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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블화 '레드 먼데이'… 푸틴, 금리 17%로 인상 극약 처방

러시아에 ‘붉은 월요일(Red Monday)’의 충격이 몰아쳤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모스크바와 영국 런던 외환시장에서 루블화 값이 폭락해서다. 미국 달러와 견줘 9.3% 정도 추락했다. 이날 러시아 에너지 기업과 해외 헤지펀드 등이 루블화를 투매했다. 그 바람에 1달러를 주면 64.24루블 정도를 살 수 있게 됐다. 1998년 러시아가 채무상환 연기(모라토리엄)를 선언할 때와 비슷한 풍경이었다.



사우디와 미국 갈등에 원유값 추락
러, 서방 제재 겹쳐 달러 이탈 사태
"외환보유액 많아 당장은 방어 가능"
취약한 산유국으로 위기 번질 우려
"베네수엘라, 내년 디폴트 확률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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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크바의 충격을 ‘붉은 월요일’이라고 묘사한 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다. 보통 서방 언론은 주가나 통화가치가 추락한 요일 앞엔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Black)’을 붙였다. 그걸 러시아에는 틀어서 적용했다. 옛 사회주의 색깔이면서 피를 상징하는 ‘Red’를 붙여 위기의 서막을 전했다.



 러시아의 충격은 원유전쟁의 후폭풍이었다. 지난달 27일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 석유회사들을 향해 선전포고했다. 원유 생산을 줄이지 않기로 했다. 원가를 낮게 원유를 뽑아내는 쪽이 승자가 되는 전쟁이 시작됐다. 이후 원유 값은 25% 추락했다. 유가 추락은 서방의 경제제재와 맞물려 러시아를 옥죄었다. 결국 지난 15일 사달이 났다.



 블라디미르 푸틴(62) 대통령은 러시아 중앙은행을 통해 극약 처방을 썼다. 기준금리를 10.5%에서 17%로 6.5%포인트(650bp) 끌어올렸다. 빠져나가는 달러와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서다. 기현상이 벌어졌다. 러시아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7%대인데 기준금리가 두 배 이상 높아졌다. 톰슨로이터와 블룸버그통신은 “푸틴이 최후의 궁지에 몰려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고 있는 모양새”라고 평했다.



 푸틴은 마지막 무기고 문도 개방했다. 외환보유액을 외환시장에 투입하기로 했다. 외환보유액은 이달 5일 현재 4162억 달러(약 457조원) 남아 있다. 하지만 효과는 뚜렷하지 않았다. 하루 뒤인 16일 루블화 값은 장 초반 오르다 다시 떨어졌다. 푸틴의 진압 작전은 사실상 실패했다.



 블룸버그는 “원유 가격이 눈에 띄게 오르지 않는 한 루블화 추락은 멈추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라고 전했다.



 관심은 러시아가 98년과 같은 외환위기를 맞을까에 모아진다. 아직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FT는 “외환보유액이 적지 않아 푸틴이 상당 기간 방어전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전했다. 러시아의 경상수지도 나쁘지 않다. 지난달 100억 달러가 넘는 흑자였다.



 대신 블룸버그는 “그때와는 다른 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외환이나 외채 위기가 아닌 실물경제 위기다. 러 재무부는 “원유 가격이 배럴당 60달러 이하에서 오래가면 내년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 4.5% 정도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예측엔 고금리 정책 후유증은 포함돼 있지 않다. 루블화 추락이 이어져 고금리 처방을 지속하면 극심한 침체와 실업 사태는 피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을 예상한 듯 푸틴은 요즘 경제적 고난의 행군을 되풀이해 말하고 있다. 러시아 민족 특유의 위기 속 애국심과 인내심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옛 소련 리더인 이오시프 스탈린이 독일의 기습 직후 써먹은 전술을 떠올리게 했다.



 서방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러시아 국민의 애국심과 인내심엔 한계가 있을 것이란 쪽이다. 이날 AP통신은 “푸틴이 인내심 고갈에 앞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서방과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결과적으로 푸틴이 경제위기 앞에 고개를 숙일 것이란 시나리오다.



 푸틴이 두 손 들기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 사이 원유전쟁이 이어진다면 러시아의 핏빛 월요일 공포는 다른 산유국으로 퍼질 수 있다. 다음 타깃은 중남미의 베네수엘라다. 블룸버그는 이날 신용분석회사의 자료를 인용해 “베네수엘라가 12개월 안에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할 확률은 97%”라고 보도했다. 2년 안에 갚아야 할 빚이 210억 달러인데 외환보유액은 210억 달러(지난달 말) 정도다. 베네수엘라가 부도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기름값이 적어도 배럴당 121달러는 돼야 하지만 원유전쟁 와중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위기가 베네수엘라에서 증폭돼 다른 곳으로 전염될 수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와 브라질 헤알화 등의 가치도 가파르게 떨어졌다. 이들 나라는 대부분 원유전쟁과 원자재 가격 하락에 노출돼 있다. <관계기사 B4면>



 전설적인 증권 분석가인 고(故) 벤저민 그레이엄이 말한 ‘원자재의 저주’다. 그는 『현명한 투자자』에서 “자원 보유가 그 나라의 채권 안정성을 보증하진 못한다”며 “원자재 수출국은 자원 가격이 떨어지는 저주를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실제 자원 부국들은 사우디 등 소수의 산유국을 빼곤 10~15년 주기로 위기를 맞았다. 글로벌 경제가 위축돼 자원 수요가 줄면서 ‘원자재 수퍼 사이클(대세 상승)’이 끝나면 겪는 뒤풀이 격이었다.



 핏빛 월요일이 90년대처럼 신흥국 위기로 이어질 확률은 반반이다. 블룸버그는 신흥국의 오늘과 90년대 상황을 비교했다. 유가 하락과 미국의 긴축, 신흥국 통화가치 하락 등은 같은 점이다. 반면에 신흥국이 두터운 방패(외환보유액)와 유연한 시스템(변동환율제)을 갖추고 있는 점이 90년대와 다르다.



 신흥국들의 99년 당시 외환보유액은 6590억 달러 정도였다. 지금은 8조1000억 달러나 된다. 15년 새 12배 이상 불어났다. 또 요즘 신흥국 대부분은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다. 태국이 96년 페그제(고정환율제)를 유지하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탕진했던 일이 요즘 되풀이될 가능성은 작다.



 신흥국이 90년대식 외환위기를 겪지 않는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스티브 로치 예일대 교수는 최근 칼럼에서 “신흥국은 2000년 이후 세계 경제의 신형 성장 엔진이었다. 원유가격 하락으로 이 엔진이 힘을 잃으면 세계 경제의 성장은 더 둔화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원유전쟁이 글로벌 실물경제에 입힐 내상이 깊을 것이란 얘기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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