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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8) 제79화 제79화 육사졸업생들(51) 장창국

46년1월 각도에 1개 연대씩(처음엔 1개중대편성) 8개연대로 출발한 경비대는 49년6월까지 8개사단으로 발전했다. 볼과 3년5개윌동안 병력면에서 거의 20배의 성장을 한것이다.
46년 8월12일 제주도가 전남에서 분리, 도로 승격함에 따라 그해 11윌16일 모슬포에 제9연대가 창설됐고(내가 초대연대장으로 사관학교에서 옮켜 창설작업을 했다) 48년 정부수립후 제10∼20연대의 11개연대가, 49년엔 제21∼24의 4개연대가 속속 증설됐다.
통위부는 통솔상 47년12월 3개연대씩을 묶어 5개여단을 편성했다. 연대 증설에 따라 49년5월 여단을 사단으로 승격, 재편해 국군은 8개경장비사단으로 6·25를 맞는다.
2기생들은 임관후 이같은 건군각업에 군영·l기출신 선배들과 함께 큰 몫을 했다. 군의 성장만큼 진급도 빨랐다.
6·25가 났을때 2기생들은 소령·중령에 진급, 대대장이나 연대·사단참모등으로 활약했다. 전쟁후반에는 거의가 대령에 진급, 연대장등으로 무공을 세웠다. 사선을 넘나드는 역전을 치르며 희생도 컸다.
34명이 전사하고 6명이 실종됐다. 너나 없이 나라를 지키기에 한몫을 해낸 ,2기생들이지만 그중에도 일선전투에서 무공이 두드러졌던 사람은 김희준·한신·장춘권·송석하·석주암· 윤춘근·공국진·손희선장군등이다.
김희준중령온 개전초 수도사만 17연대장으로 50년7월18일 충북 보은의 화령장 전투에서 박성철이 지휘하는 북괴군제15사단의 1개연대를 골짜기에 몰아넣고 기습, 거의 전멸시키는 전공을 세웠다. 북괴의 기습에 서울을 뺏기고 후퇴를 거듭하던 국군이 임부택의 7연대가 그 며칠앞서 충북음성 무극리에서 대승을 거둔 이래 두번째의 승리였다.
김중령은 이튿날도 박성철의 본진후속부대를 매복작전으로 요격, 궤멸적인 타격을 입혔다. 전리품만 6트럭이나 됐다. 이 패전으로 북괴15사단은 해체됐고 박성철은 인책, 해임당했다고 한다.
17연대는 전부대원이 1계급 특진했으며 김중령은 2기생중 가장 먼저 대령에 진급했다.
손희선대령도 9사단30연대장으로 전쟁후반 인제지구 전투서 특공작전으로 적의 고지를 빼앗아 부대원이 1개급 특진하는 무공을 기록했다.
개전초 7사단9연대장으로 포천방면에서 싸왔고 한강방어전투등에서 애쓴 윤춘근중령, 수도사단 18연대2대대장으로 동두천에서 싸우다 한강방어전에 참가한 장춘권소령등은 나중에 안강·기계등 전투에서도 공을 세웠다.
한신중령은 3사단1연대장으로 경주사수전투에서 공을 세웠는데 『공격은 18연대, 방어는 1연대』라는 말이 나돌만큼 침착하게 부대를 잘 지휘했다. 침식을 잊을 만큼 열심히 전투를해 나중엔 건강을 해칠 정도였다.
만군출신의 석주암대령은 1사단참모장으로 평양입성전투에서 최전방까지 나가 전투지휘를 하다 지뢰가 터지는 바람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기도했다.
공국진중령은 3사단·1군단작전참모로 전쟁 후반 대관령∼강릉방어전투서 활약했다. 동기생인 수도사단 26연대장 서정철중령도 이 대관령방어전무에서 공을 세웠다.
공병으로가 6·25당시 공병학교장이었던 엄홍섭중령은 6월28일새벽 한강인도교 폭파를 지휘한 장본인. 공병감 최창식대령의 지시를 받아 폭파작업을 했었다.
이같은 2기생들의 활약과는 대조적으로 국군을 이탈, 적에 가담하는등 반국가적 행위를 한 사람도 없지않다.
대표적인 예가 6·25가 나기 l년쯤전인 49년5월4일과 5일 각각1개 대대를 이끌고 월북한 표무원소령(8연대 1대대장)과 강태무소령(8연대2대대장)이다. 일군하사관출신으로 대구가 고향인 표는 6연대참설에 사병1기로 입교했다. 사관학교 2기로 들어와 졸업후 춘천의 8연대에 소대장으로 배치됐었다. 6연대에서 좌익조직책이었던 연대장 최남근중령(만군·군영출신)의감화를 받고 좌익에 빠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태무는 경남 고성이 고향으로 동경립교대 예과를 나와 학병으로 갔다가 사관학교2기로 들어왔었다. 6연대장에서 8연대장으로 옮겨온 최남근중령에게 포섭돼 좌익에 가담했다. 정부수립후 숙군작업에서 최중령이 처단되고 그들의 정체가 드러날 위기에 놓이자 부대를 이끌고 월북한것이다. 군으로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초대경비대사령관을 역임한 송호성준장은 6·25때 서울에 남아 북괴에 넘어갔다. 북괴군의 소장계급을 받고 평양 사동의 포로수용소에서 강·표등과 함께 국군포로의 관리·전함교육임무를 맡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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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