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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살릴 유일한 길은 종북세력과의 명확한 결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에 결정적인 증언을 한 인물로 김영환(51·사진)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이 꼽힌다. 김 위원은 지난 10월 21일 헌재의 통진당 해산 심판 16차 변론에서 정부 측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이상규 의원 등 통진당 주요 인사들이 (북한식 사회주의와 폭력혁명을 추종했던) 민혁당 당원이거나 산하 조직원이었다”고 증언했다. 이어 “1991년 밀입북해서 받은 40만 달러 등으로 95년 지방선거에 출마한 이상규·김미희 의원에게 500만원씩 지원해줬다”며 “통진당은 폭력혁명과 종북노선을 추구하는 정당”이라고 증언했다.

[통진당 해산 이후] 헌재서 결정적 증언한 옛 ‘주사파 대부’ 김영환

그의 증언은 통진당의 종북 성향과 위헌성 여부 판단의 핵심 요소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대 82학번(법학)인 김 위원은 당시 민족해방(NL) 계열 운동권의 핵심으로 활동하며 ‘강철서신’이란 글을 통해 주체사상을 처음 소개했다. 이어 92년 이석기 전 의원 등과 함께 북한식 수령론과 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하는 민혁당을 만들었다가 99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그 뒤 전향해 북한인권운동가로 활동해 왔다. 중앙SUNDAY는 19일 김 위원에게 통진당 해산의 의미와 진보 정치의 전망을 들어봤다.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통진당 해산에 항의하는 집회를 마친 사회단체 회원들이 모의 상여와 만장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뉴시스]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을 어떻게 보나.
“8대 1이란 압도적 결과로 해산 결정이 내려졌고 의원직도 비례는 물론 지역구까지 박탈했다. 이처럼 확실하고 깔끔하게 처리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 종북세력의 본질은 ‘수구’란 점에서 통진당 해산은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재판관 9명 중 8명이 해산에 동의한 배경은 뭐라고 보나.
“처음엔 해산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생각을 가진 재판관들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통진당 핵심 간부 대부분이 종북성향임이 점점 분명해졌다. 이 때문에 이견이 있었던 재판관들도 마음이 돌아선 것 같다.”

-원래는 통진당에 대해 “사법적 판단 대신 정치투쟁으로 없애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었다. 어차피 통진당은 고립되고 있는데 사법적 방식으로 해산시키면 지하로 스며들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판 과정을 지켜보니 지하조직이 만들어져도 제대로 활동할 만한 수준이 되긴 어려울 것이란 판단이 섰다. 극단적인 종북성향 탓에 국민으로부터 확실히 고립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정당은 사법적으로 해산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을 바꿨다.”

-통진당 세력이 조직을 끌어 모아 재창당을 하지 않을까.
“힘들 거다. 유사 정당을 만들 수는 없으니 통진당 핵심세력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을 대표로 내세워 당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일반 당원 가운데 이탈자가 급증해 재창당이 어려워질 것이다. 지하에서 조직을 유지하는 대안도 조직의 공신력이 없어진 데다 일반 당원의 이탈이 많아 힘들 것이다. 기존 정당에 들어가 당권을 노리는 방안도 있지만 이 또한 구심점이 없어 힘들 것이다.”

-핵심세력은 누구고 구심점은 누구인가.
“통진당은 한마디로 ‘혁명조직(RO)원’들로 불리는 130~160명이 핵심이고 이를 이끄는 이석기 전 의원이 구심점이다. 언론에서 얘기하는 경기동부연합이다. 이들이 통진당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전 의원은 투옥 중이라 구심점 역할을 하기 힘들다. 이정희 전 대표는 이들 핵심세력 외곽에 존재하는 수준이라 역시 구심점이 될 수 없다.”

-헌재가 해산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통진당이 얼마나 세력을 불릴 수 있었을까.
“어려웠을 것이다. 이미 국민은 북한의 정체와 통진당의 종북 성향을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통진당은 갈수록 고립돼 왔다. 따라서 헌재의 해산 결정이 없었더라도 영향력은 축소일로를 걸었을 거다.”

-헌재에 증인으로 출석해 통진당의 과거를 증언했는데.
“증언하기 전 법무부 측에서 ‘몇몇 재판관이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듯하다’고 전해줬다. 그런데 내가 증언대에 올라 ‘통진당 사람들의 공개발언이나 당내 교육 내용을 보면 사고방식이 15년 전 나와 함께 민혁당에서 활동하던 때와 전혀 바뀐 게 없어 보인다’고 말하니 재판관 상당수가 고개를 끄덕이더라.”

-통진당 해산에 이견을 가졌던 재판관들의 반응은 어땠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내 증언을 들으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증언이 끝나자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공격적인 질문은 없었다. 대체로 내 증언을 경청하며 우호적으로 질문했다. 내 증언을 듣고 통진당의 위헌성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통진당 해산 결정의 핵심 근거인 RO의 ‘혁명 음모’는 구체성이 결여돼 있지 않나.
“혁명 음모를 과장해서도 안 되지만 과소평가해도 안 된다. 구체성은 없지만 모의·실행할 가능성은 있다.”

-통진당이 존속했다면 우리 체제에 정말 위협이 됐을 거라고 보나.
“근본적인 위협은 되기 어렵겠지만 사회를 어느 정도 혼란에 빠뜨릴 수는 있다. 이를 테면 특정 지역에서 폭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면 나라를 뒤엎을 순 없지만 전국적 차원의 혼란은 야기될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012년 총선(당시는 민주당)에서 통진당과 연대했고 19일 헌재의 해산 결정에 대해서도 “정당의 자유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성명을 냈다.
“정당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폭력·종북세력을 무조건 수용할 순 없다. 새정치연합이 통진당과 연대한 것도 대단히 우려스럽다. 연대란 이념이나 정치적 공통점에 기초해야 한다. 그런데 통진당은 근본적으로 마르크스식 폭력혁명 노선을 지향하는 점에서 새정치연합과는 전혀 다르다.”

-통진당의 해산으로 종북세력이 아예 없어진다고는 볼 수 없지 않을까.
“아주 없어지진 않겠지만 과거처럼 세력을 확보하긴 불가능할 것이다.”

-통진당 핵심인 RO 조직원 중에서 전향자가 나올까.
“겁이 나서 공개적으로 전향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언행으로 볼 때 생각을 바꾼 듯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 비공식 전향자들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북한이 실패한 체제임은 공인된 사실이다. 그런데도 북한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뭔가.
“과거 진보 진영이 독재정권과 싸울 당시엔 북한에 대해 ‘사회주의 체제이니 진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인식이 환상이었음이 드러났는데도 사고의 관성 때문에 스스로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 마음 한구석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지만 그걸 애써 외면하면서 북한이 이상향이란 환상을 고집하는 거다.”

-진보 세력은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하나.
“진보 세력은 숫자가 적다 보니 선거 때마다 자신들보다 3~4배 많은 종북세력과 손잡으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종북세력의 본질은 수구이므로 이들과 손잡는 건 진보의 몰락을 가져올 뿐이다. 다소 힘이 들더라도 종북세력과는 분명히 선을 그은 뒤 서구식 사회민주주의나 조합주의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게 진보의 갈 길이다. 진보 세력이 살 유일한 길은 종북세력과의 명확한 결별이다.”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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