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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여러분께 큰 빚 지고 있다" "힘든 시절, 자식 아닌 우리가 겪어 다행"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위한 감사 송년회가 26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파독 근로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편지를 전달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둘째줄 오른쪽에서 여섯째)과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일곱째), ‘역사토크’를 함께한 어린이들과 한자리에 섰다. 파독 광부들은 1963년 처음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신인섭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편지, 잘 받아 보았습니다. ‘여러분께서 독일의 탄광에서, 병원에서 흘린 땀과 눈물은 희망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는 글로 시작하는 편지는 우리 파독(派獨) 근로자들의 마음 깊은 곳에 다가왔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은 여러분께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적은 부분에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고요. ‘지하갱도에서 근면하게 일하셨던 여러분의 모습은 독일 국민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각 병원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하셨던 간호사들의 모습은 독일 국민에게 깊은 신뢰를 안겨 주었다’는 대목에선 우리의 젊은 날들이 어른거렸습니다.

 우린 40~50년 전 독일 땅에서 일했던 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들입니다. 1963년 12월부터 77년 2월까지 모두 1만8993명(광부 7936명, 간호사·간호조무사 1만1057명)이 독일 땅에서 일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오늘(26일) 오후 2시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파독 51주년 감사 송년회’에 대통령의 편지가 도착하지 않았다면 이번 행사도 주목받지 못했겠지요.

 요즘 우리는 ‘덕수’와 ‘영자’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렇습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덕수는 파독 광부, 덕수의 부인인 영자는 파독 간호사로 나오지요. 영화에서처럼 파독 광부들은 온갖 체력검사를 통과하고야 독일에 갈 수 있었습니다. 63년 겨울, 서울 동교동에 있던 한국해외개발공사(현재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첫 파독 광부를 뽑는 체력검사를 했습니다. 실업률이 40%가 넘던 때라 대졸자들까지 몰려들어 경쟁률이 100대 1에 달했습니다. 60㎏이 넘는 모래가마니를 메고 일어서는 검사가 있었는데 여기에서만 절반 넘게 떨어졌습니다.

 파독 광부 1진이 떠나던 날이 떠오릅니다. 비행기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독일에 도착한 첫날, 우리 앞에는 1㎞가 넘는 깊이의 막장(갱도 끝에 있는 채굴작업장)이 시커먼 입을 벌린 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는 동료도 적지 않았습니다. 63년에서 79년까지 광부 65명, 간호사 44명, 기능공 8명이 숨졌습니다.

26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파독 51주년 기념 감사 송년회’에서 파독 간호사 출신인 김현진(67)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감사 편지를 전달받은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왼쪽은 1967년 7월 독일 쾰른의 한 종합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당시의 김씨 모습.


 동료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을 때도 우리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섭씨 35도가 넘는 작업장에서는 땀이 장화 안쪽에 흥건히 고였고, 석탄가루로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일해 한 달에 650~950마르크(당시 한화 32만~47만원)를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국무총리 월급이 43만원 정도였으니 일부 동료는 총리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던 셈이지요. 하지만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번 돈을 거의 전부 한국으로 부쳤습니다. 파독 근로자들이 보내오는 외화는 당시 국민총생산(GNP)의 2%에 달할 정도로 큰돈이었지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는 64년 10월 독일 함보른 탄광을 방문해 우리를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우리 후손들은 타국에 팔려 나오지 못하도록 합시다.”

 영화에서처럼 파독 광부와 간호사가 결혼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영자는 남편인 덕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 인생인데 왜 그 안에 당신은 없는 거죠?” 영자의 이 질문은 우리 모두를 향한 것처럼 들렸습니다. 조국 번영이란 목표 아래 우리는 우리 자신도 잊은 채 이국땅에서 땀을 흘렸습니다. 그 세월을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영화 속 덕수의 말로 그 대답을 대신하려 합니다. “힘든 (시절)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것이 참 다행이야….” 

글=장혁진 기자 analog@joogn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이 기사는 대통령 감사 편지 전달식에 참석한 파독 광부 고창원(60)·하대경(73)·김경환(65)씨, 파독 간호사 김현진(67)씨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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