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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대맛 라이벌] <37> 한정식

 



모임이 많은 연말입니다. 프렌치,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좋지만 우리 전통이 담긴 한정식집은 어떨까요. 이번에 소개할 두 집 모두 조선시대부터 이어온 메뉴를 선보이는 곳입니다. 한 곳은 500년 역사를 지닌 명문가 종택에 식문화를 더한 유서 깊은 곳이고, 다른 곳은 2호 궁중음식 기능보유자였던 어머니가 전수받은 솜씨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1·2위 어떻게 선정했나

江南通新은 레스토랑 가이드북 『다이어리알』 이윤화 대표와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배한철 총주방장, 롯데호텔 무궁화 천덕상 셰프, 더플라자 허성구 총주방장, 『주식9단 서울맛집 유랑』 저자 이영승씨 추천을 받아 5개 식당을 후보로 추렸습니다. 이후 후보 식당 5곳을 11월 26일자 江南通新에 공지하고 같은 날 강남통신 온라인(www.joongang.co.kr/gangnam)에 올려 일주일 동안 독자투표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필경재와 용수산이 각각 1,2위로 뽑혔습니다. 그러나 용수산 삼청점이 현재 내부 수리 중인 관계로 3위인 지화자를 소개합니다. 라이벌 <38> ‘주꾸미’ 결과는 12월 24일 발표합니다.



종갓집 500년 고택, 식당으로 바뀐 까닭



1. 15세기 조선 성종 때 세운 필경재는 서울에서 500년이 넘는 유일한 가옥이다.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사랑채가 연결돼 ㅁ자 형태를 이룬다. 2. 필경재 안에 전시된 조선 교지·교서 등 유물. 3. 2009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4. 귀빈 만찬장으로 주료 사용되는 이호당(별채).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외국 사람들은 한식이라고 하면 비빔밥·삼계탕·불고기가 전부인 줄 알아요. 그게 안타까웠어요. 내가 만약 필경재로 돈만 벌 생각이었다면 제대로 된 한식을 안 하고 고기를 팔았겠죠. 하지만 음식이란 건 그 나라 국격을 보여주는 거예요.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그렇게 하려면 투철한 사명감 없이는 안됩니다.”



 이병무(70) 필경재(必敬齋) 대표는 책임 얘기부터 했다. 이곳은 분명 식당인데 식당 주인이 ‘맛’ 대신 ‘책임’을 말하는 이유가 있다. 이 대표는 조선 광평대군(세종대왕 5남) 후손이자,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녹천 이유의 11대 종손이다. 필경재란 이름은 15세기 성종 때 정안부정공 이천수가 지으면서 ‘웃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자세를 지니고 살라’는 의미에서 붙인 옥호(屋號)다. 서울에서 500년이 넘은 유일한 가옥으로, 1987년 전통건조물 제1호로 지정됐다. 원래 99칸이었지만 대부분 유실되고 남은 안채와 사랑채를 94년 해체 복원했다.



 필경재 담장 뒤편에는 이유의 묘가, 필경재 바로 뒤 광수산 자락을 더 올라가면 광평대군 묘가 있다. 이 대표는 매일 아침 산에 올라 조상 묘를 돌본다고 한다. 이러니 조상 앞에 떳떳하기 위해서라도 늘 책임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인근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지만 필경재는 원래 이 대표 가족이 실제 살던 곳이다. 종택 필경재가 궁중요리 전문점으로 바뀐 건 1999년이다. 2000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정부가 요청을 했다고 한다. ‘종손에게 식당을 하라니…. ‘이 대표는 언짢은 마음에 거절했다. 그러나 “조상 대대로 국가에게 봉사하던 가문이니 앞으로도 나라를 위해 일해달라”는 정부 관계자 말에 마음을 돌렸다.



 “서울엔 사대문을 비롯해 훌륭한 문화재가 많지만 우리 선조들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어요. 필경재엔 조선시대 거주문화가 있으니, 여기에 식문화까지 갖추면 조선시대 삶을 제대로 볼 수 있겠다 싶었죠. 전통가옥 필경재를 대중에게 알릴 필요도 있고요.”



이병무 대표의 아내인 종부 김명순씨가 차려내는 필경재 요리. 모든 요리는 코스로 제공한다.
 귀한 손님을 모셔놓고 아무 음식이나 낼 수는 없었다. 필경재 품격에 맞는 음식이 필요했다. 한식으로 유명한 모 호텔 조리팀 직원을 영입했는데 막상 차려놓은 음식을 보니 전통 한식이 아닌 퓨전이었다. 결국 이 대표의 아내인 종부 김명순(66)씨가 요리를 맡았다.



 “어머니 요리 솜씨가 정말 뛰어났죠. 궁중요리부터 양반가 음식까지 전부 다요. 맛은 맛대로, 또 음식에 올리는 고명의 꾸밈은 꾸밈대로 정말 감탄사가 절로 나왔죠. 특히 신선로는 정말 최고였어요. 아내가 어머니한테 배웠어요. 아내가 없었다면 필경재를 운영할 수 없었을 거예요.”



 김씨도 지난 40여 년 동안 매년 열두 차례씩 제사를 치르며 종가 안살림을 도맡은 종부였기에 시어머니 못지 않게 요리 솜씨가 빼어나다. 지문이 다 닳은 김씨 손을 보면 종갓집 맏며느리 자리라는 게 얼마나 고된지 짐작을 하고도 남았다.



 여전히 많은 외국인이 필경재를 찾는다. 외국 귀빈이 올 때 이곳에서 만찬을 열며 자연스럽게 정부의 영빈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2009년 부주석 당시 수행단 30여 명과 함께 필경재를 찾았다. 또 버웰 벨(Burwell Bell) 전 주한미군 사령관은 2007년 필경재를 다녀간 후 감사의 편지를 보내 오기도 했다.



버웰 벨 전 주한 미군 사령관이 2007년 필경재를 다녀간 후 보낸 감사 편지
 “귀빈 만찬을 준비할 때는 며칠을 잠을 못 자요. 부담감이 이루 말할 수 없죠.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한국 이미지가 결정되잖아요.”



 그렇다고 필경재가 특별한 사람만 찾는 문턱 높은 곳은 아니다. ‘필경재에서 상견례하면 잘산다’는 소문 덕분인지 주말에는 상견례를 비롯해 돌잔치나 집안 어른 생일 잔치 모임 등이 많다.



 이 대표가 필경재와 전통 궁중요리 전수라는 책임감을 내세우기는 하지만 결코 맛을 소홀히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이 대표는 일주일에 세 번 새벽에 일어나 가락시장을 찾는다. 철마다 식재료가 바뀌기 때문에 직접 가서 봐야한단다. 또 좋은 재료가 있다는 소리가 들리면 지방까지 한달음에 달려간다. 무슨 요리든 역시 좋은 식재료가 좋은 맛을 낸다는 걸 그 역시 알기 때문이다.



 지난 15년 동안 별다른 부침없이 필경재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이 대표의 각별한 직원 챙기기도 한몫 했다. 직원이 30여 명뿐이지만 큰 회사처럼 병원을 지정해놓고 감기라도 걸리면 곧바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했다.



 “다들 남의 집 귀한 자식이잖아요. 우리집에 있을 땐 내가 아버지니까 내 자식처럼 돌봐야죠. 대표라면 직원에게 존경받을 수 있게 잘해야 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나눠야 직원들도 내 생각을 따라 같이 움직일 수 있거든요.”





 이 대표는 종택을 지키는 관리인으로, 또 조선 문화를 알리는 민간 외교관으로 한시도 쉴 틈이 없다. 그런데 그는 앞으로 해야할 일이 더 많다고 얘기한다.



 “보관하고 있는 유물 수가 상당히 많아요. 지금은 별실 곳곳에서 전시하거나 집에 따로 보관하고 있는데 이를 한데 모아서 유물전시관을 만들 계획이에요. 나 혼자만 보는 것보다 대중에게 공개하고 함께 공유해야 더 가치있잖아요.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도덕적 책무가 있으니 한시도 게을리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개인 사업하는 아들 둘 다 저만큼 책임감이 강해 잘해줄 거라 믿습니다.”



마지막 상궁 손맛, 이 남자에 전수된 사연



한복려 원장은 2000년 평양에서 열린 제1차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를 담당했다.


“우리 가게 잘되고 안되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저 자랑스러운 우리 식문화인 궁중음식이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까지 잘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한용규(56) 지화자 대표는 궁중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왜 아니겠나. 그의 어머니가 궁증음식 기능보유자였던 고(故) 황혜성(1920~2006) 성균관대학교 교수였으니. 황 교수는 1944년부터 30여 년간이나 창덕궁 낙선재(국상을 당한 왕후와 상궁이 머물던 곳)로 찾아가 궁중음식 1대 기능보유자이자 고종·순종을 모셨던 한희순 상궁에게 궁중음식을 배웠다. 황 교수 딸이자 한 대표 누나인 한복려·복선·복진씨도 모두 어머니에 이어 궁중음식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하지만 한 대표는 40세 전까진 어머니와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대학에서 스포츠마케팅을 전공한 후 25살이던 83년 KBS스포츠국 PD로 입사했다. 1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는 본격적으로 스포츠 마케팅을 배우겠다며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85년 귀국해 스포츠 관련 행사를 전문으로 하는 스포츠 마케팅 회사를 차렸다. 3:3 길거리 농구를 한국에 소개하는 등 제법 잘나갔다.



 아들이 저 좋은 일 하는 동안 황 교수 모녀는 요리를 배우고 가르치는 데 집중했다. 궁중음식점을 낸 건 90년대 초다. 이어령 당시 문화부 장관(중앙일보 고문)이 국립극장에 궁중음식전문점을 내보라고 제안한 게 계기가 됐다. 당시 국립극장에는 샌드위치와 커피를 파는 경양식집만 있었다. 이 전 장관은 “국립극장에는 궁중음식이 어울리지 않느냐”며 황 교수를 설득했다. 수차례 고사하던 황 교수는 1년 만에 마음을 바꿨다. 그렇게 91년 국립극장에 국내 최초의 궁중음식점인 지화자가 문을 열었다. ‘나라가 태평하고 국민이 평안한 시대에 부르는 노래’를 뜻하는 지화자라는 식당 이름도 이 전 장관이 지어줬다. 예나 지금이나 한식당은 손이 많이 가는 데 비해 돈벌이는 쉽지 않아 사람들이 꺼리는 업종이다. 하지만 황 교수는 오직 궁중음식을 알리겠다는 마음으로 지화자를 시작했다고 한다.



 지화자에는 한국 사람뿐 아니라 외국인도 많이 찾아왔다. 장사도 그럭저럭 됐다. 그러나 2000년대 접어들며 황 교수 건강이 나빠지자 영업도 안좋아졌다. 황 교수 모녀는 모두 장사라곤 해본 적 없는 데다 요리연구 등 다른 바쁜 일에 쫓겨 식당을 제대로 운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1. 황혜성 교수의 지인이 93년 지화자를 방문한 후 선물한 시 2. 지화자 내부는 궁중 요리 특징을 보여주도록 꾸몄다. 입구 오른쪽 별실에 있는 어좌(왼쪽)와 궁 이름을 딴 별실이 서로 마주하고 있는 복도.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어머니나 누나나 음식 만들던 사람이지 팔아본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힘들어했죠. 그리고 우리 남매 중에서 내가 어머니랑 가장 각별했어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뽀뽀 하고 포옹도 했어요. 그런 어머니가 딸 셋은 다 요리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누군가는 궁중 음식을 먹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단 이걸로 돈 벌 생각은 말라면서요.”



 한 대표는 2001년 운영하던 스포츠 마케팅 회사를 팔고 지화자 운영에 뛰어들었다.



 “그동안 회사도 다녀보고 유학도 가고 창업도 하고 나 하고 싶은 거 다 해봤잖아요. 그리고 난 장사꾼이니까 제대로 식문화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운영을 맡은 한 대표는 지화자를 법인으로 바꾸고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을 시작으로 전국 17개 매장에 궁중떡·한과·폐백·이바지음식을 파는 매장을 냈다. 싼 음식으로만 여겨졌던 떡을 고급 음식으로 차별화하기 위해 한 개씩 낱개로 고급스럽게 소포장했다. 2005년엔 삼청동에 분점을 내기도 했으나 1년 만에 큰누나인 한복려 원장이 운영하던 궁연 가회점을 맡게 되면서 닫았다. 두 식당 거리가 자동차로 2분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5년을 더 운영하다 한 대표는 지화자만 남기고 다른 식당은 접었다. 강남 진출을 위해서였다.



 한 대표는 “외국 사람들이 강남에 많이 가는 걸 보고 강남에서 궁중음식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2010년 청담동에 연 게 궁연이다. 하지만 입점한 건물주가 부도를 내는 바람에 채권자가 엘레베이터 운영조차 막는 등 시작부터 난관의 연속이었다. 17층까지 걸어올라가야 하는 날이 비일비재했다. 겨우 2년을 채운 후 문을 닫았다.







하지만 지화자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2012년 2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국립국장 계약기간이 만료돼 자리를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지금 식당이 있는 경운궁 앞 한 주상복합에 들어가기로 하고 2주 만에 급하게 옮겼다. 이곳에서도 문 여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궁중음식과 어울리게 입구쪽 문을 궁 모양을 본 따 만들었더니 입주민들이 ‘사찰 같다’며 항의해 원래대로 돌려놔야 했다. 식당이 주상복합 안에 있다보니 외관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궁중음식 특징을 제대로 살리기도 어렵다. 얼마 전 한 대표 지인 한 사람이 “지화자와 안 어울리는 두꺼운 점퍼를 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걸 듣고 이전을 결심했다. 지화자는 내년 2월 새로운 자리로 이전할 계획이다.



 우여곡절도 많이 겪었지만 지화자는 23년 동안 뚝심있게 궁중음식을 알려왔다. 이게 가능했던 건 역시 정통성이다. 황 교수에 이어 궁중음식 기능보유자가 된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이 메뉴를 짠다. 한 원장이 드라마 ‘대장금’의 요리 자문을 하며 궁중잔치에 올린 음식을 재현한 코스나 2000년 평양에서 열린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만찬 메뉴 등은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



 한 대표는 “이름뿐인 엉터리 한식을 먹고는 ‘맛없다’고 평하는 사람을 보면 아쉽다”고 했다. 그래서 요리를 정성껏 내는 것뿐 아니라 설명에도 신경을 쓴다. 임금에게 수라상 올리던 그대로 직원이 손님상에 올리는 요리를 하나씩 설명한다.



  “한식의 세계화를 빙자해 한정식집에서 옥수수콘에 마요네즈를 무쳐 내요. 이건 세계화가 아니라 근본없는 음식으로 변질된 거죠. 특히 정통 궁중음식은 달라요. 맵고 짠 음식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에 통할 수 있는 건 가장 한국적인 궁중음식 아닐까요.”





글=송정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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