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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9) 제79화 5기생의 현주소

정승화대장(56)은 요즘 그림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옥고를 치르고 나온뒤 시작한 동양화공부가 1년남짓에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난 1월19일 전북 이리서 열린 스승 계정 민리식화백의 개인전에는 매화와 포도 2점의 그림을 찬조출품하기도 했는데 그중 포도는 스승의 작품에 못지 않더라는 애기를 들었다.
잠실의 47평짜리 아파트에서 부인과 살면서 그림공부 외엔 가끔 등산을 다닐뿐 바깥출입도 적다. 건강도 과히 좋지않아 천식으로 고생한다고 한다. 두아들은 미국에 살며 시집간 딸이 서울에 거주, 왕래해 외손자 재롱보는것이 큰 낙이라는데 막내아들은 육사를 나와 소위로 군에 복무중이다. 사태후 정장군은 아들에게 『진로를 바꿀테면 바꾸라』고 권유했으나 본인이 군에 남았다고 들었다.
주월군사령관을 거친 채명신중장(56)은 스웨덴·그리스 대사를 거쳐 브라질대사를 끝으로 81년 외교관직에서 물러난뒤 미국에 건너가 학생이 됐다. 「웨스트모얼랜드」등 옛 월남전의 미군전우들로부터 오래전부터 회고록 집필을 권유받고 있다는데 본인은 『아직 이르다』며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하버드대학에서 수강한다고 들었다.
5·16에 주체로 참여했다가 반혁명으로 옥고를 치른뒤 외교관으로 전신한 송찬호준장(59)도 역시 미국에서 만학을 하고 있다. 채장군과 같은 무렵 외교관직을 떠났다. 송장군은 5기들 가운데서도 지모가 뛰어나 「조조」라는 별명이 있었다.
주월맹호사단장으로 있으면서 월맹-베트콩의 대공세를 앙케고지에서 잘 막아내어 「앙케장군」이라고 불리던 김학원중장은 12·12로 1군사령관직을 물러난뒤 지난해 2월 별세했다. 평소 동기생들과 왕래가 적어 장례식에는 동기생들도 많이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김장군은 2기의 이세호대장(육참총장)·심여선대장(합참의장·총무처장관)과 개성 송도중학의 동창. 5기생 가운데 진급이 가장늦은 편이었는데 뒤늦게 두각을 나타냈었다.
5기 1등 입교자인 김재권소장(60)은 독실한 불교신자로 동기들로부티 「보살」로 불린다. 예편후 중경고등학교 교장으로 있다 물러나 현재는 붓글씨와 독서로 소일하고 있다. 김장군은 임관직후부터 콧수염을 길러 군안에서 김석원장군, 박승일대령(1기)과 함께 「카이제르수염」으로 유명했다.
5기생중 끝까지 혁명주체로 남은 몇안되는 사람가운데 하나인 김재춘소장(55)은 고향 김포에서 인산농원을 경영중. 한때 중앙정보부장을 맡아 혁명의 2인자로 독주하던 8기의 김종비씨를 「자의반 타의반」 퇴진시키는데 일역을 맡기도 했으며 8, 9대 국회의원도 지냈다.
육군항공학교장·항공감을 지낸 손영을소장(59)은 서도의 대가. 지난해 장성서예전엔 8천여자의 「금강경」을 10폭 병풍으로 만들어 출품, 경탄을 모으기도 했다.
작품은 모 보험회사 회장이 즉석에서 6백만원에 사들여 회사에 두고있다고 들었다. 일찌감치 항공감시절 말죽거리를 요지로 지목했다가 퇴직금으로 땅을 사둔 것이 몇년후 영동개발과 함께 금싸라기가 돼 하루아침에 돈방석에 올라, 동기들로부터 그 선견지명이 부러움을 샀다. 동기들을 가끔 집에 초대해 술을 나눌때면 부인에겐 흰색 한복을 입혀 술시중을 들게한다는 풍류객이기도하다. 골동품수집에도 일가를 이루어 진품을 많이 수장하고 있으며 미구에 개인박물관을 개설할 준비까지 하고있다.
이원엽소장(58)은 남해화학사장에서 물러난뒤 집에서 쥐고있다. 서양화가 프로급으로 가끔 그림을 그리고 친구들과 골프를 치는 외엔 별 활동이없다. 지난연말에는 아들이 있는 캐나다를 다녀왔다.
광업진흥공사 사장을 지낸 박영석준장(57)은 방림방적의 고문. 처음엔 사장으로 갔었는데 사사건건 시어머니 노릇을 하려드는 주거래 모은행의 횡포를 보다못해 은행장을 찾아가 혼내준뒤 사표를 낸 것을 회사측에서 고문으로 모셔갔다고 한다.
불의를 보고 못참는 성격에다 배짱이 센것으로 소문나 있다. 박기석준장(54)은 5·16 민족상이사장직을 맡아 1주일에 두세번 사무실에 나가며 등산·독서등으로 소일하고 있다.
김경옥준장(56)은 협진식품회장으로 있으면서 동기간의 연락업무를 주로 맡고 있다. 정보부에 오래 근무(7국장) 했으면서도 그런 냄새가 전혀 안나는 사근사근한 성격에다 동기간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는 열성파로 알려져 있다.
장성중에서는 유일하게 미국에 영주 이주한 김하인준장(56)은 화가인 부인과 하와이로 갔다. 현재는 LA서산다. 고국에서 가는 동기생들의 안내에도 수고를 많이 한다고 들었다.
3백여명의 5기 임관자중 생존자는 2백1명. 97명은 전사했고 나머지는 병사했다. 97명의 장성진급자 가운데는 김학원중장등 13명이 작고하고 현재 46명이 생존해 있다. 그중 대다수가 은퇴해 독서·취미생활 등으로 노후를 보내고있다. <계속> <장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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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