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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소설 읽기] 데미안에 마음의 빚 느껴 마음의 벽 쌓는 싱클레어

『데미안』의 유명한 문장을 다시 읽는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그림은 살바도르 달리의 ‘신인류의 탄생을 지켜보는 아이’(1943).
인간은 왜 끊임없이 솔메이트를 찾는 것일까. 솔메이트는 천생연분과 다르다. 연인과 달리 솔메이트는 서로에게 열정과 집착이 아닌 우정에 가까운 형태로 다가간다. 굳이 만나지 않아도 항상 내 마음속에 은거하는 솔메이트. 비슷한 취향이나 관심사로 나를 끌어당기는 사람이 아니라 영혼의 동질성으로 말을 건네는 사람이다.

② 헤르만 헤세 『데미안』

솔메이트는 ‘쿵짝’이 잘 맞는 단짝친구라기보다 내 영혼을 자꾸 더 벼랑으로 몰아붙이는 존재, 자꾸만 더 무거운 화두를 던져주며 “너는 거기 계속 안주할 거니?”라고 질문하는 존재다. 부모의 보호 아래 모범적으로만 자라온 소년 싱클레어에게 데미안 또한 그런 존재였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왠지 두려운 존재, ‘나’를 알기 위해 반드시 넘어서야 할 존재이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더욱 가까이 가기 싫은 존재.

아직 알에서 깨어나지 못한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마음속에는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우리 자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해내는 누군가가 살고 있어.”

심리학자 융이라면 바로 그 ‘누군가’가 무의식임을 간파했을 것이다. 우리의 무의식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느끼는 자아보다 훨씬 똑똑하고 지혜로우며 감성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의 모든 측면이 한 인격 안에 공존한다. 선악은 물론 젊음과 늙음, 미와 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품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 안의 구루(guru), 내면의 스승이 있다. 그런데 그 내면의 스승을 불러 깨우는 존재가 바로 멘토이고 솔메이트이며, 때로는 심리학자가 그런 역할을 한다.

‘저항’은 진정한 자기 인식 피하려는 행동
싱클레어는 악동 크로머에게 돈을 뜯기고 협박당하면서 처음으로 어둡고 험한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크로머의 휘파람 소리만 들리면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갖다 바쳐야 하는 노예생활에 지친 나머지 점점 삶의 의욕을 잃는다. 데미안은 그런 싱클레어를 구해줌으로써 그의 인생에 노크한다. 데미안은 마치 내 귓가에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안녕, 난 너의 무의식이야. 낯설고 무섭고 귀찮겠지만, 그래도 난 너의 가장 좋은 친구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널 떠나도 난 네 곁에 남을 거거든.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동경하지만 자신이 데미안에게 ‘빚졌다’는 생각에 오히려 그를 멀리하게 된다. 데미안이 자신의 성장을 이끌어줄 솔메이트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회피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저항(resistance)’이라고 한다. 저항은 환자가 정신분석 중에 잠들어 버린다든지 조목조목 의사에게 따지는 행동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나타난다.

진정한 자기인식을 회피하려는 모든 방어적 노력이 ‘저항’으로 나타나는데,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자신의 모든 잠재적 충동을 꿰뚫어보고 있음을 느낀 후 의식적으로 데미안을 회피하게 된다. 저항은 환자와 의사가 모두 뛰어넘어야 할 자기인식의 강력한 방어벽이다. 싱클레어가 그 저항이라는 장애물을 극복하는 방법은 바로 ‘그림 그리기’다. 그가 데미안을 멀리하고 기숙학교에서 홀로 생활하는 동안 만난 두 번째 멘토가 바로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다.

데미안과 떨어져 지내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데미안이 제기한 수많은 화두에 매달리던 싱클레어가 어렵게 완성한 그림이 바로 저 찬란히 날아오르는 맹금류 아프락사스다. 싱클레어는 자신이 무엇을 그리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 무의식의 흐름을 따라 알에서 깨어나 날개를 펼치는 새를 그렸다. 데미안은 그 새의 이름이 아프락사스임을 알려준다. 완전무결하고 지고지순한 신이 아니라 가장 어두운 악의 세계와 가장 아름다운 선의 세계를 모두 합일시킨 전체성의 신 아프락사스. 피스토리우스는 아프락사스의 의미를 알려주고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으로 싱클레어를 훌쩍 성장하도록 돕기도 하지만, 드높은 이상을 꿈꾸면서도 안정된 삶의 유혹을 버리지 못하는 피스토리우스의 나약한 이중심리를 싱클레어는 꿰뚫어본다. 그리고 바로 그 피스토리우스의 나약함이 자신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임을 알게 된다. 피스토리우스에게 “이제 그 곰팡내 나는 잡소리는 집어치우고 진짜 당신의 내면에서 솟아나오는 이야기를 해보라!”고 요구하는 순간 싱클레어는 진정한 영혼의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무의식의 바다에서 제멋대로 유영하는 수많은 가능성의 물고기들을 의식의 낚싯대로 얼마나 강하게 끌어들일 수 있을까. 의식의 낚시 솜씨를 기준으로 영혼의 성숙도를 체크할 수 있다면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가까워질수록,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을 더 깊이 사랑할수록 자신의 무의식과 가까워지고 내면이 한층 성숙하게 된다.

피스토리우스는 퇴화된 날개를 지닌 채 닭이나 칠면조처럼 야생의 몸짓을 박탈당한 삶을 살지만 진심으로 싱클레어가 창공을 박차며 날아오르기를 바란다. 피스토리우스는 화려한 날개를 지녔지만 끝내 제 힘으로 날아오르지 못하는 아름다운 공작새 같은 존재다. 데미안은 독수리의 날개와 매의 눈초리를 한 불사조다. 싱클레어는 아직 알에서 깨어나지 못한 어린 새였지만 피스토리우스와의 만남을 거쳐 데미안과 다시 가까워짐으로써 언젠가 진정한 아프락사스처럼 찬란하게 비상할 것이다.

‘의식’의 끝없는 투쟁 겪어야 두 번째 탄생
영웅의 마지막 변신, 그것은 스승과의 완전한 결별을 통해 완성된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 전장의 용사로 변신한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다시 만난 것은 차가운 병상 위에서였다. 데미안은 마지막 길을 떠나며 싱클레어에게 속삭인다. 이제 내가 곁에 없더라도 내가 필요할 땐 날 부르지 말고 네 안에서 날 찾으라고.

항상 저 멀리서 반짝이는 별이었던 데미안이 세상을 떠남으로써 싱클레어는 완전히 자기 안에 데미안을 갖게, 아니 스스로 데미안으로 변신하게 된다.

이제 힘들 때마다 데미안을 부를 필요가 없다. 조용히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면 된다. 싱클레어는 외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대신 끝없이 자기 내면의 부름에 응답함으로써 피스토리우스에 저항하고, 아프락사스를 꿈꾸고, 에바 부인을 순수하게 사랑함으로써 마침내 데미안에 가 닿았다. 그의 내면 안에 데미안이 자리 잡게 되는 과정은, 이제 더 이상 데미안을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그와 함께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멈출 수 없는 내면의 투쟁이자 의식이 무의식을 향해 자신의 완성을 부르짖는 초월의 몸짓이었다.

1차 대전의 포화가 데미안의 육신을 삼켜버렸지만, 우리의 영혼 또한 세파에 시달리며 부침(浮沈)을 계속하겠지만 우리 각자가 자기 안의 데미안, 내 안의 에바 부인을 찾는 몸짓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저마다의 무의식과 진정으로 조우하기 위해서는 피스토리우스의 해박함과 총명함을 넘어 데미안의 불굴의 용기와 에바 부인의 거침없는 자유를 몸 속에 지녀야 한다.

데미안은 목숨을 걸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었으며,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의 어린 나이와 미숙함에도 개의치 않고 그를 진정한 솔메이트로 인정해 주었다. 데미안의 용기와 에바 부인의 자유, 그리고 싱클레어의 순수함이 환상의 트리오를 이룰 때 우리 안의 피스토리우스, 아집과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차 소시민적 안정을 버리지 못하는 연약한 에고가 마침내 자유를 향한 비상의 날갯짓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두 번 태어난다. 첫 번째는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두 번째는 자신의 무의식이라는 내면의 자궁 안에서. 두 번째 탄생은 오직 ‘의식’의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서만 이루어낼 수 있다. 마침내 어머니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이 또 다른 나를 새로이 잉태하는 그날까지. 의식의 단단한 껍질을 깨고, 무의식의 희망, 아프락사스가 아름다운 날개를 펼치며 비상하는 그날까지.


정여울 문학 평론가 suburb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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