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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여 기업과 '산학융합' … 학생들 제품개발 전 과정 참여

11일 한국산업기술대 연구소에서 이재훈 총장(가운데)이 홍성수 교수(왼쪽)와 조은경 (주)오트 연구원과 함께 의료기기 디자인을 보며 웃고 있다. [김경빈 기자]


11일 오후 3시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한국산업기술대(산기대) 본관 3층. 외부 일정을 마치고 집무실에 돌아온 이재훈(59) 총장이 외투를 벗으며 인사를 건넸다. “지금 막 가족들과 회의하고 오는 길입니다.” 가쁜 숨을 골라내던 이 총장이 말을 이었다. “저희 학교엔 자매결연을 맺고 산학협동을 하는 4000여 개의 기업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가족회사라고 부르죠.” 시화(시흥)·반월(안산) 공단의 한 복판에 위치한 산기대는 인근에 1만7000여개의 중소기업이 있다. 차로 10분 거리엔 남동공단(인천)과 송도 국제도시가 인접해 있어 이 지역은 국내 산업기술의 메카로 불린다.

[대학의 길, 총장이 답하다] 이재훈 한국산업기술대 총장



 산기대는 5년 연속 수도권 취업률 1위(졸업생 1000~2000명 대학)에 오른 ‘작지만 강한’ 대학이다. 본지 ‘교육중심대학’ 평가에서 올해 네 계단 뛰어오르며 종합 3위를 차지했다. 국가·지역기여도와 발전가능성 부문에선 1위에 올랐다. 이 총장은 “산업과 밀접한 살아있는 교육과 연구를 하는 것이 산기대의 강점”이라며 “산업의 중추가 되는 히든 챔피언들을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구체적 추진 방안으로 ‘산학융합 3.0’을 제시한 그는 “대학과 기업이 기술연구부터 제품 개발까지 전 과정을 함께 추진하는 새로운 산학협력 모델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작지만 강한 중소기업 히든 챔피언 육성



 - 기존의 ‘산합협력’과 ‘산학융합’이 다른 점은.



 “지금까지의 산학협력은 특정 과제를 중심으로 대학과 기업이 3~4개월 정도 함께 기술을 개발하고 성과를 내면 끝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단기 과제 중심이어서 꾸준한 연구 성과를 내기 어려웠다. 반면 ‘산학융합’은 애초에 대학과 기업이 하나가 되는 거다. 연구 개발부터 상품화까지 전 과정을 함께한다. 첫째는 기업과 대학이 가치를 공유하고 둘째는 인재를 융합, 셋째는 공간을 통합하는 거다.”



 - 기업과 대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융합할 수 있나.



 “공단엔 1만7000여 개 중소기업이 있는데 이중 자체 연구소를 가진 곳은 8.3% 밖에 안 된다. 이곳 기업은 연구하고 싶어도 공간과 인력이 없어 못한다. 이 중 우수한 기업을 선정해 학교 안에 연구소가 들어와 있다. 특히 60개의 엔지니어링 하우스(Engineering House,EH)는 기업 연구원과 교수, 학생이 하나가 돼 기술개발을 한다. 산기대만의 독특한 산학융합 시스템이다.”



 - 모든 학과가 EH 방식으로 운영되나.



 “교내에 있는 13개의 모든 학과가 EH에 지원할 수 있다. 매년 심사해 EH에 들어갈 프로젝트를 선정한다. 잘하는 곳은 몇 년씩 한다. 모든 학생들은 EH를 한 학기 이상 거치게 된다. 교수는 산업에 필요한 연구를 진행하고 학생은 현장에서 쓸 수 있는 지식을 배운다. 기업은 대학과의 시너지를 통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1석3조의 교육·연구 방식이다.”



 - 현장 중심 교육·연구를 한다면 교수 임용기준이나 평가항목이 다른 대학과 달라야 할 것 같다.



 “교수들에게 늘 하는 말은 ‘본인이 아는 것 말고 현장에서 필요한 것 가르치라’는 것이다. 낡은 강의노트로 강단에 서는 것은 산기대에선 불가능하다. 6개월마다 바뀌는 기술 트렌드를 접목시켜 강의할 수 있어야 한다. 7년 이상 현장 경험이 있어야만 교수로 임용될 수 있고 성과 평가에도 실무 중심의 기술 교육을 중요시한다.”



 이 총장이 ‘산학융합’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산업자원부 산업정책본부장 시절이던 2006년부터다. 당시 그는 교육부와 함께 공대교육 혁신안을 마련했고 이때부터 범정부 차원의 산학협력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유럽 경제에 위기가 오고 있었지만 독일만은 거뜬했습니다. 그 비결은 탄탄한 제조업이었죠. 히든 챔피언을 만드는 것이 우리 산업의 살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총장은 당시 공대교육 혁신안 마련 때도 산기대를 롤모델로 생각했다고 한다.





실무 우선 … 현장경험 있어야 교수 임용



 - 관료로 있을 때와 달리 직접 대학에 와서 본 현실은 어땠나.



 “더욱 힘들어 보였다. 시화·반월 공단의 기업 중 70%가 임대공장을 쓰고 있다. 분양 받아서 공장을 운영하던 기업이 못 견디고 빠져나간 것이다.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기계 산업의 2, 3차 밴드업체들인데 우리 산업의 허리가 와해되는 느낌이었다. 중소기업에선 인재가 없다고 아우성이고 독자 기술을 개발할 여건도 안 된다. 그런데 대학에선 취업할 곳이 없다고 한다. 이런 미스매치를 줄이는 것이 우리 경제의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





5년 연속 수도권 대학 취업률 1위 올라



 - 그 해법이 히든 챔피언이 될 만한 중소기업을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렇다. 언제까지 삼성전자와 현대차만 바라보고 있을 것인가. 독일 처럼 히든 챔피언이 많아져야 제조업이 탄탄해진다. 경쟁력 있는 부품·소재 기업을 키우고 대학이 인력·기술을 함께 지원하면 산업구조도 견고해지고 청년실업 문제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 청년들의 취업도 중요하지만 요즘은 창업을 통해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것도 중시된다.



 “제조·기술 인력만 양성해선 히든 챔피언을 만들 수 없다. 애플은 디자인과 아이디어만 있고 실제 완제품은 중국에서 만든다. 21세기는 아이디어 시대다. 내년부터 신입생들은 이매지네이션 하우스에서 창업 프로그램을 한 학기 이상 이수해야 한다. 비즈니스 모델 구상부터 제품화 과정까지 창업의 전반을 실무를 통해 배운다 .”



 - 서울대를 포함해 요즘엔 많은 대학들이 산학협력을 강조한다.



 “대학이 가진 기술과 인적 자원을 기업과 공유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처럼 현장의 히든 챔피언을 육성하는 대학이 있다면 노벨상에 준할만한 기초 연구 업적을 쌓는 대학도 있어야 한다. 각자의 강점을 살려 서로 다른 방식의 산학융합을 해야 한다. 특히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라면 사립대와는 다른 역할이 필요하다.”



 - 9년 뒤엔 대학 입학정원이 16만 명 줄어든다. 모든 대학이 구조개혁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대학 스스로 변했더라면 지금처럼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됐을 거다. 그러나 일률적으로 대학을 평가해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가 될 수 있다. 각 대학이 처한 상황과 환경에 맞게 경쟁력의 ‘엣지’를 달리 해야 한다. 정부는 대학이 특성화를 통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만난사람=김남중 사회1부장

정리=윤석만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이재훈 총장=고향은 광주(1955년생).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1977년 21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국장, 산업정책본부장, 제2 차관 등을 역임했다. 산자부 차관보 시절인 2006년 노무현 대통령에게 직접 공대교육 혁신안을 보고했다. 이를 계기로 ‘산학협력만이 대학의 살 길’이라는 철학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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