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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8) 제79화 제79화 육사졸업생들(41) 장창국 &1기생 영관장교|6·25때 군의중견으로 혁혁한 무공|이상근대령등 7명은 전사|박승일대령은 포로됐다 탈출 유격전

비록 「별」을 달지는 못했으나 l기생중 다수는 군의 중견인 영관장교로 6·25를 치르고 예편했다.
그중에는 전쟁중 혁혁한 무공을 세우고 아깝게 전사한 사람도 있으며 일부는 좌익에 가담했다가 정부수립전후 숙군에서 처단된 사람도 있다.
1기출신 대령은 김도영(대구·지원병출신), 배태원(대구), 정종근(충북), 우병옥(충북), 이영규(강원), 고근홍(경기강화·지원병), 정인석, 박승일(충남·만군출신), 김종원(경북경산·지원병·전치안국장), 김인수(원명기임·경기)등 10명이다. 6·25때 연대장으로 전사한 이상근(충남 공주)과 박광혁(서울·만군출신)은 대령에서 준장으로 추서됐다.
중령예편자는 박근서·이고성·강비원 등이며 소령은 김학림·김용정·안영길 등이다.
이들 영관급장교중 6·25때 전사한 사람은 이형근장군의 친동생인 이상근대령과 정종근·우병옥·고근홍·박승일·박광혁대령, 이고성중령등 7명이다.
1기를 1등으로 졸업, 사관학교 출신으론 첫군번을 받았던 이상근대령은 6·25당시 수도사단 참모장으로 안동지구 전투에서 정찰을 나갔다가 적탄에 숨졌다. 침착하고 솔직담백한성격에다 두뇌가 명석해 살았더라면 형 이형근장군의 뒤를 이을 수 있었을 아까운 재목이었다.
박광혁대령은 만주에서 중학을 졸업, 만주 철도경비대에서 군사경력을 쌓고 해방후 군영을 거쳐 입교했다. 6·25당시 19연대장으로 북진해가다 함흥근처에서 중공군과 조우. 격전끝에 전사했다.
두사람은 모두 준장에 추서됐다. 전사자중 특히 손꼽아야할 사람은 6·25 당시 5연대장 박승일대령과 10연대장 고근홍대령이다.
박승일대령은 박광혁대령과 마찬가지로 만주 철도경비대 출신. 해방후 군영을 거쳐 입교했는데 1기생중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키가 크고 풍채가 좋은데다 우렁찬 목소리에 성격도 활달해 한마디로 호걸풍이었다.
특히 임관후 콧수염을 길러 김석원장군과 합께 카이제르 수염으로 군안에서 유명했었다. 박대령은 5연대를 이끌고 북진해가다 덕천부근에서 역시 중공군 대부대와 부닥쳐 격전끝에 포로가 됐다.
그러나 호송도중 탈출하여 중공군의 배후에 흩어진 국군을 수습, 부대를 편성하고 묘향산·백두산일대에서 유격전을 전개했다. 6·25후반 육본 정보참모부장을 역임한 동기생 황엽장군(소장)의 얘기에 따르면 박대령은 1년 가까이 우리 육본과 정기적인 무전교신을 하며 적 후방을 교란하는 유격전을 벌였다고 한다. 그러나 끝내 재북진이 이루어지지 못한채 고립됐다. 『김일성이 1개사단을 동원, 포위했다. 마지막까지 항전하겠다』는 보고를 마지막으로 소식이 끊겼다.
고근홍대령은 경기 강화태생. 일군지원병 하사관 출신으로 1연대 기간사병으로 입대했다가 연대추천을 받아 육사에 입교했다. 6·25때 10연대장으로 영천 다부동 전투에서 특히 용맹을 날렸다. 다부동에선 1개연대로 적1개사단을 전멸시키는 전과를 올려 북진의 돌파구를 열기도 했으나 북진해가다 청천강 부근에서 중공군대부대와 접전후 소식이 없다.
박 고 두 대령은 육본에서 일단 실종으로 처리했다가 5년후 전사로 처리, 국립묘지에 위패만 안치됐다.
몇해전 뜻있는 동기생들을 중심으로 박·고 두 대령을 장군으로 추서토록 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히 추진됐으나 몇가지 사정으로 결실을 못본 것이 아쉽다. 이제라도 두사람의 무공과 충혼은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할줄 안다.
우병옥대령은 충북 청주출신. 일군지원병으로 갔다가 예비사관 소위로 해방을 맞아 군영을 거쳐 입교했다. 6·25개전 초기에 김포지구제병지휘관으로 명을 받아 출전했다가 중령으로 전사, 대령에 추서됐다. 전투지휘관으로서는 물론 행정·병참등 다방면에 유능해 동기생들은 『살았으면 참모총장감』이라고도 한다.
총각으로 전사했는데 유족들은 그가 꼬박꼬박 집에 보내 모은 윌급으로 고향 근처에 중학교를 세웠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도영대령은 현재 예편, 개인사업을 하면서 1기 동기생들간의 연락책임을 맡고 있는데 육군 특무부대장으로 나는 새도 떨어뜨릴만큼 서슬이 퍼렇던 김창룡의 따귀를 두번씩이나 때려 유명해진 군인이다.
장성진급을 못한 것도 김창룡의 작용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대령이 김창룡을 때려주고 장성진급이 안된 것은 건군 초기 우리군의 분위기와 인사행정을 말해주는한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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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