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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테 받은 은혜는 기억하고, 내가 베푼 은혜는 잊어버려라

“희망과 소망을 가지면 일이 풀리기 시작하지만 절망하면 풀릴 일도 풀리지 않아요.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갖도록 해주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세월호 참사 등 안타까운 사고가 유난히도 많았던 2014년 세밑, 김장환(80·극동방송 이사장) 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목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했다. 올해로 58년째 목회 활동을 하고 있는 김 목사가 “그늘진 이웃에 시선을 돌리는 일”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도 ‘희망 운동’의 실천을 위한 것이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은 우수한데 개인주의가 강해 뿔뿔이 (흩어지)고, 남을 배려하는 게 적은 것 같다”며 “나만 옳다는 생각을 버려야 타협점을 찾을 수 있고 남을 배려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목사가 요즘 관심을 쏟고 있는 건 서울 개포동 구룡마을이다. 강남의 마지막 판자촌인 구룡마을 건너편엔 타워팰리스 등 고급 아파트촌이 펼쳐져 있다. 빈부(貧富)가 극적으로 교차하는 지점이다. 김 목사는 지난달 하순, 구룡마을 화재로 1명이 죽고 63가구가 전소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1100여 가구에 쌀·소화기 등 구호물품을 전달한 데 이어 이재민 105명을 극동방송 주최 크리스마스 콘서트에 초대했다. 지난해엔 시리아 난민 7만 명이 기거할 수 있는 대형 컨테이너 하우스 1700대를 보냈다.

 인터뷰를 위해 수원의 원천침례교회를 찾은 날은 희끗희끗 눈발이 날렸다. 교회 3층에 자리한 BK(빌리 김)도서관이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빌리 김은 김 목사의 미국식 이름으로, 하우스 보이 시절 미군들이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김 목사의 80년 인생이 오롯이 살아 있는 도서관 이야기로 인터뷰는 시작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 이래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들은 김장환 목사와 독대하며 시중 여론을 듣고 자문했다. “박근혜 대통령과도 따로 만났느냐”는 질문에 김 목사는 “독대한 적은 없지만 대통령에게 꼭 필요한 얘기들은 청와대에 전한다”고 했다. [김성룡 기자]

 - 원래 목사를 꿈꾸셨나요.

 “난 정치를 하려고 했어요. 면 서기를 한 친척이 있었는데 쌀밥에 청어를 구워 먹더라고요. 우리 집은 가난해 보리밥만 먹었는데. 장관 되면 보리밥은 안 먹겠지 싶었죠.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하나님께 붙잡혔어요. 너희 나라는 너 아니라도 정치 할 사람 많으니까 넌 목사가 돼서 하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하라고요.”

 수원농림중학교에 재학중이던 김 목사는 6·25전쟁이 일어나 미군부대 하우스 보이가 됐다. 한국전이 한창이던 1950년대엔 미군부대 막사에서 나오는 빨랫감을 동네 아주머니들한테 맡겨 세탁해다 주고 막걸리나 담배 심부름 같은 허드렛일을 해주는 하우스 보이들이 많았다. 김 목사는 거기서 미국인 병사(칼 파워스 상사)를 만나게 됐고, 이 만남이 그의 운명을 극적으로 뒤바꿔 놓았다. 고교생(당시 17세)이던 1951년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을 공부해 목사가 된 것이다.

 - 파워스 상사가 은인이군요.

 “파워스 상사도 형편이 넉넉지 않았지만 나를 미국에 보내기 위해 다섯 번이나 연장근무를 했고 학비까지 대줬어요. 훗날 내가 목사가 돼 파워스 상사에게 세례를 해줬지요. 지난해에 돌아가셨지만 그 전까지 우리 애들과 매년 파워스 상사가 살던 집을 투어했죠. 은혜를 잊지 말자는 뜻이죠. ‘남한테 받은 은혜는 오래 기억하고 내가 베푼 은혜는 잊어버려라’는 좌우명을 그때부터 새기고 있어요.”

 - 선택받은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세요.

 “난 다른 심부름은 열심히 잘 했지만 두 가지를 안 했어요. 하우스 보이들이 시레이션·비누 등 보급품을 훔쳐서 내다 팔곤 했는데 난 도둑질을 안 했어요. 또 미군들이 막사로 여자 데려오는 건 절대 반대했어요. 정직함이 나를 픽업한 것 같아요.”

김 목사와 부인 트루디 여사. 뒷줄 왼쪽부터 차남 김요한 목사, 딸 김애설 박사, 장남 김요셉 목사.
 김 목사는 보수 근본주의 학풍이 강한 기독교 학교인 밥 존스 중·고교를 거쳐 대학·대학원을 졸업한다. 부인 트루디 여사를 만난 것도 이때다. 미국 기독교계와 맺은 인연은 그가 세계 기독교계에 이름을 알리는 밑거름이 됐다. 1973년 100만 인파가 모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여의도 집회 때 통역을 맡게 됐고, 동양인으론 처음으로 침례교 세계연맹총회장(2000~2005년)에 올랐다. 그는 역대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는 단골 손님이기도 하다.

 - 미국 대통령들과 친분이 깊은데요.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강타했을 때 기도해준 게 기억나요.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 경선에 출마했을 땐 LA에서 정치자금 후원회 모임에서 기도를 했고, 국무장관 때 이화여대 특강도 주선했어요. 이대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주려고 했지만 미국법에 현직 국무장관은 사립학교에서 명예 학위를 받을 수 없도록 돼 있어 학위 수여는 무산됐지요.”

 -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대통령을 꼽으라면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정치적으론 높은 점수를 못 받았지만 소탈하고 인간적인 매력이 있어요. 이라크전에서 부상당한 사람들을 다 모아 텍사스에서 골프대회를 열어주는 걸 직접 봤는데 대통령이 그 사람들하고 같은 레벨이 되더라고요. 나도 네댓 번 같이 골프를 쳐봤는데 OB(공이 페어웨이를 벗어나는 것)가 나도 절대 다시 치는 법이 없어요. 끝날 땐 캐디에게 자기 모자에 사인해 주는 배려와 인간미가 있어요.”

 - 지미 카터 대통령과의 인연은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침례교 집사여서 조지아 지사 때 몇 차례 기도해 준 게 계기가 돼 가까워졌어요. 그런 인연으로 박정희 대통령과 인권·철군 문제로 틀어졌을 때 중재를 할 수 있었죠.”

 1979년 6월 카터- 박정희 정상회담은 아슬아슬했다. 카터 대통령이 한국의 인권 문제를 들어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나서면서 두 정상의 1차회담은 결렬 직전까지 갔다. 2차회담을 앞두고 여의도 침례교회로 이동하는 자동차 안에서 김 목사는 카터 대통령을 설득한다. 이어지는 김 목사의 회고.

 “내가 박 대통령 칭찬을 많이 했어요. ‘박 대통령은 애국자다. 깨끗하고 가난을 면해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당신이 박 대통령을 전도했으면 좋겠다’고 했죠. 카터 대통령도 ‘일본의 후쿠다 총리가 박 대통령 칭찬을 하더라. 내 누이동생이 한국 방문을 원하니 도와 달라’고 해요. 이런 대화 내용을 청와대에 가서 전했더니 박 대통령이 ‘난, 그 친구 밥맛없어’라고 하더라고요. 난 ‘미운 사람 떡 하나 더 주라고 했는데 (카터가) 전도하면 받아주십시오’라고 건의했어요. 이어 열린 2차회담은 성공적으로 끝났어요. 카터가 박 대통령과 공항까지 동승해 가면서 ‘좋은 목사를 소개하겠다’며 나를 소개했다고 해요. … 몇 년 전 카터 대통령이 ‘그때 박 대통령을 전도했는데 천당 갔는지 모르겠다’고 해서 ‘나도 모르겠다. 천당 가 봐야 알지’라고 한 적이 있어요.”

 김 목사는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등 역대 대통령과 유력정치인들과도 교분이 깊다. 특히 대통령·기업인들이 어려움을 겪거나 구속될 때면 빼놓지 않고 면회를 가서 기도해주는 걸로 유명하다.

 - 교도소를 가장 많이 찾아간 목사인데요.

 “전도의 사명을 실천하기 위한 거죠. 목사로서 위안이 필요한 곳을 찾아 기도하고 위로하는 게 사명이니까요.”

 -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은거했던 백담사를 찾아간 일화가 유명한데요.

 “일주일 만에 찾아갔어요. 비서들만 왔다 갔다 하지 아무도 안 갈 때예요. 너무 춥더라고요. 절간은 화장실이 멀잖아요. 전 대통령이 ‘집사람이 갈 때 데리고 가 기다렸다 데려온다’고 하던 말이 기억나요. 집사람이 파이를 잘 구워 늘 갖고 가곤 했는데 대통령 내외가 우리가 언제 파이를 갖고 오나 하고 기다려진다며 반겨줬어요.”

 - 요즘 정치권에 주는 조언이 있다면요.

 “과거 대통령은 야당 대표를 수시로 만났어요.또 당이 다른 사람들끼리 만나서 주고받는 정치를 했는데 요새 그런 게 안 되고 있어요. 세월호도 첫단추를 잘못 꿰어 오래갔거든요. 처음부터 그 사람들 맘을 추스르며 했으면 잘 풀릴 수 있었죠.”

 - 박근혜 대통령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요.

 “ 박 대통령은 잘하고 있고 원칙을 지키려고 하는 것도 잘하는 일이지만 정치는 상대가 있으니 타협과 소통이 있으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혼자 살 때는 내 맘대로 할 수 있지만 장가 들고 나면 상대방 얘기 듣고 양보해야 하는 거와 마찬가지죠.”

 - 향후 계획은 무엇입니까.

“북한 어린이들을 체계적으로 돕는 일을 고심하고 있어요. 한 예로 미국 카네기센터에서 남북한 어린이들이 공동으로 공연하는 행사도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와도 협의해 봐야 하고 북한이 허락해 줘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기도하고 있어요.”

이정민 정치·국제 에디터 jmlee@joongang.co.kr


[S BOX] ‘혼혈아’ 손가락질 안 받게 세 자녀 엄하게 길러

김장환 목사는 자녀들을 엄하게 교육한 걸로도 유명하다. 초등학생인 어린 아들을 혁대로 때린 일화는 지금도 입소문을 타고 퍼져 있다. 부인 트루디 여사와 사이에 2남(김요셉·김요한 목사) 1녀(김애설 박사)를 둔 김 목사는 “혼혈아로 한국 사회에서 배겨나기 어려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엄격하게 가르쳤다”고 설명했다.

 “ 조금 비뚤게 나가면 ‘혼혈아라 그렇다’고 손가락질 받죠. 엄하게 가르쳤기 때문에 3남매 모두 올바로 컸다”고 했다.

 - 미국인인 트루디 여사가 아이들 체벌을 받아들였나요.

 “그 질문을 받으면 집사람은 ‘나도 맞을까봐 안 말렸다’고 농담을 하곤 하죠.집사람은 맘은 아팠지만 부모가 아이들에게 일관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내 교육방침을 참견하지 않았다고 해요.”

 - 때리면 반항할 수도 있는데요.

 “혁대로 때렸지만 때린 것 이상으로 사랑으로 감싸주고 시간을 같이 보내줬죠. 오래 같이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퀄러티 타임(quality time·귀중한 시간)이 돼야 해요. 30분을 있더라도 아이들 때문에 시간을 할애했다는 것을 알면 절대 비뚤게 안 나가요.”

 - 어떻게 하면 퀄러티 타임이 될 수 있을까요.

 “얼마 전 막내 손녀딸이 왔어요. 식사하고 단 디저트 없느냐고 하니까 호떡을 만들어냈더라고요. 2개를 먹어주니까 그 애가 그렇게 좋아해요. 그렇게 시간을 같이 나누는 게 그 애들을 위한 시간을 주는 거예요.”

 13만 가구를 넘어선 국내 다문화 가족의 부모들에게 김 목사는 “말 안 듣는다고 아이를 멸시하고 미워하면 그 가정은 소망이 없지요. 부모가 인내를 갖고 사랑으로 키우면 다음 세대에 가서 큰 축복을 받게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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