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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6) 제79화 제79화 육사졸업생들(49) 장창국

2기생은 1기생이 졸업한뒤 1백일만인 9월24일 입교, 80일간의 교육을 받고 12월14일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했다.
l기생과 사이에 석달여의 간격이 있었던 것은 그동안 두차례에 걸쳐 군사영어학교 출신 위관장교 재식훈련 재교육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새 학교에도 변화가 있었다. 교장이 바뀌었다. 9월6일 이형근장군의 후임으로 원용덕 참령(소령)이 2대 교장으로 부임했다.
2기생은 각연대의 우수사병과 민간인을 대상으로 처음으로 공개모집했다.
전국의 8개연대와 군사경력을 가진 민간인등 5백여명이 추천을 받아 지원했다. 국사·수학·염어등 필기고사와 면접·신체검사를 거쳐 2백63명이 최종 선발됐다. 약2대1의 경쟁이었던 셈이다.
출신배경을 보면 광복군·중국군·만주군·일본군등의 장교가 30여명, 하사관이 60여명이었고 나머지는 민간출신이었다. 중국 천진에서 46년6월에야 귀국선을 탈수있었던 박정희(만군중위) 전대통령과 만주에서 우여극절 끝에 46년3윌 역시 뒤늦게 귀국한 석주암(만군대위)·송석하(만군대위)·이규간(만군경리관)·윤태일(만군 중위)장군등이 무리지어 입교했다. 그중 윤태일장군은 입교 얼마후 신병으로 퇴교, 나중 7기로 재입교해 2기 아닌 7기가 됐다.
일군경력자론 학병출신의 한신·이규학·서정철·김희덕등과 지원병촐출의 문형태·신재직·이상국·김재명·공국진등이 대거 입교했다.
중국군·광복군출신으로는 초대경비대사령관 송호성장군(준장)이 있다. 송장군은 2기생이 입교한 며칠뒤 뒤늦게 특별편입했다. 20여년을 중국에서 생활하며 중국군·광복군지대장으로 활약한것으로 알려진 송장군은 그때 50이 넘은 노인. 그의 특별입교는 통위부장유동열장군(일륙사15기·임정군사부장)의 지시로 안다. 그런데 미군고문관측에선 예외는 인정할 수 없다며 송장군에게도 일단 시험을 보이도록 요구했다. 정식학교 교육을 받지못한 송장군은 한글로 답안지를 쓸수가 없었다. 내가 대신 작문을 해 제출하고 입학을 시켰다.
송장군은 교육기간중에드 대개 훈련장에 나오지 않고 내무반에 남아 『다녀들오게. 나는 청소나 해놓을테니…』하기가 일쑤였는데 교관이나 동료후보생들은 나이대접을 해 눈감아주곤 했다. 유독 교관중에 성미가 깐깐한 이치업부위(중위)만이 수시로 『송후보생 안나왔나』 하고 챙기고 마주치면 『송후보생은 걸음걸이가 그게 뭐야』하고 교관노릇을 흑독히했다.
입교한달쯤 지났을때 송후보생은 밖에 나갔다 오더니 창령(소령)계급장을 달고 돌아왔다. 특별임관을 한것이다. 비리 3연대장으로 갔다 얼마후 조선경비대 사령관으로 정식 임명됐다. 사관학교입교는 사령관기용을 위한 유통위부장의 배려였던 것이다.
송후보생을 괴롭혔던(?) 이치업교관은 이듬해 장가들며 결혼식주례를 송장군에게 부탁했다.
이처럼 모이다 보니 2기생들은 나이차가 많았다. 50을 넘은 송장군은 특별한 경우이지만 2기로 임관한 후보생중 최연장은 전 대한노인회장인 이규동준장(경리감)으로 당시 35세(올해71세)였다. 이효(준장·경리감) 석주암(소장·사단장) 장군등 만군출신들이 대체로 나이가 많았다. 고박대통령도 당시 29세로 나이가 많은 축이었다.
최연소자는 대령으로 예편한 주격 후보생으로 이북에서 월남한 주후보생은 20세이상 연령제한에 미달하는18세였으나 나이를 속이고 들어와 졸업, 임관했다.
18세부터35세까지(평균23∼24세)나이차가 있었음에도 2기생들은 오늘까지 동기의 유대로 친구처럼 지낸다.
2기생의 교육은 1기의 45일에 비해 두배 가까운 12주(80일)였고 1기졸업후 교관요원도 많이 보강돼 보다 충실한 교육을 할수 있었으나 내용에는 1기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제식훈련, 99식·38식 일소총훈련, 분대·소대전술, 독도법과 행군, 숙영훈련등이다.
1기생때 나혼자 담당했던 교육은 군영출신 김형일·최창언참위(소위)와 l기생 박근서참위가 교관으로 배치돼 한결 짜임새 있게 진행할 수 있었다. 내가 교수부장을 맡고 이치업부위 (군영출신)가 생도대장이었으며 A중대장에 조병건(일육사60기·군영출신), B중대장에 오일균(군영출신) 참위였다.
2기생교육때 특히 기억에 남는것은 그해 전국적으로 가뭄이 들어 급식이 나빴던 일이다. 쌀·보리를 구하기 어려워 강냉이밥이 나오기도 했으며 고구마 몇개로 하루 세끼를 대신하기도 했다. 피복지급도 잘 안돼 12월14일 졸업식 때는 여름옷을 속에 끼어입고 식전에 나가기도했다. 지금도 2기생들은 그때의 고생을 즐거운 화제로 삼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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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