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세상읽기] 셰일 혁명에 돈 번 미국, 한·미 분담금 더 내야

[일러스트=강일구]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자유무역의 수호천사인 척하나 미국만큼 보호주의적 나라도 없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 ‘베리 수정안’이란 규정을 만든다. 무기·군사장비는 물론 군복까지 자국산을 써야 한다는 게 골자다. 전략물자의 공급을 외국에 맡겼다 전시 때 보급이 끊기면 국가안보에 치명적이란 논리였다.



 이런 주장의 허술함은 2001년 미 육군의 근무모가 검은 베레모로 바뀌면서 적나라하게 까발려진다. 베레모 470만 개를 즉각 만들어낼 업체가 없자 미 국방부는 중국·스리랑카 등 외국에서 조달하겠다고 발표한다. 당장 규정 위반이란 지적과 함께 정치문제화된다. 그러자 “베레모가 무슨 전략물자냐”며 “안보의 탈을 쓴 보호주의”란 비판이 미국 안팎에서 쏟아졌다.



 전략물자란 전쟁 수행에 필수불가결하며 적에게 넘어가선 안 되는 품목을 뜻한다. 개념상으론 분명하지만 실상 모호할 때도 많다. 이젠 흔해 빠졌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고성능 미사일 개발에 활용된다는 이유로 노트북PC까지 전략물자로 분류됐었다.



 물론 논란의 여지가 없는 전략물자도 있다. 철·식량 등과 함께 원유가 대표적 케이스다. 최신식 스텔스기면 뭐하나. 기름이 없으면 아예 뜨질 못한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것도 미국의 원유 금수가 도화선이 됐다. 원유의 전략적 가치를 단적으로 보여준 실례다.



 이처럼 전략적으로 중대한 원유가 계속 폭락 중이다. 지난 6월 배럴당 111달러를 찍었던 두바이산 원유가 곧 50달러 밑으로 추락할 기미다. 셰일층에서 원유와 가스 채굴이 가능해진 ‘셰일 혁명’ 때문이다. 지난 22일엔 사우디 석유장관이 “배럴당 20달러로 떨어져도 산유량을 줄이지 않겠다”고 밝혀 얼마나 더 떨어질지 가늠조차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이런 추세가 국제 정세, 특히 한반도 주변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첫째, 당장 눈에 띄는 건 러시아의 추락이다. 한때 자국산 원유와 천연가스를 무기처럼 휘둘렀던 러시아가 국가부도 위기에 몰릴 만큼 비참해졌다. 시베리아를 대대적으로 개발해 성장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동방정책도 얼마나 가능할지 미지수다. 자연 미국·중국에 홀대받던 북한이 러시아에 접근, 돌파구를 찾겠단 전략도 어긋나게 됐다.



 둘째, 보다 강력해진 미국의 부활이다. 셰일 혁명의 최대 수혜국은 단연 미국이다. 25일 발표된 미국의 3분기 성장률이 5.0%에 달했다. 11년 만의 깜짝 호황이다. 향후 몇 년간 연 2~3%씩 성장률이 높아질 거란 장밋빛 예상도 들린다. 값싼 기름을 노리고 미국으로 달려가는 외국 회사들도 많아졌다. 실제로 독일의 화학회사 BASF는 셰일오일 생산 지역에 4년간 10억 달러씩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로 부활할 공산이 짙어졌단 얘기다.



 셋째, 셰일 혁명으로 미국의 진정한 아시아 중시 정책이 추진될 가능성이 커졌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 정책을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끊임없는 중동 지역 내 혼란 탓에 미국은 아시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특히 세계 해상 원유 수출의 35%가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의 안보는 미국 국익과 직결되는 사안이었다. 여기가 막히면 가공할 석유 파동이 일어날 건 불 보듯 뻔했다. 그러니 중동을 두고 아시아에 눈길을 돌릴 여유가 미국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셰일 혁명으로 중동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급감하면서 미국은 아시아에 관심을 쏟을 여유가 생겼다.



 넷째, 셰일 혁명 덕에 미·중 관계가 더 좋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셰일가스의 최대 생산국과 소비국이 각각 미국과 중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그간 미·중 양국은 세계 에너지 자원을 두고 싸움을 벌여왔다. 그리하여 미국 언론에선 “중국이 우리가 쓸 기름을 빼내가고 있다”는 자극적인 표현이 난무할 정도였다. 그러나 셰일 혁명으로 가스를 보유하게 된 미국으로서는 중국이 고마운 손님이 될 게 분명하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동맹국 미국이 원유와 가스의 주공급자가 돼 주면 한·미 동맹이 강화될 건 불문가지다.



 끝으로 유가 하락으로 미 국방예산이 대폭 절약되게 됐다. F-15 전투기를 한 시간 띄우는 데 1300여만원어치의 항공유가 필요하다. K-1 탱크는 1L에 400~500m를 간다고 한다. 연비가 중형 승용차의 20의 1도 안 되는 셈이다. 이런 기름 먹는 하마들을 무수히 거느린 게 미 국방부다. 유가가 반 토막이 됐으니 미 국방부가 얻는 금전적 혜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미 온라인 군사 전문매체 ‘디펜스원’은 “최근의 유가 하락으로 미 국방부가 당장 수십억 달러를 아끼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군사비 절감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미국 내 목소리가 약해질 공산이 커졌다. 이뿐 아니다. 올 1월 끝났지만 한·미 간 방위비 분담 협상 당시 미국은 국방예산이 줄었다며 한국 측에 더 많은 부담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셰일 혁명 덕에 넉넉해진 미군의 주머니를 지적하며 “주한미군 관련 분담금을 더 많이 내라”고 당당히 요구할 때가 됐다.



글=남정호 국제선임기자

일러스트=강일구 기자 ilgoo@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