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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3)-제79화 육사졸업생들-5기생과 『6·25』

나중 공군참모총장에까지 오른 박원석(59·충남대덕·중장) 장지량(57·전남나주·중장)장군은 그 때 육군항공대 창설요원으로 가 공군이 됐다.
포병의 방경원(57·경남김해·소장6관구사령관) 송찬호(59·평남평원·준장·1군포병참모) 황종갑(고인·경기광주·소장)장군과 병참의 마웅호장군(63·경기개성·병참감·녹십자회장), 통신의 배덕진장군(56·황해신천·통신감·체신장관) 이용억(58) 이종섭(56)대령, 공병의 전경진장군(58·서울·준장·국방부 시절국장) 나남린대령(55) 등이 임관 후 새로 창설된 각과에서 활약했던 5기생들이다.
6·25가 터졌을 때 5기생들은 대부분이 소령 또는 대위로 대대장 부대대장 연대참모급에 진출해 있었다.
임관한지 불과 2년이 갓 지났으나 건국 전야 각지에서 잇단 반란사건과 무장공비의 토벌을 통해 실전경험을 쌓은 5기생들은 최일선 전투의 지휘관으로 용감하게 싸웠다.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들이 3분의2나 돼 공산당에 대한 적개심과 통일의 의지가 누구보다 강렬했던 5기생들인데다 일선 전투의 지휘관이었던 만큼 희생도 컸다.
3년의 전쟁을 치르며 임관자 3백80명의 3분의 1에 가까운 97명이 전사 또는 행방불명된 것으로 집계돼 있다.
그중에도 동기생들은 51년7월2일 양구방면 전투에서 전사한 7사단 8연대장 김룡배준장(추서)의 이름을 기억하며 아까와한다.
김장군은 6· 25가 났을 때 소령으로 7연대(연대장 임부택·육사1기)의 선봉인 제1대대장이었다. 북진때는 제일 먼저 압록강변의 초산에 도착,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아 이승만대통령에게 보냈던 장본인이다.
일본군 지원병 출신인 김장군은 평소 어린 마음에 군인이 되고 싶어 일군에 들어갔던 것을 후회했었다는데, 유능한 전투지휘관이었을 뿐 아니라 부하들을 아끼고 고락을 함께하는 덕망과 인품을 갖춰 많은 부하와 동료·상사들로부터 존경과 신망을 받았다.
당시 김장군 밑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했던 이대용장군(준장·전주월공사·한국화재보험협회 이사장)은 지금도『어질고 지혜로운 군인으로서 갖출 것은 모두 구비한, 보기 드물고 얻기 어려운 이상적인 지휘관이었다』고 추앙하고 있다.
여러번의 전공과 능력을 인정받아 동기생들 중 세번째로 빨리 연대장에 발탁되고 대령에 진급했었는뎨 진급 10일 만에 적탄에 쓰러졌다. 그가 전사한 양구에는 휴전 후 추모비가 세워져 그의 전공을 전하고 있다.
5기생 가운데 가장 먼저 연대장이 되어 나간 이룡장군(60· 함북경성·소장·사단장·육본기획통제실장)과 두번째로 나간 박춘식장군(작고·소장), 채명신(56·황해곡산·중장·2군사령관) 박창원(57·함북부령·준장·33사단장) 최택원(61·평북신의주·소장·5관구사령관)장군 등도 6·25때 명성을 날린 5기생이다.
이룡장군은 원래 만군의 조선인 특설대에서 소위로 있다가 해방 후 월남, 입교했는데 6· 25발발과 함께 송요찬장군이 지휘하던 수도사단 참모장으로 낙동강 방어전에서 공을 세웠고 북진했다가 중공군 참전으로 후퇴할 때는 전남교두보 철수작전에도 일역을 담당했다. 송요찬장군은 특히 이장군의 능력을 높이 평가, 자신이 가는 곳마다 이장군을 불러다 참모·사단장으로 쓰는 등 아꼈다. 두 분의 관계는 군을 떠난 뒤까지 계속돼 송장군이 인천제철 사장으로 있을 때는 이장군이 부사장으로 있다가 송장군이 별세하자 사장직을 잇기도 했다.
주월사령관으로 명성을 날린 채명신장군은 전쟁 후반 유격부대를 이끌고 동부전선의 적후방에서 무공을 세웠다. 유격부대장을 아무도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으나 채장군이 자원해 특히 평가를 받았다.
그는 5만 주월한국군의 초대사령관으로 월남전에 참전해서는 6·25때의 게릴라전 경험을 살려 대베트콩 게릴라전을 펴 큰 성과를 올렸다.
물론 정규군을 비정규전 부대로 쓰는 데는 문제점도 많고 그 때문에 비판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월남전에서 그의 전술적인 업적은 극히 긍정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가 사령관으로 있을 때 작전담당부사령관은 동기생인 최대명소장(59·강원이천·국방대학원장 역임)이어서 초기의 주월군은 5기생의 부대였다는 느낌을 준다.
채명신장군은 지금 미국에 살고 있고 최대명장군은 기아산업 고문으로 있다.
의흥·신령방어전투에서 적 전차를 10대나 파괴하는 등 공을 세워 당시 군단장 유재흥장군으로부터 상금 50만원과 사단장 김종오장군으로부터 상금40만원을 받기도 한 허용우대령과 초전에서 전사한 장철부·김영직소령 등도 6·25전쟁에서 활약이 컸던 5기생으로 동기생들은 꼽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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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