간을 끄는 무례한 행동을 보였다.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A집단의 참여자 중 45%가 초과된 사례금을 되돌려준데 반해 B집단은 그 비중이 14%에 불과했다. 상대방의 잘못으로 짜증과 불쾌감을 느낀 소비자는 상대가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르기를 바라는 보복 욕구를 가지게 된다. 약속한 5달러보다 초과된 금액은 바로 실험자의 무례한 행동에 대한 대가인 셈이다.

또 다른 C집단에서는 B집단과 같은 상황에서 사례금을 지급하며 “아까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했다. 그러자 초과된 금액을 되돌려준 비중이 A집단(45%)만큼 높아졌다. 한마디 사과가 불쾌감·보복심을 누그러뜨리고 바른 행동을 이끌어낸 것이다. 에리얼리 교수는 1+1=0 (1 annoyance + 1 apology = 0 annoyance)’, 즉 한 번의 분노를 한마디 사과가 상쇄한다는 공식을 만들기도 했다.

권위와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사람도 기업도 사과 한마디에 인색하다. 죄송함의 표현은 상대에게 나를 비난할 수 있는 허가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잘잘못을 확인하기 전에는 함부로 사과하지 않는다. 반면 상대방은 문제를 일으켰다고 생각하는 당자사가 사과하지 않으니 자존심이 상한다. 한순간 명예를 지키려다 분노와 혐오의 대상이 되어 관계를 회복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위기대응 매뉴얼을 체계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사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비난받아 마땅함’이 아닌 ‘상대방의 좋지 않은 처지에 대한 공감’으로 인식한다면 사과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남에게 대하여 마음이 편치 못함’, 즉 미안(未安)함의 표현과 위로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비록 내 잘못이 아니더라도 타인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공감하고 위로한다면 신뢰와 협력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하버드대학의 브룩스(Brooks) 교수팀은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고객과 친근해지는 것도 마케팅 포인트

꽤 많은 비가 내리는 날, 기차역에서 누군가로부터 핸드폰을 빌려 써야 하는 상황이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핸드폰 좀 빌릴 수 있을까요?”라며 다가서자 33명 중 단 3명(9%)이 자신의 핸드폰을 건넸다. 이번에는 “비가 많이 와서 힘드시죠(I’m sorry for the rain). 핸드폰 좀 빌릴 수 있을까요?”라며 다가갔다. 그러자 32명 중 15명(47%)이 흔쾌히 핸드폰을 빌려줬다.

궂은 날씨가 내 책임도 아니고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지만, 상대방의 고충에 공감하는 한마디 표현이 협조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친근한 말 한마디는 고객 만족도 끌어올린다. 커피샵에서 종업원과 가벼운 수다를 나눈 고객이 아무런 대화가 없었던 고객보다 만족도가 높을 뿐 아니라(4.31 vs 3.80, 5점 만점), 훨씬 더 좋은 기분으로(4.22 vs 3.60) 가게를 나섰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고객과 직원, 나아가 고객과 기업 사이에 형성된 정서적 유대감이 고객의 만족감과 행복감을 높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샌드위치 체인 프레타망제(Pret A Manger)는 패스트푸드의 실용성에 고객 친근성을 더해 성공을 거두고 있다. 프랑스어로 기성복을 의미하는 프레타포르테에서 착안된 이 회사의 이름은 ‘Ready to Eat’, 즉 미리 만들어 놓은 샌드위치를 판매한다는 뜻이다. 바쁜 직장인들이 주 고객이기 때문에 60초 서비스’를 목표로 할 정도로 스피드에 집착한다. 대신 유기농 채소, 천연·무색소 식재료를 사용하고 모든 음식의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하는 등 친환경·친건강 브랜드를 표방한다.

그런데 이 회사의 진정한 차별화 요소는 서비스 속도나 샌드위치가 아니다. 프레타망제 매장에서는 직원과 고객이 미소 지으며 대화하는 모습, 직원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여기저기 보인다. 매장을 들어서는 순간 느낄 수 있는 긍정적 에너지와 활기, 이야기 소리는 ‘프렛 버즈(Pret Buzz)’라 불리며 강력한 차별화 도구로 작용한다. 직원들이 로봇처럼 음식을 만들고 매뉴얼에 따라 대응하는 여느 패스트푸드 매장과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프레타망제의 모든 직원들은 ‘프렛 행동지침서(Pret Behaviours)’라는 소책자를 지니고 다니는데, 여기에는 고객을 내 집에 온 손님처럼 대할 것,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개인적인 인사말을 가질 것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손님의 액세서리를 자연스럽게 칭찬하거나 날씨에 대해 간단한 수다를 떠는 식이다. 계산대에 여러 명의 직원을 배치해 서비스 시간을 최소화하면서, 짧은 순간 나누는 편안한 인사 한마디로 고객이 다시 찾고 싶은 기분이 들도록 하는 전략이다.

당연히 고객접점 직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프레타망제는 천성적으로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 사교적이고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를 직원으로 채용한다. 지원자는 실제 매장에서 하루 동안 실습 테스트를 거치기도 하는데, 일이 끝나면 전 직원의 투표를 통해 새 멤버로 채용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만약 통과되지 못하면 하루 일당을 받고 떠날 수밖에 없다. ‘프렛 버즈’를 만들기 위해서는 팀워크가 최우선돼야 하고, 함께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사람들로 팀을 구성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프레타망제는 단지 맛있는 샌드위치를 파는 곳이 아닌 기분 좋은 재충전의 장소가 되었다. 방문객들의 악평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고객 만족도가 높고, 단골 고객도 많다. 지난 10년간 20% 내외의 연매출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패스트푸드 대국인 미국에서도 매장당 매출이 맥도날드에 이어 2위 수준이다. 최근에는 2014년 매출이 전년 대비 17%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자, 전 직원들에게 두둑한 보너스를 챙겨줄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일상적 공감·위로에 후한 기업 돼야

공감과 위로, 진심을 담은 말 한마디는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을 변화시킨다. 인간적인 관계가 맺어지면 잘못이나 실수에도 관대해진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제품·서비스의 가치가 명확하고 품질이 뒤지지 않아야 한다. 멋진 다이아몬드가 있었기에 남자의 한마디에 여자의 마음이 흔들렸고, 형편없는 샌드위치로 프레타망제가 오늘의 성공을 거뒀을 리 만무하다.

반대로 훌륭한 상품을 내놓으며 오만한 태도로 일관한다면, 고객 지갑은 열리지만 마음의 문은 굳게 닫힌다. 막대한 자금을 기부하는 기업이라도 일상적인 공감과 위로 표현에 인색하다면 사회적 지지를 받기 어렵다. 비싼 다이아몬드를 선물하고도 물질적인 관계로 끝나버리는 꼴이다.
기업도 소비자도 힘든 한해였다. 서로 위로하고 기운을 북돋아주는 말 한마디가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연말이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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