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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연중 소장의 생활 속 발명 이야기 <7> 양말과 스타킹

일러스트=김민재
최초 양말은 마른 풀이나 머리털·양털로 대용 양말은 맨발에 신도록 실이나 섬유를 짠 물건을 말하며 영어의 호스(hose), 프랑스어의 바(bas)에 해당한다. 크게는 무릎까지 오는 짧은 양말인 삭스(socks)와 넓적다리까지 오는 긴 양말인 스타킹(stocking)의 두 종류로 나뉜다. 어느 것이든 한쪽 다리씩 갈라져 있는 것이 원칙이며, 허리 부분에서 하나로 된 타이츠와 구별된다. 때로는 호스가 스타킹을 나타낼 때 사용되기도 한다.



1589년 양말 편제기 나올 때까지
양말은 상류층이 주로 신었죠

인류 최초의 양말은 마른 풀이나 머리털 또는 양털을 신발 속에 넣어 신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양말은 4세기의 것으로 보이는 아라비아에서 발견된 적색 수편(실 또는 끈을 손으로 뜨는 수예 및 그 제품) 샌들양말이며,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엘버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영국 레스터시립박물관에는 5세기경의 것으로 생각되는 두 개의 어린이용 양말이 있는데, 이는 이집트의 안티노에서 발견된 것이다.



7세기 중엽 아라비아인이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편물기술이 전해졌으며, 8세기 이베리아 반도에도 전파됐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한 11∼13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무늬 넣은 무명실의 정교한 수편 양말이 그것을 말해준다. 당시 수편 양말은 일부 상류층만의 사치품이었다. 특히 비단 양말은 왕실문화 덕분에 꽃을 피웠으며,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이후 15~16세기에 걸쳐 유럽에서 여자들은 가내부업으로 수편 양말을 만들었다.



프랑스에서 1527년 처음으로 편물양말조합이 설립됐고 1570∼80년대에는 일반인도 양말을 신었다. 1589년 영국의 목사인 윌리엄 리가 발로 밟아서 뜨는 양말 편제기를 처음 발명했다. 그는 조잡한 모직 양말을 만들어내던 첫 번째 발명품을 개량해 섬세한 조직의 실크 양말을 제작하는 기계도 발명했다. 1656년에는 런던에 양말편제업자조합이 만들어지며, 17세기 말 영국은 유럽 제일의 양말 산업국으로 발전한다. 그후 산업혁명을 통해 편물기계가 개량되며 영국과 프랑스에 편물공업이 성행하게 되었다. 양말 산업이 자동식 메리야스 산업으로 이행하게 된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의 일이다. 메리야스 산업은 양말 산업과 맥을 같이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버선을 신었는데, 이를 한자로 말(襪)이라 불렀다. 개화기 이후 삭스가 들어오면서 서양에서 온 버선이란 뜻에서 양말(洋襪)이라 부르게 됐다. 요즈음 입는 내의의 보통명사처럼 쓰는 메리야스 또한 개화기 때 양말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고승제 박사가 지은 『한국경영사연구(韓國經營史硏究)』에 따르면, 1906년 포목 상인 김기호가 일본에서 수입한 양말 기계를 설치해 차린 것이 첫 메리야스 공장이라고 한다.



남성들이 다리 보호하려 발명한 스타킹 오늘날 스타킹은 주로 여성들이 치마나 반바지를 입을 때 패션이나 미적 감각을 목적으로 신는다. 본래는 남성들이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 발명했던 가죽덮개에서 유래했다. 그러던 것이 7세기 무렵 프랑스에서 다리 보온을 겸하는 양말로 변하며 현재 스타킹의 기원이 됐다.



원형은 중세에서 근세에 걸쳐 남성 의복에서 중요한 위치였던 하의인 호스(hose, 프랑스어의 쇼스·chausses)였다. 당초는 무릎까지 오는 길이의 양말이었는데, 14세기경부터 점차 위로 올라가 양말 겸 바지로 착용하다가 15세기에는 허리까지 올라갔다. 16세기에는 윗부분이 넓어지면서 따로 분리되어 트렁크 호스(trunk hose)가 출현하고, 아랫부분을 스타킹(stocking of hose)이라고 불렀다. 스타킹은 다리와 발에 꼭 맞게 싸맨다는 뜻이다.



윌리엄 리가 발명한 양말 편제기로 편물 스타킹이 상류층 여성 사이에도 애용되었고, 17세기 말 비단 대신 면사와 모사로 짠 제품이 양산되기 시작하며 급속히 보급되었으나 소재의 한계로 대중화에는 미치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까지도 비단 양말이 최상이었던 것. 스타킹이 여성 전용으로 바뀌게 된 것은 1830년대 이후 남성들이 긴 바지를 입게 되면서부터다. 이후 남성용 스타킹은 운동용에 머물게 된다.



스타킹의 대중화는 1939년 미국의 듀폰사가 ‘나일론’을 발명하면서 열렸다. 1940년 처음 등장한 질기고 강한 나일론 스타킹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일 정도로 뭇 여성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1959년 대중에 첫 선을 보인 팬티스타킹은 1960년대에 생산방식이 개선되며 가격이 저렴해지고, 탄력성이 향상돼 착용 또한 편리하게 되었다. 또한 미니스커트의 등장으로 스타킹 착용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스타킹이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것은 1957년 6월 세워진 남영염직(현재의 남영비비안, 속옷 브랜드 비비안으로 유명)이 내놓은 봉조스타킹이며, 1963년 4월에는 국내 최초로 팬티스타킹을 생산한다. 그 후 1965년 유영산업이 반달표 스타킹을, 화창산업이 화창 레스를 생산하면서 스타킹의 유행을 예고했다. 생산 초기에는 값도 비싸고 소비자도 적었으나 1960년대 중반 미니스커트가 크게 유행하고 경제수준이 향상되면서 스타킹 전성시대를 열게 됐다.



왕연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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