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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개혁적 제3극 정당은 불가능한가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한국 정치가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으로 극단적인 제3극 정당이 제도권에서 퇴거됐다. 종북 논란 같은 광기어린 정치에 종지부가 찍힌 듯하다. 중도적 현실노선의 양당정치가 제자리를 잡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적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런 정치가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통진당의 퇴거로 보수 집권세력은 카타르시스에 빠져 있는 듯하고, 야권 세력은 아직 방향감각을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진보세력은 일그러진 진보운동의 재편 내지 재건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고, 개혁그룹은 극단을 배제한 새로운 제3극의 정치세력화에 시동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제3극 정당은 양당정치의 틈새를 파고드는 주변부의 정치세력이다. 그렇다고 극단적인 것만은 아니다. 독일이나 영국에서 보듯 민주정치에 활력소를 불어넣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사회경제적 격차의 확대로 극단적인 제3극 정당이 늘어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과연 민주정치에 활력소를 제공할 개혁적 제3극 정당이 가능할지 관심이 적지 않다.

 우리 정치의 경우 제3극 정당은 절대적으로 필요해 보인다. 지역과 계급을 기반으로 한 지금의 양당체제가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거 때만 되면 기존 양당정치의 틀을 깨겠다는 제3극 세력의 외침이 요란했다. 하지만 이런 외침은 안정된 지지기반보다는 그때그때의 바람에 의존했기 때문에 바람이 잦아들면 곧 소멸되는 경향을 보여 왔다. 한때 활발했던 시민단체의 정치세력화 붐도 이런 운명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안철수 바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캐스팅 보트를 휘두르며 민주정치의 활력소 역할을 해온 제3극 정당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충청권 지역을 기반으로 한 김종필 총재의 자민련이 그나마 그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민련은 1997년 대선 당시 DJP연합으로 권력에 참여한 뒤 분열과 소멸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유럽과 달리 왜 한국에서는 제3극 정당이 제자리를 찾기 어려운 것일까. 전문가들의 대답은 대체로 비슷하다. 선거구제와 연관이 적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승자 독식의 소선거구제에서는 여야를 불문하고 제1당의 위치에 있는 당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고정된 지지기반에 기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제3극 정당은 이런 ‘기초자원’이 달린다는 것이다.

 비교정치에서 한국 정치는 관심을 끄는 연구 대상이다. 하버드대의 정치학 교수였던 고(故) 헌팅턴은 한국을 일당 지배적 체제에서 경쟁적 양당체제로 이행한 대표적인 나라로 보았다. 경제성장에 따른 중산층의 확산으로 민주화를 이뤄냈고, ‘두 번의 정권 교체’를 통해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양당체제였다. 하지만 지금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심화로 중산층은 엷어지고 있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양당체제는 위협을 받고 있다. 정치적 선택지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유권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좌든 우든 극단적 제3극 정당으로 흐를 가능성이 적지 않다.

 여기서 우리 정치의 과제는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유권자들이 통진당과 같은 극단적인 제3극 정당으로 향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이다.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된 선택지를 제공해야 된다는 말이다. 우리의 문제는 더 이상 지역이나 계급의 문제가 아니다. 이른바 ‘생활영역(realms of life)의 격차’가 더욱 큰 문제다. 환경 영역에서는 협조하면서도 복지 영역에서는 충돌하는 유권자들이다. 그래서 지역과 계급에 기반을 둔 지금의 양당정치로는 제대로 된 선택지를 제공할 수 없다.

 케인스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보수도 진보도 될 수 없다고 했다. 보수는 기득이익에 매달려 있고, 진보는 부수기만 하면 잘 될 것이라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미래의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개혁적인 제3극의 자유당에 기대를 건다고 했다. 지금 자유당은 보수-노동 양당의 틈새에서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며 영국 민주주의에 활력소를 불어넣고 있다.

 지금의 새누리-새정치연합의 정치로는 유권자들이 극단적인 정당 선택으로 향하는 것을 막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 정치에도 이런 제3극 정당이 필요하다. 또 가능해 보인다. 손학규, 안철수 등 기초자원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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