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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율 법칙’ 간과하면 탄탄한 조직도 졸지에 위기

‘땅콩 회황’으로 물의를 일으킨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지난 12일 국토교통부 항공사고조사위원회에 출두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같은 밭에서 난 농작물의 크기는 왜 서로 다를까. 무엇이 크기를 결정할까. 이를 처음 밝혀낸 이는 독일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von Liebig1803~73)다. 그는 농작물 생육이 과잉 영양분이 아니라 부족 영양분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양분·수분·온도·광선 같은 필수 인자 가운데 공급이 가장 적은 인자, 즉 ‘제한요인(limiting factor)’이 작물의 생육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최소 양분율(law of minimum nutrient)의 법칙’, 줄여서 ‘최소율의 법칙(law of minimum)’이라고 명명했다. 그의 이론은 ‘리비히의 물통’으로 쉽게 설명된다. 나무판자를 덧대 만든 물통 중 가장 높이가 낮은 판자가 물을 담는 양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땅콩’에 휘청대는 거대 항공사, 무엇이 문제였나

이 이론은 조직관리론에도 적용된다. 조직 전체의 위기는 조직 내 가장 약한 고리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강한 금속으로 만들어 연결해도 금속 사슬의 강도는 가장 약한 연결 부위보다 강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이 그룹 위기로 연결되면서 ‘최소율의 법칙’이 주목받고 있다. 익명을 원한 한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평소 3세들의 언행이 자주 구설에 오르내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한항공의 ‘제한요인’은 오너 구성원이었던 셈”이라며 “이번 사건을 두고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많은 것이 그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점유율이 높고 경영시스템이 잘 갖춰진 기업도 취약한 고리 하나로 쉽게 붕괴할 수 있다”며 “취약 부분을 일찍 발견하고 빠르게 보강하려면 고객 콜센터 같은 말단 부위 업무부터 기업 문화까지 상시 점검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글래드웰 “대한항공 소통 안 되는 조직”
‘땅콩 회항’ 논란은 경직된 커뮤니케이션 문화 탓에 더 커졌다. 대한항공의 소통 문화는 오래 전부터 지적받아 왔다. 맬컴 글래드웰은 자신의 책 『아웃라이어』에서 1997년 발생한 KAL기 괌 추락 원인을 소통 부재에서 찾았다. 비바람 부는 악천후에도 기장이 착륙을 강행했지만 부기장이 “노(No)”라고 직언하지 못해 대형 참사를 낳았다는 설명이다. 글래드웰은 위계질서와 권위를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나타내는 문화, 즉 권력간격지수(Power Distance Index)를 근거로 제시했다. 지수가 높을수록 권력이 불평등하게 배분돼 있다는 의미다. 그는 전 세계 조종사의 권력간격지수를 분석하니 한국이 2위로 나타났다고 했다. 위계를 강조하는 경직된 문화가 소통 부재를 낳고 사고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경직된 커뮤니케이션 문화는 위기 극복 과정에서도 걸림돌이 된다. 기업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늑장 사과, 일부 보직 유지, 사과 쪽지의 진정성 논란 등은 기업 위기 극복 사례의 고전(古典)인 존슨앤드존슨의 독극물 타이레놀 사건과 비교하면 선명하게 드러난다.

타이레놀, 선제 대응해 위기를 기회로
82년 한 정신병자가 타이레놀 캡슐에 청산가리를 넣었고, 이로 인해 8명이나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존슨앤드존슨 측에 과실이 없는 사안이었지만 회사 측은 창고에 있던 제품을 전량 폐기 처분했다. 시중에 나가 있는 3100만 병도 회수했다. 여기에 들인 비용이 1억 달러였다. 제임스 버크 회장이 즉각 나서 사과하고 신문과 옥외에는 “우리 제품을 절대 사지 마세요”라는 광고를 냈다. 그리고는 캡슐 제품을 알약으로 바꿨다. 이러한 조치가 이어지자 비난 여론은 고객 감동 사례로 바뀌었고 타이레놀은 세계 1위 제품으로 오히려 도약했다.

국내에서는 채선당 임산부 폭행 사건이 위기 극복 우수사례로 꼽힌다. 채선당 측은 진상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신속히 사과부터 했다. 홈페이지를 통해 피해자에게 사과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실시간 업데이트하면서 상황을 알렸다. 사과문에는 추가 불만사항을 얘기해 달라며 최고경영자(CEO)의 휴대전화번호까지 공개했다. 분노가 가라앉는 와중에 진상 조사 결과 채선당 측에 잘못이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고객 우선’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졌다.

항공사 서비스와 관련해서도 주목할 만한 사례가 있다. 미국에서 국내선을 운영하는 제트블루는 2시간 이상 출발이 지연된 고객에게 100달러 상당의 바우처를 제공할 수 있도록 탑승구 직원들에게 권한을 위임했다. 뿐만 아니라 5시간 이상 지연되면 티켓 값을 전액 환불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이러한 조치는 출발 지연이라는 민감한 문제를 직원과 고객이 갈등이나 고성 없이 해결할 수 있게 함으로써 기업 신뢰도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기업위기 대응 요령으로 대개 세 가지를 꼽는다. ▶위기의 심각성을 신속히, 정확히 파악할 것 ▶내부 논리가 아닌 고객의 눈으로 조치할 것 ▶거짓말하지 말 것이다. 기업 컨설팅업체인 휴먼솔루션그룹의 최철규 대표는 “사건 발생 초기에 정확하게 위기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면 비난 여론의 확대 재생산 트랙에 올라타게 되고 사태가 걷잡을 수 없어진다”고 말했다.

위기 대응 때 ‘투명성의 역설’ 주목해야
그는 “기업 위기는 여론이라는 ‘법정 밖의 법정’에서 재판된다는 점에서 내부 논리가 아닌 외부의 눈으로 내부를 들여다보는 지혜가 필요하고, 특히 솔직할 때 결과가 가장 좋았다는 ‘투명성의 역설’이 존재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덕자본 축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다. 평소 반듯한 기업이라는 인상을 심어줘야 문제가 발생했을 때 소비자들이 더 너그러운 잣대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기업의 이미지는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이라는 직접적 가치에 의해 크게 좌우됐지만 이제는 경영자의 스타일과 리더십, 조직 문화, 윤리성, 도덕성 등 무형의 가치가 중요해지고 차별화 포인트가 될 정도가 됐다”며 “기업의 바른 행동과 윤리적인 경영도 일종의 투자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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