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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해킹사태로 본 할리우드 속 북한

최근 개봉한 코미디 영화 ‘인터뷰’의 한 장면.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가운데)은 서투른 영어로 백인 여성들과 파티를 즐기는 우스꽝스러운 지도자로 등장한다. [사진 컬럼비아픽처스-소니]

소니픽처스의 해킹과 테러 위협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인터뷰’가 25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전격 개봉했다. ‘인터뷰’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만나러 가는 TV 토크쇼 사회자와 제작자에게 김정은 암살을 제안하면서 벌어지는 내용을 담은 B급 코미디 영화다. 시종일관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과 북한 상류층을 노골적으로 풍자한다. 김정은은 극중에서 비키니 입은 서양 여성들과 난잡한 파티를 즐기고 “아버지 김정일이 스탈린에게서 선물받은 것”이라며 구식 탱크를 자랑하기도 한다. 두 미국인 주인공이 발사한 포를 맞은 김정은은 결국 불길에 휩싸여 최후를 맞이한다.

2004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팀 아메리카’에 나온 김정일(사진 위)과 컴퓨터 게임 ‘영광스러운 지도자!’에서 김일성?정일 동상 앞에 선 김정은 캐릭터.
 미·소 냉전시대 당시만 해도 영화 속 악역은 주로 소련·독일 출신이었다. 첩보물 ‘007’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할리우드는 중동 테러리스트, 중국 등을 새로운 적으로 삼았다. 북한은 2002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규정한 이후 할리우드의 주요 적국 중 하나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애국심과 영웅주의를 강조하는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서 미국의 적대국, 물리쳐야 할 악의 근원으로 묘사된다.

 2002년 개봉한 ‘007 어나더데이’는 제임스 본드(피어스 브로스넌)가 북한의 무기밀매 현장에 위장 잠입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인질로 잡힌 본드는 북한 특수요원들에 의해 온갖 고문을 당한다. 풀려난 후에는 신무기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 장교와 맞서 싸운다는 게 영화의 줄거리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물소가 버젓이 황량한 논을 간다거나 북한의 악당들과 결투를 벌이는 제임스 본드가 대한민국의 군복을 입고 있는 등 우스꽝스러운 묘사로 국내에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인터뷰` 공동감독 세스 로건.
 2012년에 개봉한 ‘레드던’은 북한이 미국·캐나다 등을 전자기파(EMP)로 공격해 모든 전기 공급을 끊기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민병부대가 북한군 특수부대와 맞서 싸우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1984년 제작된 원작 영화에서의 주적은 소련이었지만 리메이크된 2012년 작품에서 침략자가 북한으로 바뀌었다. 미국에 낙하산을 타고 침투한 북한군이 미국 청소년에게 당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도 나온다.

 앤젤리나 졸리가 CIA 요원으로 분했던 영화 ‘솔트’(2010년 개봉)는 북한 시설을 파괴하려다 억류된 솔트가 고문과 학대를 받다가 석방되는 내용이 등장한다. 지난해 개봉한 ‘백악관 최후의 날’에서는 북한이 미국의 핵무기 발사 코드를 알아내기 위해 미국 대통령을 인질로 잡는다. 영화 속 북한 전투기는 워싱턴DC 상공을 날며 미국의 수도를 공습하고 함락시킨다. 남한 외교사절단을 가장한 북한인 테러리스트가 백악관을 몰래 침투하고 대통령을 위협하며 핵무기 코드를 알아낸다.

 영화 ‘월드워Z’(2013년)는 ‘북한에서 좀비가 처음 발생했다’라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북한의 독재자가 주민 2300만 명의 이를 몽땅 뽑았기 때문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지 못했다는 황당한 설명도 이어진다. 이밖에 ‘스텔스’(2005), ‘에너미라인2-악의 축’(2006), ‘지 아이 조2’(2013) 등에서도 북한은 물리쳐야 할 악당 혹은 적국으로 등장한다.

 할리우드가 영화 배경으로 북한을 자주 사용하는 건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독재 국가라는 이미지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정부가 주적으로 지목하는 만큼 북한을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부정적인 세력으로 삼는 것이다. 정치·경제적으로 급성장한 중국을 악당으로 묘사하는 것보다 부담도 작다.

 북한을 부정적으로 다룬 영화가 많아질수록 실제 미국인의 북한에 대한 시선은 냉랭해진다. 지난 9월 미국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가 성인 2100여 명을 대상으로 벌인 의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북한의 호감도는 대상 국가 중 가장 낮은 23점을 기록하며 ‘비호감 국가’로 뽑혔다. 이란(27점)·이라크(31점)·파키스탄(33점)이 뒤를 이었다. 한국은 55점을 기록했다.

 할리우드의 북한 때리기는 이번 소니픽처스의 해킹 사태로 한풀 꺾인 상태다. 영화 제작사들 사이에는 ‘제2의 소니’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퍼지면서 북한이 등장하는 영화 제작 계획이 지연되거나 아예 취소되고 있다. 영화 ‘인터뷰’도 개봉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제작사인 소니픽처스가 해킹당한 이후 개봉을 취소하자 “할리우드의 굴욕이자 나라의 굴욕”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무료 배포, 온라인 개봉 등 여러 가지 대안이 제시됐고 결국 300개 상영관과 온라인에서 개봉될 수 있었다.

 21세기 폭스사가 제작하는 영화 ‘더 디펙션’은 이번 소니 해킹 사건을 계기로 대본을 전면 수정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 19일 보도했다. 영화 속에서 미국 CIA 요원이 북한으로 망명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폭스사는 이 장면을 아예 빼기로 결정했다.

내년 초 크랭크인할 예정인 영화 ‘평양’도 촬영 계획이 전면 취소됐다. 캐나다 출신 만화가인 기 들릴이 자신이 살았던 평양에서의 경험을 담은 원작을 바탕으로 하는 영화다. 제작사인 뉴리젠시 측은 “우리는 해킹의 또 다른 피해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이 같은 점을 감안해 촬영에 아예 들어가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극장 체인들이 ‘인터뷰’ 상영 취소 후 대신 2004년에 제작된 ‘팀 아메리카:세계 경찰’을 개봉 10주년 기념으로 재상영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이마저도 무산됐다. ‘팀 아메리카’는 미국 테러진압팀이 김정일로부터 세계를 구한다는 내용의 인형극 애니메이션이다.

제작 계획을 강행하는 곳도 있다. 탈북자 출신 강철환씨가 북한 정치범수용소 실상을 사실적으로 그린 ‘평양의 어항’은 내년 영화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북한도 할리우드에 반격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북한은 대남 선전 웹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에 ‘은하 9호를 타고’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올렸다. 은하 9호 로켓으로 발사한 인공위성 ‘광명성 21호’가 지구 주위를 돈다는 내용이다. 미국 영토에서 화염이 치솟는 장면과 함께 “미국 어디선가 검은 연기가 보입니다” “강권과 전횡, 침략 전쟁만 일삼던 악의 소굴이 불에 타는 모양입니다”라는 자막으로 미국을 비판했다.

 영화 ‘인터뷰’의 개봉을 앞두고도 북한은 미국을 향해 “우리 주권과 최고지도자의 존엄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조롱”이라며 “전례 없는 강도 높은 보복을 가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영국 BBC는 “북한이 최근 들어 할리우드에 강경하게 대응하는 건 ‘최고지도자의 암살’이라는 자극적인 내용이 등장하는 등 표현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데 반해 북한 내에서는 주민 세뇌 정책이 잘 먹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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