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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기부 천사 기대하지 마라, 기부 욕망을 자극하라

지난 11일 오후 5시 서울역 광장. 한 남자가 어슬렁거리며 행인들에게 손을 벌렸다. 누군가를 기다리던 젊은 여성에게 적선을 요구하자 이 여성은 난감한 듯 손을 가로저었다. 구걸하는 남자 뒤로 구세군 자선냄비가 보인다. 사진=김경록 기자


자발적인 기부와 강요받는 적선. 늘 그렇지만 특히 연말이면 이 둘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집니다. 기분 좋게, 그리고 폼 나게 기부하고 싶은 마음은 분명 있는데 길에서 누군가가 벌린 손과 맞닥뜨릴 때마다 마치 죄 지은 듯 움츠러들며 기부와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줄까, 말까…한국의 기부 문화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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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를 뽐내게 하라



올 한해를 달군 유행 중 하나는 ‘아이스버킷챌린지’였다. 루게릭병 환자를 돕기 위해 미국에서 시작한 이 기부 캠페인은 국내에서도 유명인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얼음물을 뒤집어 쓰는 인증 영상을 올리며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일부에서는 기부라는 원래의 취지는 사라지고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 유명인의 이미지 메이킹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흥미로운 모금 방법이라는 평가와 본질을 잃은 이벤트라는 비난이 충돌하면서 계속 이슈를 만들어냈다. 분명한 건 우리 사회 구성원이 기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기브 미 초콜릿”을 외치다 이젠 주는 나라가 된 한국 사회에서 기부는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을까.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사랑의 온도탑’. 내년 1월말까지 운영하는데 모금목표 1%씩 달성할 때마다 1도씩 올라간다. 올해 목표액은 3268억원. 사진=김경록 기자


강요받은 적선, 기부엔 독



줄 것이냐 안 줄 것이냐.



도심을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늘 갈등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각종 사회복지 관련 단체의 모금원이 영양실조 걸린 아프리카 사람 사진이나 신체적으로 학대 받은 어린이 사진을 들이밀며 “어려운 이웃을 도와달라”고 웃는 낯으로 가는 길을 막아설 때, 혹은 중년의 여인이 ‘장애가 있어 일을 할 수 없는데 부양할 가족이 있다’는 편지를 지하철에 앉은 승객에게 하나씩 나눠주며 수금하듯 손을 벌릴 때,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머릿속이 복잡하다.



‘줄까 말까.’



지난 8월 빌 게이츠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한 아이스버킷챌린지 참가 모습. [사진 페이스북]
볼 때마다 줄 수도 없고, 안 주자니 스스로 나쁜 사람 같아 살짝 죄의식이 드는 탓에 똑같은 일을 겪을 때마다 늘 똑같은 고민을 한다. 일반인뿐 아니라 사회복지 관련 단체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조차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한 사회복지단체 관계자는 “구걸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실제 사용처가 어떻든 상관없이 자기만족을 위해 돈을 주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거리 동냥에는 돈을 주지 않는다”며 “어떤 전문가는 그날 처음 맞닥뜨리는 딱 한 사람에게만 준다는 원칙을 세웠더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각종 단체의 거리 기부 요청에는 사안별로 판단한다”며 “하지만 일부에선 여러 단체의 거리 모금 역시 기부 피로도를 높여 오히려 기부에 거부감을 주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모금 단체에서 일하는 다른 관계자는 “현재 정기후원을 20여 곳이나 하고 있을 만큼 평소 기부를 적지 않게 한다”며 “하지만 거리에서 워낙 많은 단체의 기부 요청을 받다보니 이제는 ‘정기 후원하는 곳이 많다’고 일단 거절하는 걸로 행동원칙을 세웠다”고 했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인에게 기부는 굉장히 낯선 단어였다. 경제적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적 인식이 바뀌면서 기부문화가 빠른 속도로 자리잡기는 했지만 이처럼 자발적 기부를 할 수 있는 환경보다 강요된 적선과 마주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보니 기부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도 여전하다.



온라인 기부사이트를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 비카인드의 김동준(28) 대표는 “중3 때 유학을 가보니 미국에선 학교 이벤트 자금 모금 등 기부가 일상생활의 하나인데 한국에서는 여전히 기부라고 하면 불쌍한 난민이나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를 떠올린다”며 “이렇게 기부를 특별한 사람을 돕는 어려운 일이라고만 생각하니 모금현장을 외면할 때 스스로 죄인처럼 느끼고, 오히려 기부와 더 멀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정심에만 기대는 기부문화



한국의 기부문화는 실제로 측은지심 단계에 머물러 있다. 최대한 불쌍하게 포장해 동정심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모금을 한다는 얘기다. 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표현대로 “한국의 기부는 우발적, 일시적, 동정적으로” 이뤄진다. 한국 특유의 정(情) 문화 때문인지 아직까지는 모금에 상당한 효과를 낸다. 강철희 연세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교수는 “TV 프로그램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며 “눈물샘을 자극하는 슬픈 장면이 나와야 자동 기부로 이어지는 ARS 전화수가 쭉 올라간다”고 말했다.



당장 모금하는 데는 분명 효과적이지만 이같은 ‘앵벌이 모금’은 기부문화 정착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지속적인 기부로 이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황신애 월드비전 기업특별후원팀장은 “내가 기부한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에 기대 후원하는 탓에 단발성 기부에 그친다”며 “안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일회성이라도 하는 게 물론 낫겠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기부문화가 자리잡으려면 합리적 판단에 따른 정기후원이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주희 굿네이버스 홍보과장도 “모금기관이 불쌍하니 도와달라는 식의 시혜적인 콘텐트를 내세우면 후원자의 피로도가 금세 올라간다”며 “그래서 이제는 불쌍한 모습을 담은 사진보다 도움을 통해 달라진 모습 등 긍정적인 콘텐트를 활용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정심에 호소하느냐, 아니면 긍정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느냐는 식의 겉포장보다 이젠 기부 대상에 대한 인식을 바꿀 때가 됐다는 주장도 있다. 기부대상을 어려운 이웃으로 한정하면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생각에 기부를 일상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연세대 강 교수는 “기부 선진국일수록 복지기관보다는 내가 속한 커뮤니티에 기부하는 비율이 높다”며 “지금 한국처럼 동정심에 호소하는 단계에 머물면 해외구호나 불우이웃돕기 등 이른바 돈이 되는 사업만하는 비슷한 단체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지도층은 왜 기부에 인색할까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1835~1919)부터 투자가 워렌 버핏,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그리고 이제 30세에 불과한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에 이르기까지 미국 백만장자의 거액 기부는 너무나 자연스럽다. 하지만 한국은 기업가를 포함해 사회 지도층 전반적으로 기부에 인색하다.



일부에서는 뿌리 깊은 유교문화가 사회 지도층의 기부 확산에 걸림돌이라는 분석을 하기도 한다. 경기개발연구원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기부문화’(2011) 보고서에서 “조선시대 사농공상(士農工商) 가장 위 계층인 선비는 부귀를 탐하지 말아야 하고 청빈함을 최고 덕목으로 꼽는다”며 경제활동을 죄악시하다보니 사회 지도층의 기부문화가 자리잡을 수 없었다고 평한다. 기부를 할 수 있을 만큼의 부를 축적했다는 게 청빈하지 않은 생활을 했다는 반증이 되다보니 서양에서 하듯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신분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의 하나로 기부를 당연시하는 문화가 자리잡을 수 없었고, 이게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설명이다.



또 한편에서는 한동안 정부가 기부를 장려하기보다 규제 대상으로 삼아온 영향을 꼽기도 있다. 정부는 6·25 전쟁 와중인 1951년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을 제정했다. 기부 활성화가 아니라 거꾸로 구호단체 난립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다. 월드비전 황 팀장은 “일제 치하 독립운동 하던 시절에도 독립운동 자금이라며 돈을 모아 만주로 도망치는 사기꾼은 있었다”며 “정부가 이런 폐단을 막겠다며 기부를 규제하는 쪽에 힘을 쏟다보니 다들 기부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그러다보니 굳이 기부를 할 필요성도 못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을 95년 기부금품모집규제법으로 바꾼 데 이어 2000년 개인기부자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을 대폭 늘렸고, 2007년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로 다시 개정하면서 기부금 모집을 본격적으로 장려하기 시작했다.



과시를 허(許)하라



한국의 개인기부액은 1999년 8500억원에서 2009년 6조1500억원으로 급증(경기개발연구원)했다. 일부에서는 십일조 등 종교기관 헌금이 포함돼있기 때문에 개인 기부 급증은 통계적 착시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김진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기획모금팀장은 “지난해 처음으로 한해 모금이 5000억원을 넘어섰다”며 “특히 2012년만 해도 기업과 개인 비중이 7대 3으로 기업이 우세했지만 2013년에는 53대 47로 거의 비슷할 정도로 개인 기부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개인 기부자가 점차 늘고는 있지만 미국 등 기부 선진국에 비해서는 여전히 낮은 편이다. 미국의 비영리 자선 단체인 기빙 유에스에이(Giving USA)에 따르면 미국은 이미 1970년대부터 개인 기부자 비중이 77%를 넘는다.



숭실대 정 교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부 비율이 높을수록 풀뿌리 기부가 탄탄하다는 의미인데 2012년 기준으로 한국(0.9%)은 미국(1.8%)에 비해 훨씬 뒤진다”며 “국내에서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전까지 기업이 기부를 떠안아 왔는데 기부문화가 정착하려면 부자의 고액기부가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기업가 등 사회 지도층부터 보통 사람에 이르기까지 전 사회적으로 기부를 확산시킬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많은 전문가들은 인간의 과시욕을 활용하라는 조언을 한다.



연세대 강 교수는 “1억~10억원 정도는 뜻깊게 쓰고 싶다는, 이른바 좋은 의미에서 기부에 중독된 사람이 우리 사회에도 충분히 많다”며 “이들이 지속적으로 기부에 동참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인정해주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를 예로 들었다.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은 2008년 6명에 불과했지만 이달 3일 기준으로 646명으로 크게 늘었다. 부자만 회원이 아니다. 지난달에는 한 대학 경비원인 김방락(67)씨가 10년 동안 부은 적금을 기부하는 등 회원 저변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강 교수는 “남몰래 기부하는 사람도 물론 적지 않지만 기부하는 많은 사람은 티를 내고 싶어하기 마련”이라며 “아너소사이어티는 초기부터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기부자에게 명예를 주는 방식으로 이런 심리를 살려줬기에 관심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연말만 되면 신문 지면에 등장하는 재벌 총수 등의 연탄 나르기 사진도 마찬가지다. 일부에서는 “사진찍기용 전시성 행사”라고 비판하지만 이를 이벤트성 기부라고 욕할 게 아니라 오히려 연탄 나르기처럼 과시욕을 자극할 수 있는 기부 방식을 찾는 게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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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를 허하라



전문가들은 또 풀뿌리 기부로 자리잡으려면 약간의 과시욕을 부추기면서 재미까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스버킷챌린지가 대표적이다. 비카인드 김 대표는 “쉽고 재미있게 기부할 수 있어야 참여자 수는 물론 기부의 지속성도 오래 유지된다”며 “아이스버킷챌린지도 기부를 가볍고 재미있게 생각하는 미국인의 인식이 깔려있기에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했다.



지인에게 생일선물을 받는 대신 지정한 단체에 기부하도록 하는 비카인드 사이트.
그는 이런 발상을 토대로 2012년 온라인 기부사이트인 비카인드를 만들었다. 기부를 원하는 방문자가 온라인 홈페이지에 자신의 생일, 그리고 모금액을 설정하면 지인들은 생일선물 대신 여기에 맞춰 기부를 한다. 이렇게 모인 기금을 어디에 기부할지도 생일을 맞은 방문자가 직접 고를 수 있다. 소아암 환아를 도울 수도, 루게릭병 환자의 의료 소모품 지원을 할 수도 있다. 특히 참여자들은 자신이 세운 목표액을 달성하면 거리에서 1시간 동안 쓰레기를 줍겠다거나 한강에 입수하겠다는 등의 공약을 내세우고 실천 동영상을 SNS에 공유하며 참여를 유도한다. 지난해 생일모금에 참여했다는 윤여정(29·수원)씨는 “SNS를 통해 동참을 권유했는데 일주일 만에 목표액을 채웠다”며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김민정·옥주현 등 연예인도 동참해 지금까지 1억5000만원을 모금했다.



모금기관의 권유로 불우이웃을 돕는 ‘기부 1.0’에서 이렇게 능동적으로 기부를 하는 이른바 ‘기부 2.0’ 시대로 접어들면서 기부의 저변은 점차 확대하고 있다. 특히 온라인과 모바일 발달은 기부문화에 더욱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모금기관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기부에 동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전현경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간사는 “인터넷을 통해 직접 모금활동을 조직할 수도 또 기부를 할 수도 있는 시대”라며 “이런 방법은 모금의 목적과 방법, 돈의 사용처까지 투명하게 공개되는 셈이라 기부를 좀더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심영주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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