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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의 마음과 세상] 허세는 ‘응급약’이다.

우리는 허세 부리는 사람을 싫어한다. 실제로 가진 것보다 있는 척 하는 사람을 보면 가벼워 보이고, 믿을 수 없다 여긴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잘난 체 하지 마라,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라며 겸손을 반복 주입시킨다. 괜히 내 아이가 허세부리는 사람으로 알려지면 안 되니까.

허세(虛勢)는 ‘실속이 없이 겉으로만 드러나 보이는 기세’란 뜻으로 한국인의 일반적인 정서에선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물론 항상 허세로 일관된 사람이야 당연히 사기꾼에 가까운 사람이겠지만, 허세도 잘 쓰면 ‘약’이 될 수 있다.

허세란 내심 “나 아직 죽지 않았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살다보면 세상의 풍파에 얻어맞아 쓰러지기 일보직전인 상태일 수 있다. 이런 시간이 길어지면 밖에 나가는 것도 무섭고,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진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덕분이다. 자존감은 나를 지키는 원자로와 같아서 이 험한 세상에 나를 지켜내고 삶을 이어나갈 동력을 공급한다. 그런데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고, 여기에 대해 적절한 위로와 휴식의 시간을 갖지 못하면 원자로의 작동수위가 낮아져 위태로운 수준이 될 수 있다. 이때 외부에서 위로나 칭찬과 같은 형태의 원조를 받으면 다시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매번 외부에 손을 빌릴 수 없고, 원할 때마다 적절한 외부보상을 얻기 어렵다. 자아의 핵심이 허약해질 때 이를 보호해주는 것이 허세의 역할이다.

그런 면에서 허세란 과자봉지의 질소가스와 같다. 단단한 사탕은 비닐봉지에 넣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부서지기 쉬운 감자 칩이라면 운송과 보관 중 부서지지 않게 질소가스가 필요하다. 물론 요새 과자는 내용물에 비해서 봉지만 크고 가스로 배를 채운 형국이라 비판을 받지만, 만일 지금 내 마음이 감자 칩과 같다면 질소가스라도 넣어서 보호해 줘야만 할 것이다.

자아는 역동적으로 변화한다. 어떨 때는 돌같이 단단하기도 있지만, 힘든 상황에 지치고 실패에 좌절하다보면 견고한 짜임새를 잃고 부서지기 쉬운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 이런 상태가 되면 ‘내가 부셔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존재의 불안을 느끼게 된다. 나란 존재가 바스러져 한 줌의 모래가루가 돼 버릴지 모른다는 불안은 아주 근본적인 기저를 흔들어 울림도 크고 질적으로 다른 공포를 안겨준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런 수준의 절멸불안을 인식하지 않도록 방어할 필요가 발생한다. 이때 허세가 필요한 것이다. 질소가스로 과자봉지를 빵빵하게 만들듯이 “난 괜찮아”, “나 이정도 갖고 있잖아”란 제스처를 하는 것이다.

위대한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는 라이벌이었던 조 프레이저에게 패배한 후 이렇게 말했다.

“나도 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교훈이었다.”

아마도 알리는 프레이저에게 진 것을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나고, 또 부끄럽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팬 여러분. 죄송합니다”라고 하지 않고 저런 허세 섞인 인터뷰를 한 것은 바로 수세에 몰린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렇듯 허세는 ‘비상약’으로 그 가치가 있다. 매번 허세를 써선 안 된다. 허세는 심장마비가 왔을 때 응급으로 쓰는 아드레날린과 같다. 만일 올 한 해 많이 힘들고 지쳐 내 마음이 허약해진 것 같아 누구 만나는 것도 힘들어질 정도라면 거울을 보면서 한 마디 해보자. “나 괜찮아!” 그리고 지레 움츠려 들지 말고 좋은 옷을 골라 입고, 당당히 나가서 더 밝은 모습을 보이려 노력해보자. 그래도 괜찮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jh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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